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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54. 흙으로 만든 죽
장주식 작가

삼년 전에 집 울타리 삼아 5년생 측백나무 백 그루를 심었습니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더구나 50그루는 보강토 위에 새로 쌓은 흙에 심었지요. 자갈도 섞여 있고 거름기도 없으며 물도 쑥쑥 빠지는 높은 곳에 묘목을 심으니, 환경이 썩 좋지 않았던 셈이죠.

그런데 삼년이 지난 지금, 단 한그루도 죽지 않고 싱싱하게 잘 살았습니다. 푸른 잎을 단  튼튼한 줄기를 만져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키도 처음 심을 때보다 다섯 배는 컸습니다. 싱그러운 측백나무 향을 맡으며 노자의 말을 생각합니다.

“잘 세우면 뽑히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측백나무 어린 묘목을 싣고 와 심어준 추 선생님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추 선생님은 나에게 묘목을 팔고 직접 싣고 와서 나무를 심어 준 분입니다.

묘목은 하나같이 뿌리가 동그랗게 묶여 있었습니다. 추 선생님은 뿌리 묶은 줄을 하나하나 다 자르더군요. 내가 보기엔 뿌리가 흙을 끌어안고 있도록 두어야 좋을 것 같았는데요. 그래서 내가 물었죠.

“그냥 두는 게 낫지 않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새 흙에 적응하려면 풀어주는 게 낫습니다.”

추 선생님은 일일이 줄을 자르고 흙을 털어내 뭉친 뿌리를 폈습니다. 재미있는 건 ‘흙죽’을 쑤는 일이었죠. 구덩이를 파고 묘목을 놓은 다음 물을 붓습니다. 보강토 위에 쌓은 흙이라 물은 순식간에 잦아들더군요. 그러면 새 흙을 넣고 또 물을 붓습니다. 물이 더 이상 잦아 들지 않을 때까지 흙을 다지면서 물을 계속 붓습니다.

“이게 흙죽이랍니다.”

추 선생님은 걸쭉한 흙을 손으로 만지며 말했습니다. 흙죽이 잘 만들어지자 물 빠짐 속도가 느려지더군요. 그걸로 끝인가 했더니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물이 빠지고 나서, 두 번이나 더 물을 채워 물이 더 이상 잦아들지 않을 때까지 계속 흙죽을 만들었습니다. 물 빠짐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무렵, 추 선생님은 구덩이에 흙을 매우더군요. 그런 다음 5그루 간격으로 쇠막대를 박고 단단한 노끈으로 묘목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묶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 뿌리가 안착하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추 선생님이 설명해줬습니다. 묘목을 다루는 추 선생님의 정성에 감동한 하루였습니다.

10월말에 심은 측백나무들은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잘 견뎠습니다. 어린 묘목을 잘 세운 덕분에 강풍에도 휘어질지언정 조금도 뽑히지 않았으니까요. 그뿐이 아닙니다. 노자의 다음 말도 추 선생님은 정확하게 실천했습니다.

“잘 끌어안으면 빼앗기지 않는다.”

바로 그렇습니다. 묘목의 뿌리가 흙을 잘 끌어안을 수 있었습니다. 추 선생님이 몇 번이나 반복하여 걸쭉하게 흙 죽을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잘리고 약해진 뿌리가 흙을 잘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 주었으므로 어린 나무는 목숨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잘 세움과 잘 끌어안음’을 안다면 세상을 경영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내 몸에 닦을 수 있다면 그 덕은 참되고, 넉넉하며, 어른스럽고, 풍부하며, 두루두루 퍼져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추 선생님이 나무 심는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흐뭇합니다. 추 선생님이 나무에 보여준 덕이 정성스럽고 넉넉하여 나무에게만이 아니라 지켜보던 나에게도 스며들었으니까요.

 

<노자 도덕경 54장 : 善建者不拔(선건자불발)하고 善抱者不脫(선포자불탈)하니 子孫以祭祀不輟(자손이제사불철)하리라. 修之於身(수지어신)이면 其德乃眞(기덕내진)하고 修之於家(수지어가)이면 其德乃餘(기덕내여)하고 修之於鄕(수지어향)이면 其德乃長(기덕내장)하고 修之於國(수지어국)이면 其德乃豊(기덕내풍)하고 修之於天下(수지어천하)면 其德乃普(기덕내보)하리라. 故以身觀身(고이신관신)하고 以家觀家(이가관가)하고 以鄕觀鄕(이향관향)하고 以國觀國(이국관국)하고 以天下觀天下(이천하관천하)하리니 吾何以知天下然哉(오하이지천하연재)오? 以此(이차)하나니라.>

 

잘 세우면 뽑히지 않고 잘 끌어안으면 빼앗기지 않으니 자손대대로 후세에도 기리어 받듦이 끊이지 않으리라. 그것을 내 몸에 닦으면 그 덕이 참되고 집안에 닦으면 그 덕이 넉넉하고 고을에 닦으면 그 덕이 어른스럽고 나라에 닦으면 그 덕이 풍족하며 천하에 닦으면 그 덕이 두루두루 퍼지리라. 그러므로 내 몸으로 남의 몸을 볼 수 있고 내 집안으로 남의 집안을 보며 내 고을로 남의 고을을 보며 내 나라로 남의 나라를 보며 내 세상으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 내가 어찌 세상이 그러한 것을 아는가? 바로 이것(잘 세우고, 잘 끌어안는)으로 안다.

장주식 작가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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