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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인터뷰 - 최새힘 작가

한글날 특집 인터뷰 - 최새힘 작가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10.0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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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으로 정치·문화적 불평등 해소”

“세종대왕은 전제 군주지만 문자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여주신문>은 한글날 573돌을 맞아 우리말의 뿌리와 쓰임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최새힘 작가를 초청해 대담을 가졌다. -편집자 

게재된 기사는 실제 대담과 일부 다를 수 있으며 전체 내용은 유튜브 <여주신문TV>와 팟캐스트 <여주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다.

이장호 오늘은 한글날 573돌을 맞아 우리말 뿌리와 쓰임을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최새힘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최새힘 안녕하십니까. 최새힘이라고 합니다.

이장호 이름도 순 우리말인가요?

최새힘 네, 이름은 우리말로 아버지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새롭다 할 때 ‘새’에 힘내라 할 때 ‘힘’입니다. 인생에서 힘이 빠지는 시기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항상 새힘을 내고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한자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고 받아 적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새힘’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도 많이 받았지만, 사실은 불편한 것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제 자식들의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짓지 못하고 돌림자를 써서 지은 것에 대해서는 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장호 여러 가지 강좌도 진행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강좌를 하실 때 많은 분들이 오셨었죠? 

최새힘 제가 여주신문에 우리말의 뜻을 푸는 글을 꽤 여러 번에 걸쳐서 연재를 해 왔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우리말에 대해 제대로 한 번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분들이 계셔서 열 분 정도 모여서 구세군 1층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한 9개월 정도 공부를 해왔습니다. 

이장호  한글날 유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최새힘 한글날은요. 1926년도에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공동으로 행사를 갖았다고 합니다. 처음 이 두해 동안은 ‘가갸날’이라고 부르다가 1928년 주시경 선생님이 훈민정음을 한글로 고쳐 부르시게 되면서 ‘가갸날’을 ‘한글날’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0년도에 훈민정음 책이 재발견되면서 ‘훈민정음 반포일이 음력으로 9월 초순이다.’ 이렇게 알려지게 되고 초순 맨 마지막 날인 10일을 기준으로 오늘날 양력으로 환산을 하여 10월 9일이 되게 된 것입니다. 

이장호 그 초순이라는 것은 옛말로 하면 음력 9월 상순이죠. 조선왕조실록에는 음력 9월 29일로 나오지 않습니까? 

최새힘 그것은 달력이 조금 달라서 환산하면서 생긴 문제라고 그러더라고요. 

이장호 날짜 계산하는 방식이 달라서요? 

최새힘 네, 북한에서는 ‘조선글날’이라고 해서 한글 창제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하고요. 남한에서는 반포일을 기준으로 해서 기념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발명자가 처음 만들어 놓고 언제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스스로 기록해 놓기 전에는 정확한 날짜를 알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반포를 했다하더라도 사용한 달력이 달랐기 때문에 오늘날과 날짜 계산이 어느 정도 오차가 있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이장호 북한도 우리처럼 같은 날짜를 사용하고 있나요?

최새힘 아니요. 1월 15일 인가? 창제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랑은 다릅니다.

이장호 예, 우선 그것도 좀 통일 시킬 필요가 있겠네요. 

최새힘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되면서 서로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다른 날을 기념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장호 처음에는 왜 ‘가갸날’로 했을까요?

최새힘 많은 사람들이 훈민정음을 가지고 공부를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른 방법으로 글자를 익히기 위해서 가갸....... 이런 식으로 발음을 노래 불러 가면서 했기 때문에 ‘가갸글’이라고 쉽게 부르게 되었고요. 그런데 이제 ‘훈민정음’이라는 한자어로 된 이름을 사용하기 보다는 우리말을 사용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당시에 강했었는가 봐요. 근데 ‘가갸글이라고 하면 좀 품위가 없어 보이고 좋은 이름을 정해야 되겠다.’ 해서 주시경 선생님이 우리말에 ‘한이요’ , ‘한가득’, ‘한 아름’, ‘한꺼번’, ‘한가운데’, ‘한창’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처럼 ‘하나’라고 하는 뜻도 있지만요. 많다, 크다의 뜻도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의 큰 글자 이런 의미에서 ‘한글’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세종께서 창제를 하시고 이름을 짓기로는 훈민정음이라고 짓지 않으셨습니까? 

이장호  그렇죠.

최새힘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것이 한자말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한글을 공부하시고 조선어를 지키려고 했던 당시 분들은 우리말로 좀 바꾸고 싶어 했던 모양인데요. 혹시 기자님은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말로 풀이를 했을 때 어떻게 알고 계시죠?

