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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둑길-강원-평창강①

한국의 강둑길-강원-평창강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1.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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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700 평창’의 이름을 오롯이 지닌 강, 평창강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평창’은 이제 세계인들의 입에도 오르내린 이름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거치면서 백두대간과 고원지대를 품은 평창은 겨울스포츠의 본산으로 거듭났다. 
평창강은 아래로 갈수록 감입곡류의 본때를 보여주듯 휘감아 돌며 곳곳에 절승을 만든다. 일찌감치 개명한 한반도면에 이르면 동강의 배필이 되어 이름마저 서강으로 바꾼다. 시집간 여인이 택호를 부여받듯, 수컷 동강과 암컷 서강의 음양 대칭도 둘이 합궁하는 영월에서 비로소 끝난다.

  

단풍이 녹아내리는 안개강, 흥정천

평창강의 물줄기는 동쪽으로는 오대산(1,539m)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계방산(1,577m) 아랫자락 운두령 언저리에서 시작(덕거천)하고, 서쪽으로는 봉평에서 서석으로 넘어가는 구목령재 아래에서 시작하는 흥정천에서 비롯된다. 오대산과 계방산의 위세가 너무 커서인지 1,274m 나 되는 산이 제대로 이름조차 없다. 가로지르는 연봉이 거대한 산맥이어서다. 보래령, 자운치, 불발현, 장곡현 같은 고개들도 모두 1,000m급 어간이다.

하니 명경지수가 흘러내리는 흥정천이 안개로 덮여 유혹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허브나라농원에서 평창강 여행을 시작한다. 안개 속으로 한 무리의 자전거 행렬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1,000m의 산록에 걸린, 멀미 나게 어지러운 임도는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의 천국이다. 운두령까지 온종일 단풍에 물들어 골짜기를 넘나드는 마니아들의 환호를 이해하고말고.

봉평까지 오는 시오리 길에도 안개는 동행한다. 이른 아침 봉평에 들른다 해도 ‘이효석문학관’이고 ‘물레방아간’이고 문을 연 곳이 없을 테니 그냥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 간다.

단편소설 한 편의 힘, 봉평과 메밀꽃

이 조그만 촌읍 봉평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명해졌겠는가. 이효석과 ‘메밀꽃 필무렵’이란 짧은 소설 때문이다. 소설 속 한 문장, 강렬한 시어 한 줄기는 엄청난 힘을 가진다. 메밀밭을 소금밭으로 그린 회화적 서술은 한국인 서정의 고향인 봉평을 그리는 채도를 결정한다.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상상 창고에는 마방이나 주막거리의 풍경으로 봉평장이 그려져 있다. 세련미 넘치는 이효석문학관과 볼거리를 접하고는 뭔가 허전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을엔 반듯하게 양옥이 들어서고, 장터의 난전은 알록달록한 아낙들의 옷을 진열한 옷장수들 1톤 트럭이 차지하고 있다. 세월 따라 저자거리 풍경도 달라진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어딘가는 그 원형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은 거다. 겨울 초입의 햇살을 안고 허생원과 나귀가 강둑길에서 길손을 반긴다. 동이가 허생원을 업고 건넌 시내에는 돌다리도 섶다리도 복원되어 소설속의 영상을 눈앞에 만들었다.

<메밀꽃 필 무렵>이 한국적 서정의 완결이거나, ‘시로 쓴 소설’이라는 영탄조의 평가는 잠시 접어두자. 장돌뱅이 허생원이 동이가 제 자식임을 확인하는 그 가슴 시린 부정(父情)이 오히려 아버지와 그다지 살갑지 못했던 효석의 일생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새롭다. 열 살도 되기 전에 백 여리 떨어진 평창으로 일찌감치 집을 떠나 소학교를 다닌 이효석이 아니었더라면 보름달 아래 메밀꽃의 풍광을 하얀 소금밭으로 그려낸 그 명문장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들이 미리 알아본 금당계곡

