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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찢어진 백과사전과 댓글‘아니면 말고’ 사람 잡는 댓글, 증오의 배설일 뿐

겸손한 택시기사가 한 말, 나는 ‘찢어진 백과사전’

 

조용연 주필

오래전 일이다. 

택시에 타자 뉴스를 듣던 기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망할 놈의 세상’이라고, 주제가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마도 세상 돌아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했다. 

내가 몇 마디 거들자, 정치, 경제 종횡무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이래서 도지사를 한 분도, 대권을 꿈꾸는 분도 택시운전면허를 따서 민심과 여론을 직접 들으려 했나 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정말 놀라워요.” 했더니 “뭘요, 온종일 라디오 듣고, 손님들하고 얘기 나누다 보니 그렇게 됐지요. 하지만 ‘찢어진 백과사전’이나 다름없죠.”

그의 겸손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표현이 되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세상이 바뀌어 사이버가 현실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신세계가 노트북과 휴대폰의 액정화면 위에 초고속으로 나타나고 사라진다. 모르는 게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따로 없다는 착각이 들기도 할 정도다. 

사이버는 참여를 미덕으로 여겼고, 온라인 세상은 수평적 기울기를 유지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 믿음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묻고 답하는 기능은 점차 자기 목소리만 실은 확성기를 틀고 있는 셈이 되었다. 댓글의 순기능은 역기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설 자리가 비좁아져 버렸다.

익명에 기댄 요설이 독설로 변하고, 칼날 되어 상대의 심장을 찌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수 설리(최진리)나 구하라를 죽음의 벼랑으로 떠민 것도 ‘갈 데까지 가보자’는 잔인함의 끝판이다. 

오죽했으면 그 유명한 영어 선생 민병철 회장이 ‘선플(착한댓글)운동’을 주창하면서 파괴되어가는 젊은이들의 심성을 구하자고 외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제는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좌우 청백전 또한 ‘죽기 아니면 살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이버세상의 안개가 현실까지 뒤덮고 있다.

악플을 다는 이유는 명료하다. 분노가 5할이 넘고, 시기·질투, 스트레스 해소, 단순 장난이 나머지를 비슷하게 차지한다. 미국판 사이버 왕따 ‘캔슬(Cancel) 문화’가 창궐하고 유럽에서는 기자의 1/3이 악플에 시달린다고 하니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라고 위안해야 하나.

악성 댓글은 모바일 중독에 빠져 걸어가며 전신주와 충돌도 불사하는 모바일결핍공포증(nomophobia) 사이를 파고든다. ‘좋아요’ 개수에 하루 기분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싫어요’의 거꾸로 엄지를 보는 순간 우울해진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사이버 경찰의 힘을 빌려 범인을 잡고 보면 허탈하기까지 하단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는 말에 털썩 주저앉는다. 댓글을 아무 생각 없이 단다는 점이다. 기껏 생각한다 해도 난시로 본 세상, 제 잣대로만 본 세상에다 자기의 분노를 담아 댓글로 난자(亂刺)하는 것이다. 

악플은 범죄다. 

상대는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관점으로 우선 보아야 한다. 부족한 구석이 많은 게 인생이라는 연민이 넉넉한 가슴을 열게 한다. 따뜻한 말이 팍팍한 세상살이를 ‘살아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로 만드는 윤활유가 된다.

잘 모르면 감탄하며 배우면 된다. 생각이 다르면 ’이건 어떨까요‘하고 넌지시 내밀면 된다.

그래도 악플의 공습은 계속된다. △AI(인공지능)의 힘을 빌려서 ‘노란딱지’라도 붙인다면 악플이 좀 즐어들까. △경찰이 사이버 패트롤을 음란물 단속하듯 열심히 해준다면 좋으련만 그 또한 ‘표현의 자유 침해’ 운운하면서 사이버 날쌘돌이들이 대들까 봐 기대하기도 쉽지 않겠다. △요즘 공공근로 일자리도 늘어나는데 ‘민간사이버순찰대’를 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상습 악플을 다는 사람은 형사처벌과 함께 사이버공간 정화를 위한 ‘봉사명령’을 부과하는 것은 어떨까. △일손이 달려 변호사들이 파업까지 하는 ‘법률구조공단’에게 ‘사이버법률구조’업무까지 부탁한다면 너무 과중한 일일까. 별별 생각을 다 해 본다. 

우리는 저마다 세상 다 아는 것처럼 참견하지만 정말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야말로 저마다 찢어진 ‘백과사전’이 아닐까.

편집국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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