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와생활 레저스포츠
한국의 강-달천(보은·괴산·충주)②이루지 못할 ‘사랑의 강’인가, 불심이 녹은 ‘벽계수’인가 

강 마을 사람들은 이루지 못할 남매의 사랑이 피눈물로 흘러 ‘달래강’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사람의 도리가 원초의 욕망을 가로막아 이긴 징표는 ‘달내’의 낙조를 더 슬픈 보랏빛으로 채색한다 했다. 이 강은 세상을 떠난 곳의 세상, 속리산(俗離山)에서 출발한다. 벽조목 보다 더한 인고의 세월을 지나 부처의 이마(佛頂) 그 미간백호(眉間白毫)에 오른다. 이윽고해탈의 법열 그 달디 단(甘勿) 니르바나에 다다른다면, 저 강은 피안으로 이르는 강, 달천(達川)의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화양동 계곡의 언저리, 청천

골짜기 마다 야영장이 들어서고 있지만 화양동 계곡은 그 원조쯤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우암 송시열과 그 문하의 파워가 이 나라 방방곡곡에 흔적을 남겼지만 화양9곡(국가지정문화재 명승)에 남긴 흔적은 입구에서부터 3km에 불과한 절승(絶勝) 곳곳 바위에 아예 각자(刻字)되어 있다. <大明天地崇祖日月(대명천지숭조일월)>, ‘조선의 하늘과 땅, 해와 달도 명나라의 것’이란 고집. 송시열이 누구인가. 노론의 선봉장으로서 도덕적 카리스마로 문화국가로 방향을 잡은 선비다.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이름이 오르내린 최대의 당쟁가이기도 하다. 그는 역모가 아니고 사약을 받은 조선조 유일의 사대부일 만큼 소신에 목숨도 걸었다. 그에겐 최고의 성인이라는 찬사와 편협한 고집불통 정치꾼이란 비난이 교차한다. 하지만 상대 논객 김익희가 붙여준, ‘말메 허물이 많다’는 뜻을 지닌 우암(尤庵)을 호(號)로 쓸 정도로 그는 큰 그릇이 아니었을까.

515번 지방도를 따라 북상한다. 청천 덕평에 이르면 달천은 속리산국립공원의 북쪽 끝자락인 칠성면의 깊은 협곡으로 사라진다. 산막이마을로 가는 길은 산속에서 똬리를 트는 임도를 넘어서야 한다. 골짜기 너머에 1957년 우리 국내 기술로 처음 만든 괴산수력발전소가 들어선 바로 그  괴산호(칠성저수지)를 만날 수 있다. 산막이마을로 가는 유일한 자동차 길인 셈인데 반대편 산막이옛길을 이용해서 괴산댐 쪽에서 밀려드는 탐승객의 눈치를 볼 생각에 주저된다. 다음 기회에 무리를 해서라도 넘어볼 여지를 두고 오늘은 차재를 넘어간다.

차재를 넘어 느티나무골 괴산으로

49번 국지도는 차재에 터널을 뚫어 놓았다. 터널 통과는 그 자체가 공포다. 도저히 다른 길이 없을 때 눈 딱 감고 가는 수밖에 없지만 차재(다락재)옛길이 남아 있다. 용도 폐기된 옛길은 고즈넉하다 못해 괴괴하기조차 하다. 도로 가운데까지 기어 나온 칡넝쿨을 밟고 갈 수 있는 것도 재미다. 생각만큼 정상은 높지 않다. 이미 길게 드러누운 산 그림자를 스치며 내려가는 그늘 내리막은 자전거가 느낄 수 있는 정복(淨福) 중 하나다. 이내 오천자전거길이 지나가는 문광교에 이른다. 괴산 읍내를 흐르는 성황천은 시내 구간답게 자전거길이 제대로 맞아준다. 괴산도 소읍인지라  휴일인데도 사람의 모습이 간간히 보일 뿐이다.

오천자전거길은 이미 자전거에 올라 먼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다. 오천(5川)은 쌍천, 달천, 성황천, 보강천, 미호천이다. 그 중 쌍천과 성황천은 한강 수계인 달천의 새끼다. 금강수계인 보강천과 미호천과는 배가 다르다. 괴산에서 하루 묵어가야 하는 여정이다.

