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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 한강6(서울·고양·파주·김포·강화)②한강의 끝은 김포가 아니다

1천300리 물길을 따라온 한강도 아라뱃길 초입을 지나면 허리띠를 푼다. 철조망으로 봉쇄된 강둑의 긴장과는 사뭇 다르게 느긋하다.  

바다가 밀고 당기는 시간에 맞춰 갯벌이 속살을 보이고, 강물로 이불을 덮는다. 뿌연 서울 하늘과 선명한 개성 송악산을 한강 언덕에서 다시 본다.

한강이 유도(溜島)에서 끝난다는 정의(定意)는 아무래도 틀렸다. 짠물이 아무리 소용돌이치는 바다라도 염하(鹽河)라고 이름 붙여 한강의 지류로 만든 옛 사람의 지혜는 탄복할 만하다. 연백평야를 마주하고, 벽란도로 들어가는 예성강 하구쯤에 와서야 한강과 작별할 수 있다.

해발 100m 인공 산, 난지도의 추억

성산대교를 지나면 강변도로도 강물에서 멀찌감치 돌아간다. 넉넉한 둔치가 생겨났다. ‘한강난지공원’이다. 그야말로 그늘막이라도 쳐놓고 좀 쉴 수 있는 곳, 강변 야영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한강의 귀한 공간이다. 서울시 푸른도시국장 당시 월드컵 공원 전체를 기획한 최광빈 씨(58)의 말이다. “난지골프장을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족공원으로 돌려놓은 것은 공직 중에서 잊을 수 없는 보람이지요. 특히 노을 공원에 만든 150 사이트 야영장은 가슴이 뻥 뚫리는 위치지요. 아마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은 느낌이 들겁니다.”

사실 강변북로 오른쪽에 성처럼 서 있는 해발 100m 산 푸른 숲은 경이롭다. 난지도가 있던 자리니 말이다. 한 시절 난지도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쓰레기매립장은 떨쳐버릴 수 없는 이미지다. 1986년 난지도는 마포경찰서 외근계장의 방범 소관이었다. 서울 시내 쓰레기가 밤낮없이 밀려들었다. 쓰레기를 쏟아낸 청소차가 빠지고 나면 고물을 캐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달라붙는다. 그것도 자리가 있어 제일 먼저 고르는 사람을 ‘앞벌이’라 불렀고, 재탕하는 사람은‘ 뒷벌이’라 했다. 달동네 쓰레기보다는 강남 쓰레기에 권리금이 덧붙어 있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도 잦았고, 암묵적인 관할이 정해졌다. ‘물랭이’라 불린 요구르트 병 같은 플라스틱 용기들은 근처 선별공장에서 대강 세척을 하고 컨베어 벨트를 지나 재생공장으로 직행했다. ‘재활용’이란 말이 없던 시절, ‘자활재건대’의 거친 노동 덕에 고물상 사장은 벤츠를 타고 다녔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일하는 수녀님들도 쓰레기더미 속에 살았다. 폐버스에서는 쓰레기 속에 파이프를 박아 분출하는 메탄가스로 끓여낸 우동과 라면을 팔았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 엉덩이를 맞대며 저녁상을 차려야 하는 일자형 하모니카집에서 난지도 사람들은 옆집의 숨소리까지 함께 하며 살았다. 월드컵 공원이 된 쓰레기 산은 영원히 썩지 않을 시대의 타임캡슐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밤 깊은 김포가도, 마곡들판은 변신 중

가양대교를 건너면 이내 마곡 벌판으로 이어진다. 마곡지구는 서울에 마지막 남은 대단위 개발지였다. 산업단지가 들어선 구획 번듯번듯한 빌딩에서 김포가도 시절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또 30년 전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김포공항경찰대장이던 송인성 총경은 절대로 풀리지 않을 듯이 보이는 마곡 들판의 절대농지(진흥지역) 일곱 마지기(1,400평)을 갖게 된 사연을 말했다. 일찌감치 분가하면서 경상도 산골짝 봉화에 있는 문전옥답을 아버지에게 미리 상속해 달라고 졸랐단다. 아버지가 조건을 달았다. “반드시 서울에 가서도 논으로 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봉화 논 일곱 마지기가 고스란히 마곡 들판에 같은 평수로 옮겨 앉아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 양반 성품에 마지막 수용될 때까지 그 논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김포 ‘홍도평’을 아시나요?