골짜기로 내려오는 길은 장평IC 입구를 지나 백옥포에 이를 때까지 죽 내리막이다. 아직 근육이 덜 풀린 채로 안장 위에 앉으면 그저 내리막이 고마울 뿐이다. 허생원이 대화장으로 가고, 이효석이 걸어왔을 메밀꽃 흐드러진 길은 지금은 재치고개 넘어 대화, 평창으로 가는 31번국도 언저리다. 백옥포는 운두령에서 내려오는 속사천이 마지막 꽈배기를 틀고 흥정천과 합류하면서 금당계곡을 만드는 초입이다.

강원도 골짜기를 헤매던 게 나의 20대 때니 40년도 더 된 일이다. 막 개통한 영동고속도로 이목정 근처를 지나다 보면 정돈화 농장의 엔실리지(사료탑)가 늠름한 이정표였다. 그는 요즘말로 ‘농업 신지식인’이었다. 호텔에 납품하는 파슬리와 크리스마스에 출하하는 수박을 저장한 뒷산 토굴 창고를 보여주며 우연한 길손에게 수박을 기꺼이 잘라 주었다. 강원도 산비탈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은 평생 자랑거리였다. 이제 사람도 가고, 그의 공적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금당계곡의 경치는 과연 ‘금당’이란 이름값을 한다. 그 좋은 경치와 영동고속도로에 인접한 입지를 예술가들이 놓칠 리 없다. 일찌감치 화가들이 몇씩 짝지어 들어와 별장을 겸한 창작의 산실을 계곡의 산비알에다 잡았다.

게천평 마을을 지나자 나타나는 거대한 교각은 산을 뚫고 평창역을 외딴 산간에 만들었다.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개최가 확정되었을 때, 스포츠그랜드슬램의 달성(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8평창동계올림픽)은 감격 그 자체였다. 3수까지 했으니 오죽했으랴. 그 구체적인 징표를 이 철도부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도 냄비근성일까. 65조의 경제효과를 기대한다는 장미빛 청사진은 “눈 대신 돈이 쏟아진다.”고까지 표현했었다. 그러나 막대한 강원도지방채를 발행해야하는 입장에서, 인천아시안게임의 뒤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자체의 현실은 어두운 참 고서였다. “돈 대신 폭설이 쏟아져 빙판이 지고 말 것”이라는 관측도 떠돌았다.

어쨌거나 동해바다로 가는 길은 가까워졌고, 평일에도 KTX 산천표는 매진 행진이나 온통 터널의 연속인 레일 위에서 산협의 장관을 보기는 다 틀렸다.

유포리를 지나 개수리에 이르러도 금당계곡의 양안은 경사가 급해 밭뙈기조차 옹색하다. 오래도록 이 길은 차들이 조심스럽게 다닐 수밖에 없는 시멘트 포장 외길이었다. 금당계곡이 끝나고 대화천과 만나는 하안미리까지 도로포장이 끝났다. 왕복 2차로에다 갓길까지 만들자니 벼랑을 까는 구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제 이 땅은 느리게 가고 싶은 길을 거의 다 잃어 가고있는 중이다.

불편하고 느린 게 남는 장사가 되는 날이 코앞에 왔는데도 길은 벼랑을 문질러 곧게 곧게 뻗어만 간다. 세계적인 프리랜서 보도사진작가모임인 ‘매그넘’의 전 회장 브루노 바베이가 “삶의 템포를 늦추면 옛것의 가치가 보인다”고 한 말이 그 말이다. 개수리 봉황대에 이르면 이미 포장공사가 완료된 한산한 도로가 차를 그리워한다. 서쪽으로 덕수산과 장미산자락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유등마을 뒤로는 봄이면 취나물이며 다래순이 골짜기 가득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늦게 나오는 강원도의 봄나물을 뜯기 위해 5월 하순이면 찾아오던 산비알이 저만치서 아득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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