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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탈북민은 이주민이 아니다자유민주사회를 북에 전파할 ‘통일시대의 전도사’ 역할 소중해

탈북민을 제3국으로 떠나게 만드는 편견과 차별 여전히 존재

조영연 주필

탈북민 3만3천명 시대, 있을 수 없는 일에 모두 놀랐다. 

탈북민 모자가 굶어 죽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리는 이 시대를 되돌아보며 탈북민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통일부는 부랴부랴 탈북민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탈북민’이라는 용어에 이르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귀순동포’라는 말은 분단 이후 드물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탈출해온 북녘 동포들에게 붙여준 훈장이었다. 1990년대 북의 ‘고난의 행군’이 본격화되면서 탈북의 행렬 또한 이어졌다.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법률14275호)이 제정되면서 용어가 꼬였다. 

세상에나. ‘이탈주민’이라니. 자유와 민주를 찾아 목숨을 걸고 칼바람이 살을 베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온 동포에게 ‘이탈’이라니. 도망병이 연상되지 않는가. 살만한 땅에 서 튕겨 나온 낙오자의 느낌도 든다. 

당당하게 ‘북한탈출주민’이라고 이름 붙이지 못한 비겁이 법률 제목으로 공식화되었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북한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탈북민조차도 자신들의 삶의 근거가 되는 법에 사용된 이 ‘모욕적 용어’에 대해 바로잡아 달라는 청원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한때 통일부는 ‘새터민’이라는 순화된 용어를 써야 한다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새터민’이라는 용어는 본질을 정확히 꿰뚫지 못한 논리적 오류가 있다. 

‘새터’에 온 사람이 탈북민 만인가. 결혼이주여성도, 장기이주노동자도 새터민이 아닌가.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출소한 전과자가 문신을 슬쩍 보이면서 버스에 올라와 학용품을 비롯한 잡동사니를 사달라면서 “새롭게 새터에서 새삶을 살겠다.”고 하던 말이 연상되는듯하다. 이제 거의 새터민은 잊혀 가는 용어지만 아직도 입에 붙어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많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다시 부각 되었다. 올해 7월 기준으로 749명의 탈북민이 다시 제3국으로 새 삶을 찾아 떠났다. “남한 사람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가 골자였다. “어차피 이곳도 내 조국이 아니라면 더 나은 곳으로 가겠다.”는 한 맺힌 그 말을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북한탈출주민’은 이민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들은 귀화의 대상이 아닌 우리 국민이기에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나면 바로 주민등록증이 발급된다.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가 근거다.

한 집안도 마찬가지다. 잘사는 친척의 모멸이 더 견디기 어려운 법이다. 북에서 사고를 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심지어 북한 정권에 대한 ‘배신자’라는 낙인에까지 다다르면 이 땅에 사는 삶 자체를 회의하게 만든다.

북에서 태어나 배급경제체제와 3대 세습 유일체제 교육을 평생 받아온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자유민주사회 시민의 일원으로서 모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취업과 정착에 인내심을 가지고 분단극복의 예비과정으로 ‘통일의 인큐베이터’에 고이 키워내야 할 존재다. 

통일의 그날, 아니 그 이전부터라도 벌써 자유대한민국의 우월과 자본주의 세상의 가치와 노력을 북에 전파할 ‘통일의 전도사’로서 소중한 존재다.

경찰이 2006년 ‘보안협력위원회’를 각 경찰서에 만들어서 탈북민을 형제애로 감싸 온 것은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공공의 기능에서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탈북민이 가장 애로를 겪는 것은 오랜 탈북과정에서 얻은 질병, 영양 불균형같은 의료분야, 전혀 낯선 법률적 문제에 부딪히는 고민, 당사자 또는 자녀가 이질적 교육체계에 적응해야 하는 교육의 애로 세 가지 분야다. 

지역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나 개업하고 있는 변호사, 입시·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교육전문가들을 반드시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공공이 재정으로도 충분하게 제공할 수 없는 부분을 재능기부형식으로라도 ‘탈북민’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늦었지만 탈북자 보호지원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겠다는 정부의 조치는 적절하다. 탈북민에 대한 복지를 더 강화해야 하는 당위를 미래통일에 대한 현실투자로 인식하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제3국 경유 탈북민 2세의 언어,교육 소외를 해소시켜야 언젠가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는 사회갈등을 미리 막는 길이 된다. 탈북민 디아스포라(Diaspora, 민족이산)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조용연 주필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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