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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돈 때문에 사람이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돈 때문에 사람이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 기자명 강대필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장
  • 입력 2019.11.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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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필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장

20대의 선남선녀가 만나 결혼했다.

이듬해 큰딸이 태어났다. 큰딸은 선천적으로 당뇨를 갖고 태어났다. 꾸준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다. 또 그 다음다음해 작은딸이 태어났다. 성실한 남편의 수입으로 네 식구 밥은 굶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암으로 생계를 책임지지 못했다. 오히려 병원비로 빚만 늘어갔다. 늘어나는 병원비를 작은딸 카드대출로 막았다. 결국 남편은 이 세상을 떠났다. 20살 작은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큰딸은 당뇨와 합병증으로 일을 하지 못했다.

아내는 두 딸과 일을 하며 어렵게 지냈다. 일을 할수록 빚이 더 늘었다. 기초생활 수급자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아내와 두 딸 모두 근로 능력이 있어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라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딸이 일할 수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 것인가? 작은딸은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큰딸처럼 수시로 병원을 다녀야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기업이 몇 곳이나 될 것인가?

그나마 일할 수 있던 아내의 눈은 거의 실명에 가까웠다. 30만 원가량 하는 백내장 수술비가 없어 눈앞의 물건마저 명확히 볼 수 없는 눈으로 식당일을 했다. 퇴근길에 미끌어져 골절을 당했다. 다니던 식당마저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결국 세 모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의 전말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정부에서는 실태파악 및 더욱 촘촘한 인적 안전망을 갖추겠다는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만 읊어댔다. 읍면동에서는 민관 합동 점검을 한다는 둥 일제 점검을 한다는 둥 실효성 없는 퍼포먼스만 난무했다. 그 요란한 사후 조치가 끝난 후 복지사각지대가 없어졌는가?

근본적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은 선별적 복지 제도하에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어느 선이 되었건 기준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월 수입 50만원 이하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매월 51만원의 수입을 얻는 시민들에겐 복지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반대로 49만원의 수입을 얻는 시민들에겐 서비스가 제공된다. 단 2만원의 차이가 복지서비스의 수급 여부를 가른다.

선별적 복지제도는 필연적으로 복지사각지대를 내포하고 있다. 제아무리 촘촘한 인적망을 구성해도, 더 많은 공무원을 충원한다해도 기준선이 존재하는 한 간발의 차이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계층이 발생하며 순식간에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가구는 공적 안전망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최근 랩(LAB)2050이라는 민간 연구소에서는 2021년부터 증세 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30만원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작은 세금 인상이라도 국민들이 갖는 재정현상은 매우 크고 깊어 결과적으로 조세저항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조세저항 없이 제도가 시행될 수 있음을 다양한 자료와 정책 시뮬레이션으로 증명하였으나 물론 현실에서의 적용 가능성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제는 이미 우리 삶의 깊숙한 부분까지 밀려들어왔다. 아동수당을 비롯해 경기도의 청년수당, 많은 지자체에서 시행되는 농민수당 등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과제로 등장했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반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효과와 필요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를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선별적 복지제도의 기준선을 없애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복지기준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소시민들이 최악의 선택을 하는가? 얼마나 더 많은 시민들이 눈물 흘리고 죽어야만 복지기준선이 없어질 것인가? 이제는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소득제가 시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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