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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청미천②

한국의 강-청미천②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19.12.1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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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맑고 아름다웠다는 강, 청미천

과거형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은 진한 아쉬움 때문이다. 
한자에 숨은 단어의 아름다움 뿐이 아니라 입안에서 구르듯 불러보는 강, 청미천은 얼마나 명징한가. 
그러나 청미천은 더 이상 맑지도, 아름답지도 못했다. 거대한 성채를 이룬 모래톱은 외래종 가시박의 세상이 되었다. 
목이 마를수록 군데군데 보를 만들어 물을 빼다 쓰면서 물은 더 이상 소리를 내고 흐를 수 있는 힘을 잃었다. 
넋 나간 듯 큰물 지기만 기다리고 있지만 하류가 조금씩은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물 많은 복숭아를 만든 청미천

율면교를 건너면 더 시골 냄새가 나는 율면소재지다. 밤 율(栗)자도 고향의 내음을 더 진하게 풍긴다. 공공 목욕탕이 들어서고 노인복지회관이 면사무소 건물보다 더 멋지게 들어선 마을이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룬다. 이어지는 강둑은 달릴만하다. 죽산천과 응천까지 합류한 청미천은 유량(流量)이 제법 많다. 모래톱을 곳곳에 이루고, 거대한 성채를 이룬 가시박의 기어 올라타기가 끝도 없다. 외래종이 점령한 한국의 강둑, 그 대표종이 가시박이다. 뽑아내서 될 문제가 아닐 성싶다. 멀리서는 칡넝쿨인가 했는데 한번 착수하면 그냥 문어발식 흡착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노래는 소월의 동요에나 존재하는 그림인가, 아님 내성천이나 섬진강변을 찾아가야 만날 진귀한 풍경이련가.

백족산 아래 청미천교에 이른다. 장호원과 음성을 떠받치는 복숭아밭의 원형을 보는듯하다. 강물이 앞으로 흐른다. 복숭아밭은 울타리 하나 없이 길까지 가지를 뻗어 너그럽다. 아쉽게도 그 오묘한 도화 빛은 이미 제철을 넘겨버려 만날 수가 없다. 반겨주는 것은 불청객이다. 교각의 그늘만 만났다 싶으면 솥단지 건 흔적이 귀신의 부적같이 검게 그을려있다. 예외 없이 소주병의 난장이다. 여름을 잘 놀고 간 징표를 이렇게 남긴 뱃심은 무지일까 만용일까. 그래도 여울목 아래 제법 깊은 물받이에는 씨알 굵은 물고기가 기우는 햇살을 배경으로 뜀틀 도약을 한다. (피라미 보다는 크고, 도무지 무슨 고긴지 알 길이 없다)

장호원 초입까지는 공사가 한창이다. 강둑 공사용 측량 표지목이 강바닥에선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높이 걸렸다.

사라진 철도 안성선의 종점, 장호원

이제 장호원(長湖院)이다. 그 옛날 부산 동래에서 올라오는 영남대로는 문경, 충주를 지나 음성 생극 땅에서 무극역참(無極驛站)을 만들고, 이천 율면, 안성 죽산 쪽으로 방향을 틀 때 장호원을 비켜갔다. 장호원은 보부상들이 모이는 교역의 중심이었다. 천안에서 안성까지  28.4km의 철도가 부설된 것이 1925년이고, 이태 뒤에는 장호원까지 41.4km의 연장선이 개통되었다. 사철(私鐵)인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이미 3. 1운동이 나던 1919년에 허가를 받았다. 여주를 거쳐 장차 원주까지 이을 계획이었으니 일본의 욕심은 치밀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패전의 암운 속에서 안성~장호원 구간의 철도 레일은 쇠붙이 공출의 제물이 되어 철거되고 말았다. 지금도 장호원읍엔 역의 흔적인 플랫폼 기단과 교각 일부가 주택가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장호원교는 마주 보고 있는 음성 감곡과 신작로 통행 역사의 증인이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다리는 우회도로로 분산시키고도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에는 노쇠하여 확장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조선조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6.25전쟁 이후 ‘야간통행금지’는 오랫동안 당연한 족쇄였다. 자정의 통금 사이렌은 모두가 숨어들어야 하는 거역할 수 없는 신호였다. 그래도 예외가 있었으니 크리스마스 전날의 통금해제는 청춘들을 저자거리로 몰려나오게 했다. 그러나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와 바다에 둘러싸인 제주도만은 예외였다. 그래서였을까 장호원에서 자정까지 술을 마시다 의기투합한 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둘러 강 건너 음성 감곡으로 자리를 옮겨 밤새 술판을 벌였다는 얘기는 이제 아득한 전설이다.

