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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58.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58.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20.02.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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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 『사피엔스』로 유명한 저자 유발 하라리는 최근에 출간한 『호모 데우스』에서 21세기 인류의 중요한 의제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불멸에 진지하게 도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행복의 열쇠 찾기’라고 합니다. 불멸이란 그야말로 죽음과 대결하여 이기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인류가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일이다.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아울러 재미있는 전망을 합니다.

“커즈와일과 드 그레이는 한층 더 낙관적이다. 그들은 2050년에는 몸이 건강하고 은행 잔고가 충분한 모든 사람이 불멸을 시도할 거라고 주장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발명가로 1999년 미국 기술혁신 메달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커즈와일은 2012년에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죽음 해결하기’가 창립목표라고 밝힌 구글 자회사 칼리코(Calico)를 설립하지요. 오브리 드 그레이는 유명한 노년학자입니다. 두 사람의 전망은 2050년이니 인류가 죽음을 정복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노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과연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2500년 전에 살았던 노자는 인류가 어떤 끝을 향해 갈지 전혀 모른다고 선언을 합니다. 물론 그 시기에도 불멸을 꿈꾸는 인간은 많았죠. 진시황은 불사약을 구해 오라고 사람들을 여기저기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나 지금은 생명공학이 정말 인류의 불멸을 얘기할 만큼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와 의사들의 실험 욕구도 대단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자본도 넉넉합니다. 2050년에 진짜 불멸에 들어서는 인간이 나올 수도 있고요.

 

그런데 나는 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두 번째 의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행복의 열쇠 찾기’ 말이죠. 인류가 불멸에 들었을 때 과연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행복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불멸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쾌락을 경험하는 데 알맞도록 적응되지 않았으므로, 생화학적 기제를 바꾸고 몸과 마음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두 번째 과제인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쾌락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호모 사피엔스를 재설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류는 유쾌한 느낌을 가질 때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쾌한 느낌은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습니다. ‘잠깐 행복, 긴 불행’이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과 불행은 서로 갈마듭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엄청난 쾌감을 맛보았지만, 그 쾌감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곧 더 큰 불행이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재앙이여! 그 속에 복이 기대어 있구나. 복이여! 그 속에 재앙이 엎드려 숨어 있구나.”

 

현생인류는 그렇습니다. 한 번 쾌락이 영원한 쾌락이 되거나 한 번 불쾌함이 영원히 불쾌한 그런 성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게 복 단지인가 했더니 재앙 단지였던 것이죠. 물론 그 반대도 있고요.

그래서 현생인류가 불멸을 영원한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새로운 성향을 가진 인류로 재설계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 인류의 미래라는 것입니다.

 

이 미래가 과연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쉽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 미래를 추동하는 에너지가 자본이라는데 있습니다. 자본은 시장에서 인기 있는 상품을 만들어 자본을 더 늘리려는 속성을 가집니다. 인류에게 ‘불멸’이라는 상품은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상품을 누구나 구입할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죠. 앞에서 커즈와일이 얘기했듯이 ‘은행 잔고가 충분한’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결국 이 미래는 인류 모두가 행복한 길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지점에 서 있는 것이죠.

 

<노자 도덕경 58장 : 其政悶悶(기정민민)이면 其民淳淳(기민순순)하고 其政察察(기정찰찰) 이면 其民缺缺(기민결결)하니 禍兮(화혜)여! 福之所倚(복지소의)하며 福兮(복혜)여! 禍之所伏(화지소복)하나니 孰知其極(숙지기극)이런가? 其無正(기무정)하니 正復爲奇(정복위기)하며 善復爲妖(선복위요)이니 人之迷(인지미)가 其日固久(기일고구)로다. 是以聖人(시이성인)은 方而不割(방이불할)하고 廉而不劌(렴이불귀)하며 直而不肆(직이불사)하며 光而不燿(광이불요)하나니라.>

 

그 정치가 망설이는 듯하고 답답하면 오히려 백성은 순박해지고, 그 정치가 일일이 살피고 따지면 백성들이 어그러지고 교활해진다. 화는 복이 기대는 곳이고 복에는 화가 엎드려 숨어 있으니 누가 진정한 그 끝을 알겠는가? 결정된 바름도 없으니 바름이 다시 바뀌어 잘못이 되고 선함이 다시 바뀌어 요망함이 되니, 사람들이 혼란에 빠짐이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성인은 자신은 반듯하지만 남을 이렇다 저렇다 따지지 않고, 자신은 검소하고 청렴하지만 남은 그렇지 않다고 찔러서 상처 입히지 않으며, 자신은 정직하고 솔직하지만 남도 그렇게 하라고 닦달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빛을 남에게 드러내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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