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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통학로 할아버지의 깃발노후 무방비 세대에게 드리는 적지만 큰 경제적 도움

할아버지, 할머니의 스쿨존 깃발과 도로변 쓰레기줍기

조용연 주필

이제 개학을 하면 통학로 스쿨존에는 허리 굽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깃발을 들고 횡단보도를 지킨다. 녹색어머니회에 소속된 학부모, 주로 젊은 엄마들의 깃발을 보면서 눈치껏 따라 한다. 누구는 노인들을 길거리에 세운 것이 그야말로 전시행정이자 예산 낭비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정말 비난만 할 일인가? 이게 꼭 ‘선심성 퍼주기’로만 정의할 일인가?

병아리를 닮은 초등학생들에게 이 깃발 노인들은 조부모를 넘어 증조부모에 이르는 세대다. 서울로 말하자면 탑골공원에 나와서 어깨너머로 장기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노인들이야말로 한가한 듯 보이지만 우리 시대의 가장 불행한 세대다. 다분히 이 불행의 계측은 경제적 수입으로 평가한 객관적 수치에 근거한다. 소득대체율 24%가 이들의 처지를 말해 준다.

소득대체율이라는 말은 예를 들면 알기 쉽다. 직업이 있을 때 수입을 매월 200만원이라고 본다면 은퇴한 지금 48만 원밖에 수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돈에 쪼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돈에 쫓기는 형국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대에 태어나 광복 뒤의 혼란, 6.25 전쟁, 월남파병, 중동 근로의 시대를 건너오며 ‘보릿고개’를 몸으로 견뎌내며 살아왔다. ‘잘살아 보세’라는 새마을 깃발을 들고 피땀 흘려 일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자식 교육시키고, 부모 봉양하면서 연금이고 보험이란 말도 모르면서 자신을 다 발라 내버린 ‘가시고기’같은 존재다.

소득대체율 70%, 즉 은퇴 후에도 직장이 있던 시절 수입의 70%는 있어야 품위유지를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노인 깃발부대가 받는 수당은 거기에 미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넉넉한 집에는 대수롭지 않은 돈일지 몰라도 이들이 한 달에 열 번, 길거리에서 통학지도나 쓰레기 줍기로 받는 27만 원은 기초노령연금 30만 원과 함께 노후 생계비에 소중한 보탬이 된다.

정말 더 어려운 사람들은 ‘일은 하고 싶지만 여기저기 몸이 아파서 길거리에 나설 수조차 없는 노인’들이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에 들지도 못하는 그 윗 단계의 어려운 세대 가운데 사각지대가 없는지 잘 살펴서 집안에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해 돕는 것도 필요하다.

눈먼 돈이 돌아다니고, 진짜 ‘퍼주기 예산’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곳은 수없이 널려있다.

‘공익형 노인일자리 사업’은 더 만들어야 한다. 이것조차 일자리 숫자(취업통계)로 잡아서 경제가 좋아졌다고 뻔한 거짓말을 할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집게를 들고 위험한 도로변 쓰레기 청소를 하고 있는 어르신들이야말로 도움이 필요한 ‘조국 근대화의 희생세대’다. ‘새벽종이 울렸네’ 노래가 울려 퍼지기 전부터 동네로 들어가는 마을길을 정비를 하고, 공동 우물을 바닥까지 들어가 다 퍼내고 청소하던 일을 ‘부역(賦役)’나간다고 하던 세대다. 당연히 그 마을 주민의 일원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기꺼이 일했던 어르신이다. 당연히 무상근로였다. ‘제집 앞 눈도 안 치우는 시대’가 조금이라도 보상해야 한다.

한 시대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보상이 민간형 노인 일자리 확충이면 더 좋겠지만 ‘공익형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라도 확대되어야 한다. ‘가로변 쓰레기 줍기나 통학로 지도 같은 공익형, 노노케어(노인끼리 돌봄사업) 같은 사회서비스형, 임가공, 박스 포장, 시간제 바리스타 같은 시장형, 노인 근로 적합사업장에 인력파견형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여기저기 나누어져 할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주만 해도 ’대한노인회 여주시지회 취업지원센터’, ’여주시 노인복지관’, ‘여주시니어 클럽’, ‘여주 지역자활센터’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창구가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으니 이를 운영하기 위한 담당자가 각기 필요하다. 당연히 인건비 등 조직운영비가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통합·단순화해야 한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마지막 일자리의 끈을 쥐고 있던 이 노인들을 ’젠트리피케이션‘처럼 내몰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노인들에게만 적용되는 ’최저임금탄력제‘라는 특례조항을 신설해서 시장 형편에 맡겨버리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한 푼이라도 생활비에 보태야 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해야 한다. 그걸 누가 ’퍼주기 예산 집행‘이라고 비난하겠는가.

조용연 주필  pkw39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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