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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한강4(충주·원주·여주·양평②)잔설이 머뭇거리는 남한강의 옛 나루터

산협을 굽이굽이 돌아온 남한강도 탄금대에서 다시 장도에 오른다. 중원의 역사 사이로 더디게 흐르는 물이 여울을 만들 쯤에 목계를 지난다. 장시(場市)가 서던 마을의 영화도 가고 없다. 충청, 강원, 경기가 경계를 이루는 섬강과 청미천 언저리를 지나서도 사람의 발길은 뜸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강가에 부지런히 집을 짓는다. 살아온 날의 신산(辛酸)을 강물 위에 떠나보내려는 듯 반백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삽을 든다. 강의 역사 속 사라진 기억을 더듬은 일은 고달픈 현재에 주는 위로가 된다.

3도 마주치는 부론, 흥원창의 영화는 자취도 없어

 자전거도 남한강변길을 자동차와 공유하면서 저어간다. 포장길로 제대로 단장한 지 이제 십 수 년이다. 늘어나는 차들에 밀려 자전거의 노폭은 위협받는다. 공유라고는 해도 아주 불리한 공존이다. 사람이 모진 강바람을 피해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영죽리 골짜기의 제법 너른 벌에 해묵은 마을이 졸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하지만 강을 향한 도회인의 집념은 단순한 휴양이나 낭만 이상이다. 서울의 한강, 그 비싼 조망의 연장선상에서 은퇴 이후의 삶도 계획된다. 인구밀도 제로의 강퍅한 강변에 터를 닦고, CCTV를 매다는 새집에게 겨울 칼바람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맥없이 떠는 문풍지가 아니다. 독일제 창호를 견고하게 할수록 단열 효과는 높아져 별장의 안팎이 철저하게 분리된 하나의 풍경으로 강변은 나직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간다.

손에 잡힐 듯이 지루한 30리 길의 끄트머리에 부론이 있다. 경기도 여주 점동과 충청북도 충주 단암, 강원도 원주 부론의 3도가 함께 만나는 끝점이다. 도진(渡津)취락의 흔적들이 강마을의 역사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도가 끊기는 지점에 도(渡)가 설치되어 큰 물화(物貨)가 이동하고, 강마을을 건너 장 보러, 학교 가던 사람들의 길목에 진(津)이 있어 사람과 어깨 짐이 건너다닌다. 남한강대교가 1986년 건설되면서 제법 컸던 ‘개치나루’도 사라졌다. 부론장은 흥원창의 번성하던 시절의 영화까지 이어받아 좀 더 커졌지만 그저 그런 강나루장터였다. 조선시대 전국 12조창에 들던 흥원창은 섬강을 흘러온 원주, 횡성의 물산이 환적 되던 조창(漕倉)이었으나 이제 ‘창(倉)말’이라는 마을 이름에만 한 글자 간신히 남아있다.

영동고속도로가 섬강을 건너는 근처는 유난히 응달이 심해 잔설과 빙판이 그대로다. 자전거를 끌지 않을 수 없다. 섬강을 건너 닷둔이재와 창내미재를 올라가며 이 길이 과연 옛 영동고속도로의 흔적이라니 우리네 생활이 누가 뭐래도 살만해 진 것만은 사실이다. 굴암리로 접어들어야 강변이다. 강천섬으로 일부러 들어간다. 이 섬은 순전히 걷는 이들과 자전거나그네를 위한 섬이어서 귀하다. 자동차를 거부하는, 오만한 다리(橋)가 이 섬의 가치를 세월 속에 더 빛낼 것이다. 같은 하중도(河中島)이지만 남이섬의 넘치는 상업성의 대척점에 있어 고맙다. 절제된 장치, 그 화장기 없는 얼굴만으로도 자전거국토종주의 길손들이 누릴 수 있는 여백이다.

깔딱고개를 올라 강천보를 건너서면 거대한 기와지붕이 뒤통수를 보인다. ‘대순진리회’다. 증산교계통의 민족종교 중 하나이자 태극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음양합덕이나, 해원상생과 같은 종교적 깊이에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내가 공교롭게도 1990년대 ‘대순진리회’ 분쟁의 충돌 진원지인 서울 중곡도장과 여주도장 두 곳의 경찰서장(서울광진경찰서와 여주경찰서)을 지낸 것은 참 우연이었다. 기억 속의 대순진리회는 방면본부의 표찰을 단 수 백대의 버스가 끝없이 건너가던 여주대교와 밀궁을 연상케 하는 어쩐지 으스스한 대형 한옥건물의 검은 기와지붕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지나 돌아와 보니 종단 분규의 와중에 아직도 재판으로 묶여있다는 수천억의 돈은 더 불어나 빛 볼날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용봉탕과 여주 신륵사

