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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둑길6-강원 섬강①

한국의 강둑길6-강원 섬강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19.12.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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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서의 골짜기를 흘러가는 두꺼비 같은 강

횡성 제일의 태기산 산 더덕이 녹아 흐른다는 섬강은 과장이 아니다. 
양두구미재의 구불거림만큼이나 휘감는 감입곡류는 골짜기마다 복주머니 하나씩을 물길 옆에 매달아 놓았다. 
복록을 기원하는 우리네 믿음 한 가운데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두꺼비 한 마리, 산협 계곡에 바위로 올라 앉아 물길을 지킨다.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강둑길을 따라간다. 섬강교 버스 추락으로 숨진 부부교사 일가족은 소설보다 더 처절하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잊혀진 전설 그 현장 섬강교로 달려간다. ‘섬강에서 하늘까지’로

 

태기산 산 더덕이 녹아 흐른 물

섬강(蟾江)이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은 중앙선 간현역 근처 병암(屛岩)에 놓인 두꺼비 바위에서다. 태기산(1,261m)은 횡성 제1의 산답게 유동천과 계천을 거느리면서 골짜기의 물을 쏟아내 섬강을 살찌운다. 섬강 물길에 횡성읍과 원주 같은 도시들이 매달려 있으니 적잖이 물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갑천면 대관대리 호리병 같은 협곡에 댐을 막았다. 중금리 부동리를 비롯한 갑천면의 5개 마을은 여느 댐들처럼 반대 속에도 물속에 잠긴다. 10여 년의 공사 끝에 2000년 횡성호가 탄생한다. 갑천면 소재지도 물에 잠겨 통째로 옮겨 앉아 현대식 건물에 조형미 있는 간판을 내건 새 단장은 이 산골에 생뚱맞을 정도로 단정하다.

이렇게 섬강의 시발은 횡성댐이 된다. 한 팀의 자전거들이 댐을 올라와 횡성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새벽같이 서울을 출발해서 버스로 횡성까지와 이제 섬강을 따라 남한강 자전거길로 해서 양평에서 귀경할 예정이란다. 이른 시간이라 자전거를 발견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프닝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다행이다. 마음 같아서야 횡성읍내까지라도 함께 가면서 얘길 나누고 싶지만 그들의 여정은 녹녹치가 않았는지 서둘러 떠나간다.

태기산 골짜기를 이야기하면서 병지방 계곡을 빼놓을 수가 없다. 30리 남짓한 골짜기는 횡성에서도 오지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개울가 캠핑의 최적지여서 여름 한 철 붐빈다. 어답산을 끼고 돌면서 만들어낸 물줄기도 만만찮아서 댐 아래 섬강으로 직접 물을 보탠다. 횡성댐에서 횡성읍에 이르는 13km의 길은 ‘섬강길Q’라고 따로 붙여 놓았다. 아직은 어리지만 벚꽃 피는 계절에는 제법 모양새가 날 듯도 하다. 수백교가 있는 마옥리에 이를 때까지 자전거와 차량은 섞여 달린다.

