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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48. 날마다 덜어내는
장주식 작가

며칠 전 오후입니다. 뒷집 할아버지가 외발 손수레를 밀고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오십니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마당으로 뛰어나갔죠. 할아버지는 손수레를 마당가에 세워 놓고 집 쪽으로 오시는 중입니다. 내가 꾸벅 인사를 했더니 대뜸 이러시는 겁니다.

“고구마 잡숴?”

“네? 아, 고구마요. 좋아합니다.”

“고구마가 아주 맛있소. 내가 올해 첨 심어 봤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밤고구마여.”

할아버지는 나를 손수레 쪽으로 데리고 갑니다. 손수레 안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고구마가 큰 종이상자 가득 담겨 있는 겁니다. 종이상자의 덮개 부분도 세워 공간을 늘려 담은 고구마가 넘칠 정도로 고봉입니다. 고구마도 하나같이 잘 생겼습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중간 것들로 최상품입니다.

“맛이 좋아서 갖고 왔소. 잡숴보라고.”

할아버지가 수줍게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가시고 나는 고구마상자를 집안에 들였습니다.

“아이고, 정말…….”

아내도 말을 잇지 못합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맛이 좋아서’ 갖고 오셨다는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하나하나 고구마 수염도 떼고 흙도 털고 잘 생긴 녀석들로만 상자 가득 담은 할아버지의 그 마음.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조차 잠깐 했습니다.

 

노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도를 한다는 건 날마다 덜어내는 일이다. 덜어내고 덜어내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면 세상에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상당히 역설적인 선언인데요, 나는 할아버지의 고구마에서 이 노자의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느낀 건 할아버지가 ‘어떤 목적’도 없이 그냥 고구마를 가져다 주셨다는 것이죠. 이 고구마가 맛있으니 한 번 먹어봐라. 물론 내가 모르는 어떤 목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구마를 받는 나의 느낌이 중요합니다. 그 어떤 계산도 느껴지지 않는 할아버지의 행위라는 것 말입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 = 아무것도 함이 없음’이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인 것. 목적은 깊숙이 숨겨두고 겉으론 다른 계산으로 작동하는 것은 유위(有爲)입니다. 유위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자들을 모두 수단으로 씁니다. 이때 수단으로 쓰이는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겠지요. 결국 유위는 세상인심을 얻는 행위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죠.

노자는 세상인심을 얻는 일은 무위일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이 완전히 무위에 이르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무위에 도달하기 위한 삶의 과정을 걷는다면 그 자체로도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걷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타자들을 수단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타자들과 함께 하는 그 자리 자체가 목적인 일. 그런 생활 태도야말로 무위로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과 어떤 모임을 꾸려가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 모임이 나에게 얼마나 이로운가만 따진다면 모임 구성원들과 오래 정을 나누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때로는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리를 함께해야 합니다. 아니 손해만 있다하더라도 모임구성원들이 나를 원한다면 가야합니다. 그것이 ‘덜어내는’일일 테니까요.

이렇게 볼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란 ‘뭔가를 애써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란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위’하는 삶이 세상인심을 얻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기가 훨씬 어려운 일이니까요.

 

<노자 도덕경 48장 : 爲學日益(위학일익)이요 爲道日損(위도일손)이라. 損之又損(손지우손) 하여 以至於無爲(이지어무위)하라.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하나니 取天下(취천하)는 常以無事(상이무사)하고 及其有事(급기유사)면 不足以取天下(부족이취천하)하리라.>

배운다는 건 날마다 쌓아가는 것이며 도를 터득하는 건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내 ‘아무것도 함이 없는’ 상태에 이르도록 하라. 아무 것도 함이 없어도 모든 것을 다 하게 되나니, 세상을 얻는 건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을 때 가능하고 뭔가 일을 꾸민다면 세상을 얻기에 부족하리라.

 

장주식 작가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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