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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양구서천(양구)①국토의 정중앙을 흐르는 꼬마 강, 양구서천

국가하천의 서열로 말하면 양구서천은 거의 꼬래비에 서야 한다. 38선보다 훨씬 북쪽의 강이라 비무장지대까지 물줄기가 닿아 있다. 그 이름도 경쾌한 팔랑폭포에서 호적에 오르지만 지방하천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양구읍에 와서야 국가하천으로 승진한다. ‘청춘 양구’,‘배꼽 양구’의 한가운데를 촉촉이 적셔주는 물이다. 한반도 섬을 만든 인공습지를 지날 때면 물길이 느려지다가 파로호로 환승할 때는 아예 허리춤을 풀어 놓는다. 북한강을 불려준다는 보람과 한반도의 정중앙을 흐른다는 자부심마저 없다면 이 막둥이 강은 도통 살맛이 나지 않을 게 틀림없다.

=펀치볼의 서쪽 물, 양구서천은 팔랑폭포에서

여름 강둑을 지나는 일은 고행에 가깝다. 강둑은 민 대머리라 대지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는다. 커 달라고 웃거름까지 준 것들은 벌레 먹어 시들시들해도 잡초는 한 길 키쯤은 일도 아니라는 듯 왕성하게 자라 팔 벌리고 있는 길이다. 그들의 환대(?)를 내 몸으로 받아야 하니 온통 긁힌 자국들로 쓰라린 여름 강둑이다. 짧은 강을 골라 이 여름을 넘겨야겠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택한 북쪽의 강이다.

들판을 흐르는 강은 이 여름엔 아예 젖혀 놓았다. 지칠 줄 모르는 한여름 땡볕과 맞서는 건 무모하다. 다 달려봐야 백 리도 안 되는 짧은 강을 반나절에 해치우곤 어디 시원한 그늘에라도 들어 낮잠이라도 자고 갈 심산이다.

지도를 들여다본다. 좌측이 도솔산(1,148m)이고, 우측은 대암산(1.314m)이다. 그 사이에 불끈 솟은 봉우리는 1,304m나 되어도 이름이 없다. 대암산은 동부전선의 대명사이자, 맹추위의 기준점이다. 이 산에 첫눈이 내리면 겨울이 다가온 거다. 대암산이 영하 20도로 곤두박칠 쳤다는 건 동부전선이 본격적으로 얼어붙었다는 신호탄이다.

번듯하게 닦아 놓은 31번 국도는 금강산으로 달리다 비둑고개에 막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453번 지방도는 돌산령을 넘어 양구 해안면으로 달린다. 해안분지 ‘펀치볼’이다.  6·25전쟁 당시 외국 종군기자가 화채그릇(punch bawl)을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인데 ‘해안분지’보다 널리 불리는 별명이다. 해안(亥安)이라는 이름은 옛날 한 스님의 권고로 돼지를 키우자 뱀이 사라져 마을이 평안해 졌다는 전설에서 얻었다. 여의도 크기의 6배(44.7㎢)에 이르는 넓은 분지가 운석 충돌로 생겼다는 설도 있으나, 해안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1,000m이상 고지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가칠봉의 지질(변성앞복합체)과 분지 안에 잘 침식되는 흑운모화강암이 있어 ‘세월 속에 화채 그릇이 만들어졌다’는 침식설이 설득력 있다.

분지안의 도솔천이나 성황천은 당물골과 인북천을 거쳐 소양강이 되고, 분지 남서쪽의 물은 양구서천이 된다. 출발지 팔랑폭포는 마을 옆 계곡 한가운데를 자리 잡고 있다. 장마 때라 물이 넉넉해서일까 폭포 소리가 제법 우렁차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참호가 지키는 강둑, 여긴 38 이북 깊숙한 땅이다

 

동면 소재지 임당리에서 임당교로 접어든다. 강둑의 한쪽은 군부대 차지다. 강둑은 잡초가 2m 가까이 자라서 헤치고 나가야 할 지경이지만 유사시를 대비한 때문인지 시멘트 포장을 해 놓았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강둑에 참호들이 도열해 있다. 여기가 민통선이 가깝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자전거를 눕히고 일부러 참호에 내려선다. 총을 걸고 바로 앉아서 사격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조명탄 박스들이 놓여 있다.

