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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짝퉁과 가짜뉴스

여강여담- 짝퉁과 가짜뉴스

  • 기자명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 입력 2020.01.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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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가가 판치는 세상, ‘네가 가짜’라고 서로 삿대질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보통사람도 행간의 의미까지 읽어야 하는 피곤한 세상


서로 가짜라고 하는 세상이다. 1993년 대박이 난 노래가 있다. 눈동자를 한곳으로 모으면서 우스꽝스런 몸동작으로 ‘짜가가 판친다’고 노래를 부르던 신신애에겐 차라리 풍자와 탄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가짜고 나는 진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에는 오로지 목적을 향한 책략만이 묻어있을 뿐이다.

가짜 달걀을 만들고, 공업용 알콜로 가짜술을 만들고, 가짜문화재, 가짜 상어 지느러미까지 가짜에 관한 한 중국은 종주국이라 할만하다. 2004년 베이징에서 일할 때였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열리지도 못한 ‘NBA농구대회’가 열린다고 해 갔더니 보통 근로자의 한 달 수입에 맞먹는 입장료였는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228cm 세계 최장신 야오밍(姚明)이 미국농구에 진출해 인기를 끌던 터라 농구의 열풍을 실감했다. 정문에는 암실 비슷한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가짜표를 골라내는 기계였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적발되어도 ‘들켰다’하는 정도지 망신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우리의 웃돈 수준의 암표가 아니라 완전한 위조였지만 경찰에 넘기거나 그런 것은 아예 없었다. 그 덤덤한, 일상화된 가짜의 현장이 내게만 충격이었다.

이젠 가짜라는 말보다 ‘짝퉁’이라는 단어가 더 자연스레 쓰인다. 국어대사전에도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단어”라고 엄연히 올라있다. 관세청 뉴스나 경찰청 홍보 자료에도 정식으로 사용하는 단어다. 짝퉁의 어원에 대해 뒤져보니 ‘짜가퉁이’의 줄임말이라는 설명이 버젓이 올라있다. 가짜가 ‘짜가’가 되고, 안 좋은 말에 붙인다는 ‘퉁이’가 붙어서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아예 가짜가 짜가가 되고, ‘짝’이 된 것인데 명품백으로 유명한 **똥이 붙는데 어감이 나빠서 짝퉁이 되었다고 설명하는 축도 있는데 아무리 봐도 그 설명은 짝퉁인듯하다.

순전히 이건 내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짝퉁은 종주국 중국말에서 비롯된듯하다. 원래 중국어로 가짜물건은 쨔후어(假貨)다. 가짜라는 ‘쨔(假)’에 물건이라는 뜻의 뚱시(東西)의 앞자가 붙어서 ‘짜뚱’이 되고 ‘짝퉁’으로 음운변천 해온 것이 아닌가하는 추론이 합리적이다.

특히 지난해는 트럼프 발 가짜뉴스의 쓰나미가 태평양을 건너오고 전 지구를 뒤덮더니 서로가 개판이 되어버렸다는 우리 정치판까지 가짜뉴스로 뒤덮였다. 사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우리에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서민 대중에게 복잡한 용어가 점점이 박혀있는 법률 제정 과정에 토론은 없고 격론만이 있는, 급기야 법이 무서워 몸싸움은 차마 못 하고 악을 쓰는 격돌이 생중계 된다. 세계는 앞으로 가는데 우리만 뒤로 간다고 보수는 주장하고, 이건 앞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고 진보는 주장한다. 벌어지는 사건마다 ‘너희는 가짜’라고 낙인찍으며 삿대질 한다.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뉴스 낙인찍기는 디지털시대의 짜깁기 기술과 현상의 뽀샵을 통해 더욱더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가짜는 전체가 가짜가 아니다. 진짜에 가깝게 어떤 배합으로 섞어야 하는지를 ‘가짜 덧씌우기’ 기술자는 잘 알고 있다. 진실에는 가짜뉴스로 대응하고, ‘짜가뉴스’에는 진짜보다 더 감쪽같은 짝퉁을 넣어서 만드는 희석식 뉴스로 현실은 얼얼해진다. 여기서 어느 뉴스가 가짜인가를 예로 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현실은 소셜미디어 정보의 30%가 거짓이라는 세상이다. ‘민인에 대한 만인의 가짜전쟁’이 본격 시작이다.

이제 판사, 검사, 경찰은 더 고달파 지게 되었다. 공수처가 만들어져서 처벌이 강화되어 소위 공무지도층 인사들이 받게 될 고통 때문이 아니다. 신문을 펼쳐 드는 순간, 판·검·경 이들 권력 3종 셋트의 활약상은 헤드라인 아래에 빛을 발한다. 당사자들이야 억울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판사, 검사, 경찰은 ‘의심으로’ 밥벌이를 하는 직업이다. 가짜의 순도가 높아갈수록 이들이 진실의 경계를 찾는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서민 대중 또한 그렇다. 신문기사 하나에도 행간에 숨어 있는 내용을 읽어내야 하고, 범람하는 영상물 속에서 편집과 짜깁기로 잘려나간 화면까지 복원해 가며 화면을 이해해야 하는 피곤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쿠아 유리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세상은 결국 전편 ‘모자이크 처리’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AI판 ‘짜가 감별기’가 제대로 작동되는 그날까지라도 정신 차리고 세상을 봐야 한다. 국민이 똑똑해도 속는 판이니 독하게 명철해지지 않으면 속아 넘어가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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