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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주와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박물관

기고- 여주와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박물관

  • 기자명 김태진 한국산악자전거협회 회장 (필명 뽈락)
  • 입력 2019.12.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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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한국산악자전거협회 회장 (필명 뽈락)

전화벨이 울린다. 페달링을 멈추고 전화를 받으니 이종사촌 여동생이다.

“오빠, 이번에 베트남 여행 갔다가 오빠 드리려고 모형 자전거 사 왔어.”

마침 자전거 시계에 들어갈 부품을 구하려 자전거 대리점으로 향하던 중이다. 꿈나라에 있는 시간을 포함해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자전거 생각뿐이다. 이렇게 자전거에 미처 살다 보니 나를 아는 사람들도 내가 ‘자전거’로 보이는 증상이 왔다.

알음알음 아파트 아줌마들 말잔치에 내가 공짜 안주 접시에 올랐다.

“얘, 602호 아저씨 자전거에 미쳐서 일본까지 유학 갔대. 그것도 3년씩이나.... 못 말려 정말.”.  

맞다, 나는 자전거에 미쳤다는 게 훈장처럼 당당하다. 

불광부득(不狂不得)!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코렉스 자전거 창원 공장에 입사하던 1980년 후반만 하더라도 연간 120만대를 생산하여 전량 미국으로 수출하는 동양 최대의 자전거 공장으로 불리던 시대는 ‘골초 호랑이’ 얘기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국산 자전거는 점점 사라져 갔지만 광고 카피 처럼 내 가슴속에 들어온 자전거는 혈류를 타고 온몸을 돌고 있고, 머릿속에서 득실거리는 자전거는 늘어만 간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고 했던가?

자전거가 좋아지니 자전거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애착이 간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자전거 미니어쳐 컬렉션이다. 두 바퀴 모양을 보물찾기하듯 눈에 불을 켜고 살피고 사 모았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기본이고 일본 벼룩시장까지 헤매기도 여러 번, 외국의 자전거쇼에 가서도 출장비를 죄다 쏟아붓는 통에 선물 없는 출장 끝 귀가에 집사람 칼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은 한올 한올 탈출을 시도했다. 자전거 T셔츠를 입은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가 ‘작업맨’으로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나에게 세뇌당한 지인들도 합세하여 두 바퀴를 보내준다. 그렇게 모여진 애장품은 30여 년의 세월처럼 켜켜히 쌓여 있지만 한 점 한점의 스토리는 각별하고 또렷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던가! 이제 세계 각지에서 나만 믿고 모여 준 이놈들의 진가를 알리는 게 마지막 이 ‘뽈락’의 소원이자 의무일 것이다.

어디가 좋을까? 반풍수지만 명당을 찾아 다니다가 여주가 반가운 친구처럼 ‘어서 오라’ 손짓한다. 여주는 수도권 이면서도 청정지역이라 콘셉트가 자전거와 딱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이름하여 서울 부산간 ‘자전거 국도 1호선’의 길목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설레는 첫날 밤을 맞이하고, 부산에서 출발한 자전거 여행객은 서울 입성 전의 마무리 밤을 보내는 곳이 바로 여주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곳 여주를 관류하는 남한강의 랜드마크인 이포보, 강천보, 여주보는 등대처럼 우뚝하다. 남한강 자전거길과 섬강, 복하천, 양화천 등의 지류 자전거길은 천국의 꽂길이 되어 웃음 만발한 행복의 라이딩을 선사할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자전거 문화를 집대성한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요 자전거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리라. 고래등 같은 큰집이 아니더라도 비록 새우처럼 작지만 촘촘히고 생생한 자전거 이야기가 배어있는 그런 자전거 박물관이 여주에 어울릴 것이다.

여주에 가면 세상의 자전거를 다 볼 수 있고 할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은 구식자전거는 물론 실시간으로 뜨는 유튜브에 등장하는 최신 발명 자전거까지 타 볼 수 있는 3F(Fun/Fancy/Fantastic)를 만끽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세종대왕께서도 벌떡 일어나셔서 페달링에 열중하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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