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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청미천①참 맑고 아름다웠다는 강, 청미천

과거형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은 진한 아쉬움 때문이다. 
한자에 숨은 단어의 아름다움 뿐이 아니라 입안에서 구르듯 불러보는 강, 청미천은 얼마나 명징한가
그러나 청미천은 더 이상 맑지도, 아름답지도 못했다. 거대한 성채를 이룬 모래톱은 외래종 가시박의 세상이 되었다. 
목이 마를수록 군데군데 보를 만들어 물을 빼다 쓰면서 물은 더 이상 소리를 내고 흐를 수 있는 힘을 잃었다. 
넋 나간 듯 큰물 지기만 기다리고 있지만 하류가 조금씩은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광주산맥이 수명을 다한 분수령에서

남서로 내달리던 광주산맥은 용인 양지, 원삼 언저리에서 맥을 거둔다. 광주산맥이라 이름붙인 건 일제 때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가 <조선산맥론>에서다. 우리나라를 <근역강산맹호기상도>에 근거하여 호랑이로 표현하는 이들은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산줄기 이름이다. 양지리조트가 있는 독조봉(432m) 과 와우정사 근방 문수봉(402m) 언저리에서 동으로는 복하천이, 북으로는 경안천이, 동남으로는 청미천이 시작된다. 청미천의 공식 발원은 원삼면 사암리의 용담저수지다. 일명 사암리에 위치한다 해서 사암지라고 적는 지도도 있다.

낚시 좌대가 즐비한 저수지를 내려서면 상표 하나가 눈에 띈다. ‘쓰리세븐’의 물류창고다.   쓰리세븐은 자랑과 아픔이 함께 교차하는 단어다. 호롱불 아래 가위로 손톱을 자르던 우리는 미제 ‘트림’(Trim) 손톱깎이를 써 보곤 열광했다. 그러나 국산 손톱깎이는 우리를 절망시켰다. 손톱을 물어뜯는 무딘 날, 우리나라 철강기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손톱깎이 단일품목으로 세계적인 수출품이 된 자부심은 한 가지를 잘 만들면 영광의 날이 온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창업주가 급히 세상을 떠나고 상속세 문제로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된 서글픈 현실은 가업승계가 아직은 머나먼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청미천 여정의 초입에서 만난 쓸쓸한 잡학 상식이 가을 아침 이 들판에서 차갑다.

미평리 들판은 원래는 ‘비렁뱅이들’이라 불렸다. 비가 안 오면 딱 굶어 죽기 좋은 들판이라 그리 불렀는데 용담저수지가 들어섰으니 조상님들도 내다보지 못한 반전인 셈이다. 청미천은 저수지 수로로 10km를 이어간다. 도랑은 믈이 마르고, 내 빈약한 본초학으로는 설명도 못 할 숱한 풀들로 덮여 있다. 군데군데 보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넉넉지도 못한 수원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으니 칸칸이 막아서라도 농업용수를 써야 하는 현실은 무겁다.

순대 하나로 유명해진 백암면

백암이라는 이름은 이름만큼이나 유명세를 지니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의 백암이 온천으로 유명하다면, 함경남도 삼수갑산 너머 북녘땅 백암은 이용악의 시, ‘백무선’의 시발역이라 애잔한 이름이다. 지금 지나는 용인 백암은 옛 영남대로 위에 낸 17번 국도에 매달린 그저 그런 소읍이다. 순대 하나가 이 시골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원래 40리 떨어진 죽산(옛지명 죽주(竹州)지방의 음식이던 것이 고을이 퇴조하면서 돼지 사육 농가가 많고 도축장이 있어 돼지부속물을 구하기 쉬웠던 백암에서 더 발전되었단다. 풍성옥을 운영하던 함경도 출신 이억조 할머니(1998년 별세)가 백암 장날 국밥을 만들어 팔던 것이 소문이 났다. 백암순대는 오늘날 공장에서 대량생산, 유통되기도 하고, 더러는 수제 순대를 고집하는 집들이 만들어 팔고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돼지농장은 청미천 주행에 인내을 강요한다. 늦가을에도 이러하니 여름날 후덥지근한 바람에 섞여오는 돼지 냄새는 상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린다. 백암을 지나며 강폭은 제법 넓어진다. 왜가리들이 게으른 사냥을 하고, 오리 떼들의 유희도 심심찮다.