기차역하나 때문에 갈라진 장호원과 감곡(甘谷)

장호원을 이야기하면서 복숭아를 빼놓을 없다. <햇사레>라는 성공적 상표는 장호원, 감곡,음성, 동부과수연합 등 4개 지역의 복숭아 연합브랜드다. “황제만이 맛볼 수 있었던 과실의 황제”답게 올해로 <햇사레 장호원복숭아 축제>는 제18회를 맞았다. 공동사업법인화의 위력은 폭락을 막을 수 있는 물량조절까지 가능할 정도로 커졌고, 고품질의 브랜드 인지도를 놓여 차별화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청미천을 사이에 두고 복숭아로 뭉친 달콤한 동맹은 한때 좀 위태로워 보였다.

복숭아 때문이 아니다. 장호원과 감곡에는 온통 철도 역사를 자기 고장에 세워야 한다는 플래카드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쟁취와 사수’라는 글자는 피 흘리는 민중봉기를 연상할 정도였다.

감곡 주민들은 원래 감곡에 세우기로한 철도역(감곡역)사 건설 원안이 어떤 외부 압력으로 장호원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고, 장호원 사람들은 장호원역 안을 절대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불신도  감곡역이 극동대 부근에 자리 잡으며 가라앉았다. 기존의 도심을 지날 수 없으니 철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천까지 내려오던 경강선은 ‘중부내륙철도’로 문패를 갈아 달고 장호원을 거쳐 충주까지 2021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2단계로 백두대간을 뚫고 문경, 점촌까지 이어져 경북선과 합류하는 공사도 터널 중심으로 진행 중이니 수려한 내륙의 경관 속으로 달릴 날도 멀지 않았다.

삼합(三合)에서 남한강, 섬강과 다시 만나다

장호원읍을 벗어나면 청미천은 강둑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군데군데 둑을 보수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는 편하게 강둑길을 오갈 수 있으리라. 37번 국도를 타고 점동(占東) 방향으로 올라가는 건 차들에 시달린다. 아예 강 건너 감곡에서 들판 길로 점동면 당진리까지 올라가는 게 차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 드넓게 펼쳐진 황금 가을 들판은 현사교에서 끝난다. 청미천이 하류에 와서 제대로 한 굽이 사행하는 벼랑 구간이어서 아예 길 자체가 없다. 장안리 고개에 올라서면 삼합교가 코앞이다. 종점이 다 와 간다. 좌측으로는 중군이봉(223m)으로 오솔길이 나 있는 여강(驪江)길 백리의 제3구간이고, 우측은 군사적 요충으로 전망대 역할을 하던 봉우재(219m)다. 청미천 하구의 들머리를 지키고 있는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다. 4대강 사업으로 준설하여 여주시가 관리하고 있던, 산더미같은 골재 야적장도 다 파먹었다. 강모래는 세월이 갈수록 더 귀해진다. 남한강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모래섬도 다 없어질 예정이었으나 ‘장기도마뱀’과 ‘단양쑥부쟁이’라는 희귀 동식물 덕분에 삽질이 멈춰졌다. 부실한 4대강 토목공사의 원흉처럼 낙인찍혀 버린 남한강으로 청미천은 물을 넘겨주고 손을 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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