행주대교를 지나 아라뱃길 초입으로 들어서면 길이 좀 낯설다. 강 건너 김포 쪽으로 가야하는 코스를 잡는 데는 한참을 궁리해야 한다. 일제 치하 미곡 증산을 위해서 세운 신곡리양수장을 지나면서부터 한강은 철조망 안에 갇힌다. 어촌계의 작은 강화플라스틱(FRP)배는 썰물에 속살을 드러낸 갯벌에 얹혀 조업을 기다린다. 작가 김훈이 ‘무한감’이라고 까지 표현했던 김포평야는 더 이상 ‘광활’을 붙일 자격을 잃어버렸다. 김포에 경비과장으로 근무하던 1982년, ‘홍도평’의 전략적 가치와 위험요소를 수없이 되뇌었다. 북한군은 레이더에도 포착되지 않는 AN-2기의 강습 착륙지로 홍도평을 꼽았다. 바로 김포에 들어서는 아파트가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는 김포시 걸포동과 고촌읍 향산리 일대다. 누산리를 지나 하성면 전류리까지 김포시가 도로의 여백에 자전거길을 만들어 놓아 한강의 조망을 철조망 사이로나마 누릴 수 있다.

한강의 마지막 이름 ‘할애비의 강, 조강’

전류리에서 오늘은 동행과 합류한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이홍희 예비역 중장,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편집위원, ‘자전거생활’ 김병훈 대표가 일행이다. 겨울이 벗겨지지 않은 비도 함께 했다. 해병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 철조망 너머 한강의 종점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전류리는 한강의 최북단 포구다. 조강포, 마근포, 시암리, 후평리 포구는 통일되는 그날까지 모두 기능 정지다.

비를 맞은 철조망, 금속 재질이 어둑한 배경 앞에서 번질거린다. 시암리는 임진강을 끌어안은 한강이 좌향좌로 물길을 트는 끄트머리다. 물이 썰고 나면 황해북도 관산포까지 1.3km라는 말이 더 애달프다. 여기서 한강은 마지막 이름 ‘할애비의 강’, 조강(祖江)이 된다.

비에 젖은 대남방송은 낮은 포복으로 강을 건너와 더 또렷하게 들리다 말다 반복했던 일도 옛일이 되었다. 우리의 대북 스피커가 출력을 양껏 높이는 지점은 충돌하는 맞불 집회의 함성처럼 ‘웅~웅’거릴 뿐 소리의 행간을 식별할 수가 없었던 시절이 DMZ 곳곳의 풍경이었다. 이제 서로의 소리는 정지된 채 느슨한 긴장만 감돈다. 새 단장에 들어간 ‘애기봉전망대’ 출입을 허락받아 일어서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오랜만에 헐떡이는 심장으로 봉우리에 선다. 비안개 속에 흐릿한 북녘이 아득하다. 세곡선이 들락거리던 조강포도 남북으로 갈라져 환갑 진갑을 다 넘겨 버렸다.

한강의 끝은 김포가 아니다

조강리에서 보구곶리로 돌아서면 염하가 한강에 짠물을 보태는 지점에 유도가 있다. 1996년 홍수에 떠내려 와 유도에서 야위어 가던 북한 소를 해병이 구했다. 김포시는 제주도 암소와 신방을 차려주어 이후 100여 마리의 후손을 보았다. 그 가운데 한 마리가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에 동행하여 1001마리의 소가 북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검문소 초병의 인사는 깍듯했고, 해병의 DNA는 세대를 건너서도 흘러넘쳤다. 일행은 느긋한 일정으로 문수산을 한 바퀴 돌아 ‘해병청룡회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미세먼지가 걷힌 맑은 시야를 선물 받았다. 어제 빗길 행군 덕분이다. 우리 해군사관학교의 원조 격인 ‘통제영학당’의 옛터가 강화대교 아래에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라는 열강세력과의 충돌 그 현장인 바다를 염하라 이름 붙인 것은 옛사람의 혜안이다. 아무리 짠물이라도 이 강은 한강의 지류일 뿐이라는 뜻이다. 연미정에 올라서 보는 눈앞의 유도, 북한 땅 개풍군이 한 눈에 들어오는 한강과 염하는 하구 풍경의 백미다.

한양으로 가는 세곡선과 소금배가 물때를 기다리던 곳, 족히 500년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는 정묘호란 때 청나라와 굴욕의 강화조약을 맺은 인조의 눈물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송해면 숭뢰저수지를 지나 승천포 돈대 앞으로 난 해안일주도로가 말끔하다. 북녘땅을 손에 잡을 듯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끊임없는 자동차 행렬만으로도 북을 향해 살아있는 자유대한의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다. 어쩌면 북녘 동포들은 잘 사는 남조선을 이미 탈북한 형제자매와 이웃을 통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의 언덕을 오르는 코스는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조차 “허벅지가 쫄깃쫄깃하다.”고 말한다. 북녘땅 개성 송악산이 어제 내린 비 덕분에 더 가깝다. 예성강이 사라지는 물돌이동에 벽란도가 있고, 북한 곡창 30%를 차지하는 연백평야가 한강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에워싸고 있다. 아무리 봐도 한강의 끝은 김포반도의 끄트머리가 아니다.

□한강(중랑천하구-한강하구 지류하천)
-국가하천: 안양천, 공릉천, 임진강 (제1지류 3개)
-지방하천: 홍제천, 창릉천, 굴포천, 계양천, 봉성포천, 장월평천 등 (제1지류 14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조용연 여행작가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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