불심(佛心)이 흐르는 강, 부처의 이마 불정(佛頂)

우리나라 산골짜기 어디에 절이 없을까마는 유독 달천의 느낌은 남다르다. 세속을 떠난다는속리산에서 법주사를 거친 물줄기는 괴산땅 칠성면을 지나며 괴강(槐江)으로 불린다. 토속신앙인 칠성(七星)의 영검하심은 절의 뒤란이긴 해도 높은 자리에 칠성각을 올려놓았다. 경향 각지에 있는 성불산 성불사가 감물(甘勿)에도 있고, 불정(佛頂)은 또 어떤가. 부처의 이마가 아닌가. 부처님의 미간백호(眉間白毫)의 광명상 자리가 여기다. 수달이 많이 살아 달천이든, 물이 달아 단내(달천)든 나는 구극(究極)의 니르바나(涅槃)에 이르는 달천(達川)이리라고 주석을 달아 본다.

고산정이 올라앉은 제월대에선 산막이옛길과 칠성면을 지나온 달천이 성황천을 다시 안고 몸피를 늘리는 모습이 시원하다. 배여울 이탄교를 지나면 강 저편에 김시민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가 건너다보인다. 감물면 소재지 오성교 앞에 이르러도 인적이 드물다. 하나밖에 없는 다방도 ‘만추(晩秋)’란 이름처럼 쓸쓸하게 닫혀 있다. 오랫동안 마을에 터 잡고 있던 감물치안센터도 잠긴 채 이젠 불정치안센터에 꼽사리 신세다. 감물중학교를 끼고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온통 뽕나무 천지다. 누에치기를 나라에서 장려하던 시절에 심은 나무는 키가 웃자라 있다. 검붉게 익은 오디가 제풀에 떨어진다. 차들도 뜸한 길이니 일부러 오디나무에 매달려 추억의 맛을 소환한다. 어쩐지 오디가 윤기가 없다. 어릴 적 먹던 그 윤기 나는 검붉은 열매는 어디로 간 걸까. 날이 가문 탓일까, 이미 촌스럽다고 떠나보낸 내 입맛 탓일까. 불정면 소재지는 목도교를 건너면서부터다. 몇 사람이나 찾아올까 싶은 장터도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지붕을 올렸다. 목도라는 이름이 돌림자인 간판은 한 업자의 같은 글체로 만들어져 자유롭지 못하다. 역시 논밭 뙈기가 많아야 부자다. 음성천이 달천에 합류하면서 만든 충적지가 목도리와 이담리의 제법 너른 들판이다. 한 가락 하는 고개 대간치(대간재)를 넘어 수주팔봉으로 가야 한다. 달천이 홱 물꼬리를 치며 조곡리 골짜기로 혼자 가는 탓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괴산IC 못미처 보이는 조곡터널 근처의 아름다운 풍광이 바로 그곳이다. 대간치에서는 전기자전거의 조력도 힘겹다. 전기자전거를 우습게 여기는 건각(健脚)들도 먼 여행길에서는 유혹을 받을 만하다.

수주팔봉에서 탄금대까지

대간치에서 수주팔봉까지는 한 달음 거리다. 하기야 강둑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장쾌함을 내 다리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백두대간 황병산과 선자령을 넘나들던 무모한 등판을. 아 옛날이여. 수주팔봉은 국토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정거장이다. 진안 죽도와 출생배경이 같다. 물길을 돌려 땅을 만들려던 사람들이 1963년 팔봉의 허리를 면도날같이 잘랐다. 장마 때를 제외하고 폭포라고 하기에는 간지러운 물이 그래도 흐른다. 폭포가 귀한 이 땅에서 그게 어딘가 하면 못 봐줄 일도 아니다. 향산리는 다리가 놓여서야 비로소 3번 국도와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라 헤매는 곳도 노루목 근처다. 수주팔봉으로 가는 길은 심산유곡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주저하는 것이다. 유주막다리까지 달천 옛길로 달리면 이내 충주 시내로 접어드는 강둑이다. 임경업장군의 묘지도 풍동 산 너머에 있고, 신립장군이 임란패전의 마지막 수를 둔 땅이 이 언저리이리라. 비포장1.5km를 그대로 둔 달천강둑의 자존심 때문일까. 탄금대에 이르러 한강에 안기면서도 전혀 비굴하지 않다.

조용연 여행작가  yeoju5@daum.net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용연 여행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