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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53. 큰길로 가겠다
장주식 작가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지은 ‘큰 길로 가겠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한 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지요.

 

큰길로 가겠다

집에 오려고 하니
아이들이 있었다 .
아이들이 나보고 
나머지라 할까 봐
좁은 길로 갔다.
왜 요런 좁은 길로
가야 하나.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하노.
난 이제부터
큰길로 가겠다.

 

경북 울진 온정초등학교 3학년 김형삼이 1985년에 쓴 시입니다. 담임교사 이호철선생님이 아이들 시를 엮어서 세상에 알려졌고, 가수 백창우는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 불렀습니다. 시에 등장하는 ‘나머지’라는 단어는 정규 수업이 끝난 뒤 남아서 보충 공부를 하는 아이를 부르는 말입니다.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말인 것이죠.

김형삼은 큰길에서 노는 아이들이 ‘나머지’라고 놀릴까봐 좁은 길로 도망치듯 집에 간다는 겁니다. 몇 번 그렇게 좁은 길로 가다가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요런 좁은 길로 가야하노, 하고 말이죠. 그리고 수모와 굴욕감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일으켜 세웁니다. 나는 이제 큰길로 가겠다! 는 선언은 나머지라고 놀리든 공부 못한다고 놀리든 가슴 펴고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놀림이 두려워 큰길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나에게 조그마한 앎이 있다면 ‘큰길로 가야 한다는 것’인데, 한 가지 두려움은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10살 김형삼은 노자가 말한 ‘앎’을 시로 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거나 누군가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절절한 경험에서 터득한 앎입니다. 그래서 훨씬 감동을 줍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큰길은 평탄한데도 사람들은 좁은 길을 좋아한다.”

큰길은 걷기 편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좁은 길을 좋아한다고 노자는 진단합니다. 큰길로 가고 싶어 하는 김형삼의 시와는 아주 다른 진단입니다. 좁은 길로 가 본 김형삼은 큰길로 가겠다고 선언하는데, 김형삼의 좁은 길은 수모와 굴욕의 길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좁은 길이란 무엇일까요?

노자의 진단에 따르면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허리에 차고, 음식을 물리도록 먹는’ 그런 길입니다. 온 나라 백성들 창고는 텅텅 비고, 논밭은 묵고, 정부마저 싸움질만 하는데도 몇몇 좁은 길을 가는 세력들만 호의호식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노자가 말하는 좁은 길은 ‘도둑질을 과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지금 지구에 사는 인류는 심한 불평등의 늪에서 허우적댑니다. 한쪽에선 재화가 남아돌고 물리게 음식을 먹지만 한쪽에선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다 굶어 죽어갑니다. 불평등 구도를 만드는 세력이 바로 좁은 길을 좋아하는 자들이고 ‘도둑질을 과시’하는 세력입니다. 인류가 함께 나눠가져야 할 재화를 도둑질 해다가 자기 창고에 쌓아두고 썩히는 행위를 하는 세력이기도 합니다. 이 행위를 하는 세력의 좁은 길은 김형삼의 ‘수모와 굴욕’의 길보다 더욱 나쁩니다. 따라서 어서 빨리 그 세력들은 좁은 길에서 나와 큰길로 가겠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이때 큰길이란 ‘고르게 행복하고 다 함께 평화로운’ 그런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 53장 : 使我介然有知(사아개연유지)라면 行於大道(행어대도)하여 唯施是畏(유시시외)하나니라. 大道甚夷(대도심이)하지만 而民好徑(이민호경)하여 朝甚除(조심제)하고 田甚蕪(전심무)하고 倉甚虛(창심허)한데 服文綵(복문채)하고 帶利劍(대리검)하고 厭飮食(염음식)하며 財貨有餘(재화유여)하니 是謂道夸(시위도과)라 非道也哉(비도야재)로다!>

 

나에게 조그마한 앎이 있다면 ‘큰길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오직 한 가지 두려움이 있다면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큰길은 매우 평탄한데도 사람들은 좁은 길을 좋아하여 조정은 서로 싸우기만 하고 논밭은 황무지가 되고 창고는 텅텅 비게 된다. 그렇지만 한 쪽에선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날선 칼을 허리에 차고 음식을 물리도록 먹어대며 재화가 남아도니 이를 일러 ‘도둑질을 자랑하는 일’이라 한다. 이 얼마나 잘못된 길인가!

장주식 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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