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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21살이 부르는 ‘신라의 달밤’열광하는 팬심, 복고풍에서 위안받는 팍팍한 시대

중2 때부터 이미 옛 가요에 푹 빠져 살아온 청년

조용연 주필

대중음악, 정확히 말하면 트로트의 또 하나 샛별이 떴다. 송가인 열풍에 놀란 공중파가 가족노래 자랑을 잠시 중단하고 긴급편성해서 만든 트로트 경연으로 21살 청년 조명섭이 등장했다. 

급기야 KBS 2019년 연예대상 핫이슈 예능인상을 수상하며 꿈만 같은 ‘가요무대’에도 올랐다. 

이미 유튜브에서는 그의 인기를 본능적으로 알아챈 유튜버들이 앞다투어 그의 노래와 길지 않은 인생까지를 파헤쳐 올리며 유혹한다. 

복고풍 트로트에 위로받는다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시대가 그만큼 ‘팍팍하다’는 증거라는 분석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신라의 달밤’을 코끼리 현인 선생을 빼다 박은 목소리와 창법으로 노래할 때 심사위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현인의 목소리에 남인수를 살짝 비벼놓은 듯하다. 

그의 노래에는 현인의 경상도 사투리의 발음까지도 닮아있다. 포마드를 발라 정갈하게 빗어넘긴 머리에서 남인수의 얼굴을 떠올리고, 현인이 다시 현신한듯한 느낌은 삽시간에 전국을 강타했다. 트로트 팬들의 놀라움이 유튜브의 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가 부르는 ‘이별의 부산정거장’‘꿈속의 사랑’에는 6.25 전란이 끝나고 피난지 부산을 떠나야 하는 사랑과 이별의 시대를 소환하는 힘이 담겨 있다. 중저음의 바리톤이 감미로운 그는 꺾기로 넘어가는 트로트의 현란한 기교와도, 쥐어짜는 눈물의 트로트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의 인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게 된 배경은 단순히 노래만이 아니었다. 

무대에서, 라디오에서 초대받은 그가 들려주는 말은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진심이 담겨 있다. 12살에 듣게 된 ‘신라의 달밤’을 통해 할아버지 이전 세대의 노래에 푹 빠지게 된 그에겐 가난하고 외로운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그를 키워준 외할머니의 옛가요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젖어 들었을 것이다. 

혼자 발성을 공부하고, 옛 노래를 이해하고 싶어 그 시대를 탐색하던 그에게 이난영, 김정구, 남인수, 현인은 존경하는 스승이었지만 걸그룹은 관심 밖이었으니 부모의 걱정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이 엉뚱한(?) 애늙은이의 가요탐닉은 14살 때 공중파의 ‘스타킹’에 출연할 정도로 소문이 나 있었다. 16살 때 ‘가족노래자랑’에 출연했던 화면에서 진방남(작사가 반야월의 가수명)의 ‘마상일기’를 모창하고, 가장 보고 싶은 가수가 <홍콩아가씨>의 금사향이라고 말할 때 방청석은 뒤집어졌다.

어쨌거나 그는 병과 가난을 딛고 일어섰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하는, 그의 어눌한 듯한  한 마디 한마디는 속이 꽉 들어차 있다.

“현인 선생님의 시대나 우리 시대나 어려움은 각기 있지 않았을까요.”

“세상에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데 저도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인데요....”

“보여주기 위한 노래보다 편하게 자기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노래가 좋습니다.”

세계를 휩쓰는 K-POP의 주역들이 기획사의 철저한 조련의 결과인 반면, 트로트의 정점에 설 수 있는 자격은 쉽게 키워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놀랍다.

어느 평론가는 모창의 한계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명섭은 재즈와 팝송을 즐겨 부르고 폴 킴의 발라드를 좋아하는 정도로 노래의 진폭이 넓다. 샹송까지 부르는 그로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그가 추억의 옛노래와 오늘의 트로트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레트로의 열풍 속에서 잠깐 떠오르는 가수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물 들어올 때 배 띄워야’하는 입장에서 군 입대를 미뤘겠지만 긴 호흡으로 앞을 내다보기 바란다. 국방의 얼룩무늬에서 배울게 따로 있을 것이다.

시골 학교 동창회 송년 모임에서도 불려가 노래를 불러야 했던, 고달팠던 시간도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송가인 열풍’이 국민들을 트로트 무대로 불러 내세운 공은 인정하더라도 수천만 원짜리 출연료로 교란되는 지방 축제 행사 시장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그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옛 가요의 미래 버전을 기대한다. 대중가요계가 모처럼 만난 한 천재가 정통트로트 가요의 진짜 별이 되기 바란다.

조용연 주필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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