가을의 징표, 도토리와 밤의 유혹

그저 덤덤한 강둑을 지나가다 한다리 마을 근처에서 들판은 산자락을 물고 있었다. 헬멧에 와서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 도토리였다. 바닥은 도토리들의 향연이다. 올해는 유난히 풍작이란다. 여기저기 도토리를 줍는 가을 산객들이 넘친다. 자연보호에 어긋난다는 둥 다람쥐 밥을 다 인간이 먹어치우면 어쩔 거냐는 비난쯤은 이내 잊어버린다. 자전거를 눕혀놓고 줍는 도토리에는 모두가 곤궁하던 어린 날이 담겨있다. 주머니 가득 불룩해지는 내 것의 포만감도 함께 일어난다. “그까짓 거 마트에 가서 묵 두 어모만 사면될 걸 궁상 떠느냐.”는 도회 취향의 사람들에겐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할 일이다. 이 가을 수풀에서 벌어지는 보물찾기로 일정이 두어 시간 늘어졌다. 배낭을 가득 채운 도토리 알들의 재잘거림이 자전거가 덜컹거릴 때마다 어깨죽지로 전해져 온다. 이 행복한 무게의 고통이 이따끔씩 끊어지는 강둑길을 되돌아 나올 때면 더 파고든다. 일죽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 청미천의 검문소 마냥 ‘죽산공공하수처리장’이 서 있다. 죽산천과 청미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죽’(竹)자 들은 동네의 하수를 걸러내서 청미천으로 보낸다. 영남대로의 오거리 ‘오방마을’ 언저리다. 이천, 장호원, 양지, 죽산, 안성으로 갈라진다 해서 오방(五方)이다. 갈라져 간다는 분행(分行) 역참(驛站)마을 또한 바로 일죽IC 부근 매산리이니 예나 제나 길눈 보는 것은 얼추 비슷한가 보다. 아무리 걸러냈다지만 일죽을 지나자, 호박돌에 눌러붙은 물때는 덕지덕지 켜가 일어나 있다. 언뜻 맑아 보이지만 구정물에 익숙해져 버린 물고기만 간간히 튀어 오를 뿐이다.

죽일 면장과 죽일 지서장 때문에

죽(竹)자 들어간 고장 일죽(一竹), 이죽(二竹), 삼죽(三竹) 3형제의 역사는 꽤나 오래 거슬러 올라간다. 1413년 조선 태종13년에 죽산현(縣)이 중종 때는 죽산부(府)가 되었다가 고종 때 죽산군(郡), 1992년에는 죽산면(面)이 되었으니 왕년에 비하면 행정구역으로는 형편없이 쪼그라든 셈이다. 죽주성(竹州城)까지 쌓을 정도였던 죽산은 요충지로서 옛 영화를 추억하듯 축제까지 열면서 활력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죽(竹)자 3형제 동네의 옛 이름은 원래 죽일(竹一), 죽이(竹二), 죽삼(竹三)이었다. 우스개 같지만 ‘죽이’나 ‘죽삼’은 문제가 안 되었다. 문제는 ‘죽일’이었다. ‘죽일 면장’ ‘죽일 지서장‘이라니. 아무리 잘해도 죽일 놈이 되어버리는 이름 때문에 앞뒤를 바꾸어 ‘일죽’이 되었다는 것이다. 1917년, 그러니까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이태 전의 일이었다.

일죽은 중부고속도로의 IC로 유명해졌고, 이죽은 진천으로 가는 17번 국도와 38국도의 교차점에서 삼남대로로 가는 옛 영화대로 죽산의 이름을 차지(1992년 개칭)했고, 삼죽만 막내로 제일 조용하게 남았다. 청미천은 전 구간에 걸쳐 강둑길을 편하게 이어 달려보려는 자전거객에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포장과 비포장이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는 것은 물론 일껏 들어선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강둑은 있으되 군데군데 잡초가 우거져 가로막는다. 그만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적다는 증좌다. 경운기든 화물차든 간에 집집마다 있는 차들은 조금 더 편한 길을 찾아다니고 사람들은 내연기관에 얹혀서 이동한 탓이다. ’시가지청미천교‘에서 ’율면교‘까지는 국도에 곁다리를 붙여야 한다. 그나마 확포장한 도로 옆에 경운기의 몫으로 남겨놓은 길이 자전거에  호의를 베푼다.

길 하나 새로 나면 팔자가 달라지는 것들도 자연히 생겨난다. 옛 도로변 주유소는 평생 먹던 기름밥을 차마 떨쳐 버릴 수가 없어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에 석유(등유)를 팔아 근근이 살아간다. 강둑 밑의 어탕국수집은 그래도 맛을 찾는 입소문과 블로그 덕분에 꾸준히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나 물고기의 원산지가 몽땅 청미천이라고 한다면 어쩐지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 청미천(연장 60.69km, 유역면적 595.13㎢)

-국가하천:24.64km 경기도 이천시 율면 응천합류점~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 (남한강 합류점)

-지방하천:32.97km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사암리 용담지~ 이천시 율면 응천 합류점

죽산천, 응천, 설성천 등 21개의 제2지류하천, 백암, 일죽, 율면, 장호원읍, 음성군 감곡면, 여주시 점동면을 지나는 하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조용연 여행작가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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