상단영역

본문영역

한국의 강-북한강(화천·춘천·가평·남양주·양평)①

한국의 강-북한강(화천·춘천·가평·남양주·양평)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3.03 17:01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강산 명경수, 분단 넘어 천리 길

북한강은 금강산 비로봉에서 발원한다. 그야말로 금강(金剛)의 물이다. 북한 땅 강원도 창도의 금강산댐을 지나 휴전선을 넘고, 파로호, 춘천호, 의암호에 이르러 또 한줄기 북녘에서 출발하는 인북천의 물줄기를 이어받은 소양강과 합류한다. 거대한 물줄기다. 안개에 싸인 호반 도시 춘천과 세계의 명소가 된 남이섬이 풍요로운 수변 풍경으로 탄생했다. 이 물을 가두어 아끼지 않으면 서울이, 수도권의 목이 탄다. 두물머리에서 껴안는 남·북한강의 포옹이야말로 가슴 벅찬 하나됨이다.

파로호, 자전거에겐 길이 없다 

북한강의 발원을 지도에서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평화의 댐까지만 보여주는 네이버 지도는 화천이 분단의 절벽임을 말해준다. 물길은 그러고도 휴전선을 넘는다. 구글어스를 통해야 물길의 행방을 찾을 수 있다. 북의 임남댐(금강산댐)에서 거슬러 오르면 창도(昌道)에서 금강산으로 구부러지는 물길과 회양(淮陽)으로 올라가는 물길이 북한 땅 강원도 끄트머리까지 간다. 그러니 유로 연장 482km의 반의 반절밖에 안 되는 물길을 따라 흘러야 하는 것이 북한강의 운명이다. 

게다가 평화의 댐에서 화천댐까지 70리(28km) 물길은 주말에나 운항하는 유람선에다 몸을 맡기지 않는 한 아예 자전거의 범접을 허락하지 않는다.

‘양구서천’편에서 다룬 파로호(破虜湖)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다. 중공군 3만 명이 죽어 나간 화천전투의 현장이 바로 이 언저리였다니 공산과 반공산의 격돌이 이 깊은 산중에 피로 얼룩진 셈이다. 호수의 이름이 거북하다고 바꾸자는 움직임이 또 이념의 격류 한가운데서 찬반에 불을 지피다 득실을 계산하여 휴화산처럼 잠복에 들어갔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전선의 고요와 많이도 닮았다.

반 토막도 못 되는 서글픈 북한강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이 된 화천댐은 늙수그레한 테가 줄줄 흐른다. 댐 한가운데 포대처럼 구멍 난 수문이 차라리 고졸(古拙)하다. ‘딴산유원지’는 물길 섶에 있지만 영악스럽지는 않다. 야영도 무료다. 화천수력발전소를 건네다 보며 달리는 자전거길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목조다리인 꺼먹다리는 수명을 다해 사람의 통행을 막아 놓았지만 이 강의 역사와 비린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산소길 100리’와 ‘산천어 축제’가 있는 화천

구만교를 지나 물길이 구부러지면 ‘산소길 100리’ 풍광이 펼쳐진다. 다리를 건너 삼랑골부터  자전거 길은 물 위에 놓은 길이라 산 그림자에 녹색 기운까지 더해져 가슴 속이 뻥 뚫린다.     산소길 100리는 겨울철 ‘산천어축제’가 끝난 뒤 4계절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화천을 지나는 북한강을 이용해 만들었다.

올해 14년째인 ‘화천 산천어 축제’가 세계4대 겨울축제에 들고, CNN이 겨울7대 불가사의에 든다고 평가하게 된 배경에는 치밀한 축제기획, 혜안이 넘치는 지도력, 열정의 자원봉사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매년 겨울 100만 명이 추위를 즐기기 위해 이 산촌으로 밀려온다. 전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자원봉사에 기꺼이 나선다. 그러나 올해 이 축제는 엉뚱한 복병을 만났다. 얼음이 얼지 않는 ‘춥지않는 겨울’이 문제였다. 하늘을 원망하며 온 군민이 얼음판을 지켜도 살짝언 얼음은 야속하게 녹아버리고 몇 차례의 연기 끝에 급기야 ‘산천어수상낚시’라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자연의 경고가 올해만 그치리라는 법이 없으니 그저 하늘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민의 60%가 군인이라는 군사도시의 색깔을 벗고, 면회 오는 어버이나 연인들도 함께 쉬다가 갈 수 있는 강변 풍경을 만든 것은 성공적이다. 기차를 볼 수 없는 화천에 철로를 일부러 부설하여 레일바이크를 만들고, 기관차까지 들여와 객실 열차로 숙소를 만든 열정 또한 대단하지만 군인들이 휴대폰에 코를 박은 채 영내에 머물고, 위수지역이 폐지되어 수도권까지 외출외박을 나갈 수 있게되다 보니 화천 본바닥 경기는 그야말로 바닥이라는 말이 엄살이 아닌듯하다. 

