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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41. 자기 빌려주기

거대한 땅은 모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 완성되며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그림은 형체가 없다

 

장주식 작가

마당 수돗가에 다래넝쿨이 있습니다. 심은 지 올해로 삼년 째가 되니 넝쿨이 꽤 무성해졌습니다. 나무로 섶을 만들어 주자 창고 지붕보다 높이 타고 올라갑니다. 줄기도 굵어지고 잎도 무성한데다 드디어 다래열매도 달리기 시작합니다.

감탄하면서 바라보던 어느 날입니다. 호랑나비 애벌레가 세 마리 보였습니다. 파란 애벌레는 다래 잎을 사각사각 먹습니다. 점점 몸집을 불리고 다갈색으로 바뀌고 번데기가 되더군요. 우화(羽化)하여 너울너울 날아가는 모습이 보고 싶어 나는 자주 다래넝쿨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호랑나비는 번데기 껍질만 남겨둔 채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쉬워하고 있는데 어느 날 다시 애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추석도 지나 깊숙한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었습니다. 세어보니 여섯 마리입니다.

 

‘그래, 이번에는 우화를 꼭 좀 보자.’

다짐을 하고 애벌레를 지켜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래 잎이 하나 둘 사라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가는 겁니다. 애벌레들 몸집이 굵어지고 두 마리는 갈색으로 변해 가는 중인데요, 다래 잎은 몇 개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주 작은 파란 애벌레도 또 생겨났습니다.

 

‘이건 너무 심한데?’

발가벗고 노란 줄기로만 남은 다래 덩굴. 잎 하나 없이 겨우 매달린 파란 다래열매 다섯 개. 다래열매는 더 굵어질 수도 없을 듯합니다. 빛을 고정시켜 줄 잎이 다 사라졌으니까요. 그런데도 애벌레들은 가지 끝에 몇 개 남은 이파리들을 향해 몸을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안돼!’

결국 애벌레들을 다 잡아냈습니다. 다래 잎은 겨우 세 개 남았습니다. 바람에 건들거리는 메마른 다래넝쿨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노자는 도가 지닌 효용을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를 잘 빌려주어 만물을 이루어준다.”

여기서 ‘자기를 잘 빌려준다.’는 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잘 빌려준다는 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베푸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가진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잘 준다는 것이죠. 타자가 완성되는데 필요한 나의 부분. 그것을 감추지 않고 잘 주는 것이 곧 ‘도’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호랑나비 애벌레들을 먹이고 키워 우화시켜주는 다래넝쿨은 자기를 잘 빌려주는 도와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애벌레들을 막을 방법이 없어 그냥 자기를 내 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새들이 찾아와 애벌레를 먹어버리거나 나와 같은 인간이 애벌레들을 잡아 주면 다래넝쿨은 고마워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애벌레 입장에서는 또 새나 인간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요.

요즘 우리나라는 법무부장관을 두고 두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사퇴하라는 야당진영과 그럴 수 없다는 여당진영입니다. 논란의 주인공인 장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스럽지만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 죽을힘을 다해 검찰개혁을 이루겠다.”

 

이 말을 들으면서 ‘자기를 빌려준다’는 노자의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이 장관이 노자가 말하는 도에 맞는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 장관이 가진 도가 노자가 말하는 그 진정한 도라면, 장관을 모욕하고 비웃는 다양한 세력들은 다 ‘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하사(下士)’들이 되는 겁니다. 하사들이 크게 비웃지 않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니까요.

결론은 논란의 당사자인 장관이 어떤 실천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자기를 잘 빌려주어 만물을 이루어주는 행위가 된다면 장관을 비웃은 사람들이 하사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장관 자신이 하사가 되는 것이니까요.

 

<노자도덕경 41장 : 上士聞道(상사문도)하면 勤而行之(근이행지)하고 中士聞道(중사문도)면

 

若存若亡(약존약망)하고 下士聞道(하사문도)이면 大笑之(대소지)하니 不笑(불소)면 不足以爲道(부족이위도)하니라. 故建言有之(고건언유지)하니 明道若昧(명도약매)하며 進道若退(진도약퇴)하며 夷道若纇(이도약뢰)하고 上德若谷(상덕약곡)하고 大白若辱(대백약욕)하고 廣德若不足(광덕약부족)하며 建德若偸(건덕약투)하며 質眞若渝(질진약투)라하니 大方無隅(대방무우) 요 大器晩成(대기만성)이요 大音希聲(대음희성)이요 大象無形(대상무형)하여 道隱無名(도은무명)이나 夫唯道(부유도)라야 善貸且成(선대차성)하나니라.>

덕을 잘 갖춘 사람은 도를 들으면 곧바로 힘써 실천하고, 덕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고, 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으니, 그가 비웃지 않으면 도라 하기엔 부족하다. 그러므로 예부터 전하는 말이 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것 같고, 평온한 도는 울퉁불퉁 거칠어 보이고, 훌륭한 덕은 텅 빈 골짜기 같고, 크게 흰 것은 더러운 것 같고, 드넓은 덕은 오히려 부족해 보이며, 굳센 덕은 구차해 보이고, 소박하고 진실한 것은 잘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거대한 땅 은 모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 완성되며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그림은 형체가 없다. 도 또한 은미하여 이름 지을 수도 없다. 그러나 무릇 오직 도만이 자기를 잘 빌려주어 만물을 이루어준다.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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