세월의 이끼가 적잖이 낀 다리를 탱크 저지용 콘크리트 구조물인 용치(龍齒)가 옹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위도상 강원도 고성과 같다. 북으로 올라와도 한참을 올라와 있다.

들판 여기저기 보이는 과수원에는 사과가 슬쩍 홍조를 띠면서 굵어질 채비를 하고 있다. 대구는 능금의 고장, 사과 산지로서 이름을 진작 내어 줬다. 청송, 문경, 풍기, 단양, 영월, 정선을 지나 드디어 양구 펀치볼까지  사과 전선이 북상했다. 사과 맛을 만드는 일교차가 명쾌한 동네로 자연스럽게 북진해 이미 38선을 돌파한 것이다. 어릴 적에 황해도 황주 사과가 유명하다고 배웠다. 그러니 남북통일이 되고 나면 ‘원산 사과’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31번 국도가 인제에서 광치령을 넘어(이제 웬만한 고개는 터널을 뚫어놓아 ‘넘어’라는 말이 무색하다)양구에 접어든다. 길은 줄기차게 강둑을 고수한다. ‘고수한다’는 이 말에는 고마움이 묻어있다. 수많은 강둑길은 속절없이 끊어지거나, 버려진 자식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몰골을 수없이 봐와서다. 하지만 인구 2만2천을 간신히 넘기고 있는 양구 같은 소읍에 자전거 길을 따로 번듯하게 만드는 것은 고맙지만도 않다. 너무 심한 출혈이다. 이런 강둑은 쇄석을 뿌려 노면만 정비해 놓아도 얼마든지 훌륭한 강둑길이 된다. 자전거 길을 만드는 순간 그 길은 배타적인 선을 긋게 된다. 운동하겠다고 자전거 전용로로 나올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려 본다면 이건 밑지는 장사다. 적어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되어 가는 시골에서는 그렇다. 시멘트 포장 정도로 해서 자전거든 경운기든 산책하는 사람이든 함께 하는 길이면 된다.

=인구 2만 남짓한 양구, 청춘을 이야기하는 안간힘

 

한반도의 정중앙임을 내세우는 양구는 어쩐지 안쓰럽다. 경도와 위도를 따져 의미를 부여하는 이 셈법은 정동진과 정남진의 각도기를 들고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에게 함께 통용된다. 북으로 가는 지도가 잘려나가, 남의 나라 지도 구글어스를 통해서 금강산 언저리를 확인해야 하는 터에 한반도의 정중앙이란 말은 어쩐지 공허하다. 그래도 “통일의 그날 여기가 우리 땅 한가운데다, 단군의 자손들이 살아야 할 터전의 배꼽이다.”고 말할 수 있는 측량 말뚝으로 삼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배꼽축제’가 열린다는 광고는 눈길을 끈다. 무슨 코미디 축제인줄 알았다.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어 재낄 수 있는. 한여름을 배꼽을 내놓고 놀 수 있는 물의 축제란 이야기다.

파로호 아래 화천이 겨울 산천어 축제로 CNN 뉴스까지 타면서 재미를 보자, 그 반대 지점에서 뭔가 축제를 벌여야 하는 관청의 업적 쌓기가 아니길 바란다. 재정자립도가 바닥을 기면서도 그저 그게 그거 같은 메뉴로 축제를 벌여 빚더미에 올라앉는, 낯 두꺼운 일은 벌어지지 말았으면 싶다. 땡볕에 더위 먹고 괜히 하는 지청구가 아니다.

조용연 여행작가  yeojup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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