물과 가장 가까이 달리는 섬강길

자전거도로답게 시원하게 달리던 강둑길은 횡성읍내가 멀리 보이는 지점 내지리를 지나면 몸을 아예 낮춘다. 횡성읍의 둔치에 다다르면 거의 물길과 수평에 가깝게 시선을 던질 수 있다. 고압적인 둔치에 익숙한 눈에는 색다른 편안함이다. 이제 막 유효기간이 다해가는 여름이 아쉬운 텐트들이 둔치를 벗어나 강변 모래밭에 자리를 틀고 있다. 아이들은 삽으로 모래를 파서 성을 쌓으면서 강물과 한 덩어리가 되고 어른들은 반은 졸린 눈으로 그들을 살핀다. 펄럭이는 깃발과 긴급대피 안내용 스피커는 언제라도 작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물이 졸아버린 강바닥을 보며 지난 여름 성난 급류를 떠올리는 것은 걱정 많은 삶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유독 말 안 듣는 피서객들과 한판 씨름에 지친 구조대원들의 표정도 오버랩된다. 물에 잠기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둔치, 그것도 거의 강물과 나란히 흘러가는 기울기니 여름은 그야말로 한 철 내내 비상이다. ‘특수임무수행’이라는 자원봉사차량의 스티커는 고압적이지만 차라리 고맙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각,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강마을로 나가야 한다. 자전거길의 음식점은 우선 길에 가까울수록 좋다. 아무리 맛있는 집이라도 지친 몸을 끌고 읍내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는 것은 무리다. 아주머니가 창틀에 엎드려 청소를 하고 있다. 창틀 구석구석까지 닦는 집은 깨끗하고 맛있지 않을까. 연탄불에 끓이는 곰탕, 입맛을 저버리지 않는다.

최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횡성교에서는 아예 섬강길 우회를 안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었을 법하다. 다리를 건너 지방도로를 타고 하류로 향한다. 오래전부터 있던 군부대 때문에 강변으로 내는 데크 조차 연결하지 못했다.

강둑길은 원래 들판이 넓어져야 도로와는 분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한 감입곡류로 용틀임하는 물길에서는 아예 길을 포기하고 강둑의 역할을 벼랑에 맡기고 멀찌감치 물러난다. 섬강길의 상당 부분도 그렇다. 치루개재를 넘어서면 호저면 광격리다. 평범한 시골길에 한 음식점이 눈에 띈다. 간판도 웃자란 잡초에 반은 가려 있다.  막국수집이다. 마침 식사를 마친 마을사람들이 문을 나선다. 하루 점심에 세 시간만 하는 집, 더 이상 메뉴가 붙어 있지도 않다. 일부러라도 다시 와서 먹어 보리라. 하루 세 시간만 하고도 장사가 되는 집의 국수와 메밀묵 맛은 어떤지.

고산마을을 지나면서 길가의 검은 비석 하나가 발길을 불러 세운다. 세월이 덜 묻은 오석에 새겨져 있다.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뒷면의 사연은 이렇다. 최보따리선생은 수운 최제우 선생을 이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애칭이다. 작은 보따리 행장을 하고 마을마다 찾아다니면서 민중과 함께한 그를 말한다. 한국의 간디로 불리는 해월은 새로운 세상을 꿈꾼 미완의 혁명가다. 부패한 조선왕조에 신분과 차별이 없는 세상,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는 ‘人乃天’ 사상을 설파하니 기울어가는 조선이지만 혹세무민하는 위험한 역도들의 수괴라 볼 뿐이었다. 1898년 원주군 호저면 송골마을에 기거하던 중 그는 경병(관군)에 잡혀 교수형에 처해 생을 마감한다. 그 후 9년 뒤인 1907년, 힘없는 대한제국은 참 속절없게도 해월의 무죄를 선포한다. 그가 남긴 말은 비석에서 처연하다. “ 天地卽父母요 父母卽天地니 天地父母는 一體也니라” 한문 투라도 해석이 필요 없다. 자식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부모 은덕을 더 어찌 표현하겠는가. 슬프지만 따뜻한 이름 최보따리선생 추모비 위로 정읍의 동학, 천주의 서학에 대항한 그 황토의 붉은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 섬강(한강수계:55.41km, 유역면적 1,490㎢, 제방구간 27.40km)
-시점: 강원도 횡성군 금계천 합류점→ 종점: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한강합류점
-지류하천 12개 (유등천, 대관대천, 금계천, 원주천, 옥산천, 일리천, 이리천, 삼산천, 서곡천, 궁촌천, 원삼천, 부평천)
-태기산에서 발원해 신대계곡을 지나는 계천과 횡성호 구간을 포함하여 92km또는 73km로 각기 표기하는 자료도 있음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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