희미한 4대강의 그림자, 길은 이어지지 않고

붕어섬을 지나면 산소길 100리 코스는 더욱 한가해진다. 금계국이 지천을 이루면서 다투어 피어나 간만에 만나는 자전거 길손을 환영한다. ‘거례수변생태공원’을 지나 동구래마을까지 자전거길은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3km는 트레킹 코스다. 자전거는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화천의 ‘23 신선과 함께하는 동려이십삼선로’의 3~4번 코스인 ‘금 캐러 가는 물위야생화길’(4번), ‘연꽃과 함께하는 수변 복원길’(3번)이다. 물이 찰랑거리며 허물어져 내리는 트레킹 코스는 두려워서 더 화천답다. 수몰을 피한 금광의 동굴에는 황금박쥐가 산다. 이제 막 정비를 끝낸 길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편한 길이 나오자, 연꽃이 막 피어나고 있는 호수는 더 풍성하다. 현지사 절 앞으로 난 길로 사북면 소재지를 지나 다시 강변으로 붙을 때까지 국도 5번 신세를 져야 한다. 춘천시와 화천군 경계쯤 되면 4대강 사업의 힘도 미치지 못하여 자전거는 갈 길을 헤맨다. 신포리에서 말고개를 넘지 않고 원평리 밤나무골 방향으로 접어들어야 북한강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도 잠시 다시 5번 국도를 타고, 춘천댐을 지나 서상교차로까지 와서야 강변길로 접어들 수 있다. 춘천시는 춘성교를 반환점으로 하여 타원형의 자전거도로를 계획하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는 화천과 춘천이 자연스레 이어지리라 소망하며 의암호에 접어든다.

의암호의 서쪽, 창작의 향기가

하중도인 위도를 가로지르는 신매대교를 기점으로 동쪽은 춘천 시내다. 소양강이 봉의산 북쪽으로 흘러내려 합류한다. 중도는 훨씬 더 풍만해져 상중도와 하중도를 한 바퀴 돌도록 자전거길이 잘 갖추어져서 춘천까지 전철로 이동해서 하루를 놀다가도 좋을 풍경을 선사한다.

북한강 서편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에 ‘문학공원’을 만난다. 춘천을 대표하는 소설가 전상국 선생의 글이 시 한 편이다.

<춘천, 얼마나 사무치게 아름다운 이름인가.(중략)/그네들이 부른 북한강의 노래/ 소양강의 긴 이야기가 마을 마을을 휘돌아 봉의산을 품고/용화산, 대룡산, 삼악산을 넘는다>
(춘천문학공원조성 취지문 중)

비석마다 문인들의 한 단락 문장이 빛난다. 전영택의 <화수분>, 조병화의 <사랑의 강>, 육당 최남선의 <낙동강에서>까지....

박사마을이 있는 것도 춘천시 서면이다. 요즘 박사가 넘쳐난다지만 서면 23개 리에서 1968년 이래 150여 명의 박사가 탄생해서 마을주민 1인당 박사 배출 전국 1등이다. 신숭겸 장군의 묘소가 있는 우리나라 8대 명당 중 하나라고 하니 눈이 번쩍 뜨일 만하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도 이곳 출신이다. 마을공동체가 박사라는 명예를 중심으로 자랑이 되고, 어린이 글램핑장이 이곳에 차려진 것도 따지고 보면 제 자식 혹여 박사마을 기를 받아 잘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부모들의 뜻도 한 자락한 게 아닐까.

에니메이션 박물관은 창작의 산실로서도 만화의 집대성으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뽀로로나 구름빵 가족에서부터 그 옛날 홍길동전 만화영화에 이르기까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추억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길섶에 있다. 여길 촘촘히 보려면 반나절도 모자란다.

삼악산(655m) 그늘이 길고도 깊어서 초여름 날씨도 더운 줄을 모르고 의암댐을 건넌다. 강 건너 춘천, 안개의 도시 순례는 온전히 춘천만의 몫으로 남겨두고 지나갈 뿐이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