강천보를 지나면 은모래유원지로 이어진다. 너무 매끈하게 정비한 강변은 오히려 그 옛날 은모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성형으로 주름을 너무 잡아당긴 여인의 맨얼굴 같아 거북하다. 강 건너가 드물게 강가에 자리 잡은 사찰 신륵사다. 그 유명한 신륵사다층전탑(보물226호), 즉 벽돌을 구워 쌓아 만든 탑이 강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산사의 청정에 반기(叛起)라도 들 듯 사하촌은 대개 술기운과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신륵사도 한 시절 절집 앞에 성업하던 용봉탕은 늘 힘이 제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잉어나 자라를 묵은 닭과 함께 고아낸 뿌연 국물은 비싸도 제값을 할 거라고 배를 두드리면서도 뿌듯했었다. 영월루에 올라야 여강(驪江)으로 불리는 여주의 강변풍경을 제대로 완상할 수 있지만 언젠가 나중의 몫이다.

남의 묘 자리에 들어선 세종대왕릉

여주시내를 지나면 왕대리, 왕터를 지난다. 강쪽으로는 양섬이, 좌안으로는 세종대왕릉인 영릉이 있다. 기억의 시계를 1996년으로 되돌린다. 당시 이수성 국무총리가 일요일에 여주를 찾았다. 이포에 있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제각을 낙성하는 자리에 지극히 사적인 종친의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다. 과연 그분은 ‘사람다루기의 달인’이라는 걸 입증해 보였다. 군수와 서장을 쟁쟁한 광주이씨 종친들의 한 가운데 총리 당신과 마주 앉도록 직접 자리를 배치했다. “우리 광주이씨 집안 행사에 군수님과 경찰서장님이 오셨으니 고을의 어르신으로 모셔야 한다.”고 말해 42살 젊은 나는 감읍해 어쩔 줄을 몰랐다. 이상옥 전 외무부장관까지도 비껴 앉았으니 말이다. “사실 말인데, 세종대왕이 묻힌 자리는 천하명당 자리여요. 원래 우리 광주이씨 선조(누군지는 정확이 기억이 나지 않음)가 이미 누워있는 묘소를 파내고, 이장해온 것이지. 어명인데 어쩌겠어.” 하기야 아무리 성군 세종이라고 한들 죽은 다음 후손들이 원래 풍수가 나빠 종묘사직이 흔들린다고 이장한 걸 어찌 하겠는가. 진위여부야 어떻든 참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기억 한 토막이다.

사실 여주는 4대강 사업의 최대의 수혜지다. 상습홍수 피해의 늪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어디랴. 여주가 3개의 보(이포보, 여주보, 강천보)를 가진 것만으로도 물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공군 비행기 사격장이 있던 근처 양촌리와 당산리 일대는 거대한 저류지를 만들어 여분의 물주머니를 예비해 두었다. 여러 개의 작은 동산만한 4대강 준설의 모래는 아직 60%가 팔려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한강 모래나 자갈은 더 이상 채취할 수 있는 구석이 없어 팔려나가는 것이야 시간문제다.

양평이 되어 팔자 편 개군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 년에 두어 번 날씨 좋은 날을 잡아 재직 시의 장관, 수석비서관들과 자전거를 타러 이포보 언저리까지 오는 제법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이 강둑길에서야 전직 대통령은 비로소 4대강 사업의 일방적 비난으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질 수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가 여전히 조건부 석방이라는 ‘슬픈 딱지‘를 붙인 현실이지만 한 때의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이 역사의 심판대에서 제대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리라.

이포대교 동쪽 천서리는 막국수라는 서민 음식을 통하여 거무죽죽한 면발을 상징하는 동네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 어디서나 막국수를 쉽게 먹을 수 있다 보니 막국수촌의 명성도 빛이 바래버렸다.

추운 날 80km 주행을 넘어서니 장딴지가 무거워진다. 그래도 양평읍까지는 가야 한다.

1962년 여주군에서 의붓자식 취급을 받던 개군면은 양평군에 편입되면서 팔자가 편다. 동네사람들은 “거지마을이었다가 제일 부자마을이 되었다”고 말한단다. 개군 한우가 유명해서 일까, 서울이 한 발짝이라도 가까워 땅값이 올라 그런 걸까.

상·하자포리를 지나 버티고 있는 후미개고개는 체력을 시험하는 깔딱고개다. 산이 이리 깊으니 한 시절 한양 땅으로 가는 땔감나무를 배에다 싣고 갈만하다. 양덕나루터가 그 아래에 있다. 영월·정선 뗏꾼들까지 묵어갔으니 주막집 색시들 노랫가락에 나루터는 더 흥청거렸으리라. 겨울 한 철이면 추위로 얼어붙는 물의 도시 양평읍에 들어서자, 양평대교의 황색 불빛이 겨울 강물 위에 따뜻하게 일렁인다.

 

 

□한강(충주-양평 구간의 지류하천)

-국가하천: 섬강, 청미천, 복하천( 제1지류)

-지방하천: 한포천, 운계천, 금당천, 곡수천, 양화천 등 제1지류 24개, 제2지류 하천19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조용연 주필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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