이장호 보통 일반적으로 풀이 했을 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최새힘 예,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죠?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백성들을 가르친다고 하기 보다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백성들에게 가르쳐주는 정음이다. 이렇게 풀이를 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그런데 훈민이라는 말 속에 봉건적인 냄새가 너무 강해서 오늘날 쓰기에는 좀 문제가 있기는 한데요.

책으로 된 훈민정음을 읽어보면 우리 글자는 ‘아설순치후’ 어금니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구멍소리. 다섯가지 소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우리말의 특징이 아주 명확하고 훈민정음에 그 정이라고 하는 말의 글자의 뜻에 아주 부합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정을 옥편에서 찾아보면 바르다. 순수하다. 정당하다. 이런 뜻도 있지만, 으뜸간다. 근본이 되는 것. 그리고 끝에 가면 다섯가지. 그래서 선거할 때 바를 정자를 써서 숫자를 표시하지 않습니까? 이런 세 가지 뜻이 더 있습니다. 순수하다. 그 다음에 으뜸 혹은 근본이 된다. 다섯.

훈민정음 내용을 보면 아설순치후 이 다섯가지 소리가 정자의 5라고 하는 개념과 일치를 하고요. 그 다음에 예를 들어서 ㄱ에서 획을 하나를 더해서 ㅋ을 만들면 거기에 기운이 더해졌다. 이런 창제의 원리가 훈민정음에 있거든요. 그러면 다섯가지 기본이 되는, 근본이 되는 소리에 의해서 다른 것들을 파생시켜서 만든 글자가 우리 글자입니다.

세종께서는 28글자를 당시에 만드셨다고 하지만, 사실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설순치후’ 다섯가지의 초성과 그다음에 중성은 사실은 10개가 아니고 세 가지 밖에 없습니다. 아래아와 으. 이. 이것들을 가지고 중성을 다 만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종성은 초성을 다시 가져다 그대로 사용을 하고 있고요. 이런 창제의 원리를 본다고 하면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뜻을, 정자가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가르쳐주는 다섯가지의 순수하고 근본이 되는 소리라고 그렇게 해석을 해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밖에 없는 큰 글이라고 하는 뜻의 한글보다는 정음이라고 하는 그 이름을 세종께서 지으신 대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우리말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서 쓰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저작권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발명자가 정음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함부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도 사실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저같이 정음이라는 말을 쓰자는 주장도 오늘날같이 한글로 많이 사용하는 시절에는 받아들이기 굉장히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런 뜻이 있다는 것을 한번쯤 제대로 한 번 집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장호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통해 그 당시 백성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려고 했을까요? 

최새힘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고, 언해본이 있잖습니까? 그 서문을 보면 동일하게 세종께서 지으신 훈민정음. 한 다음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말로 좀 바꿔서 읽어드리면,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맞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제 뜻을 글자에 실어 펴지 못하는 놈이 많다. 내 이를 어여삐 여겨서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 편하게 할 따름이다.’ 이렇게 적고 있거든요. 표면상으로는 글자를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고 사회적으로 낭비가 심하냐? 그러니 양반들이 한자를 쓰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통해서 이러한 문화적 혜택을,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으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 이정도로 쓰셨는데요. 그런데 거기에 숨은 뜻을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거기에 숨은 뜻은 글자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세종께서는 정확하게 이해를 하시고 그것을 백성들한테 나누어 주시고자 하셨던 것 같아요. 오늘날 학교에 가면 수학을 굉장히 많이 배우는데요. 수학은 수학적 표현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아니고요. 그런데 이러한 수학적 표현이 가득한 언어를 사용함으로 인해서 쉽고 빠르게 논리적으로 수학적 논리를 펴 나갈 수 있는 그런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매일 컴퓨터를 사용을 하는데요. 컴퓨터에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미리 적어 놓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보면, 사람이 머리로써 할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일을 순식간에 해 내거든요. 이렇게 글이라고 하는 것은 말을 단순히 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말에 힘을 더욱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한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조선말, 한국말만 사용하던 대부분의 민중들에게 아주 큰일을 할 수 있는 큰 도구를 손에 쥐어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글자가 없으니까 말을 멀리 있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사람들한테 전달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 때문에 그 편리함에 차이도 있지만, 정보습득의 차이로 인해서 사회적 사람들의 양반과 일반 평민들의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그것이 엄청난 불평등함으로 남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세종께서는 문자로 인해서 발생하는 정치적 문화적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하셨던 것이 크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당시에 세종은 전제 왕조에 군주셨지만, 오늘날로 따지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그런 분이 아니었나하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두 가지의 의미가 세종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전달해주시는 그런 큰 뜻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장호 한자 같은 경우에는 보통 주음부호를 이용해서 입력하기도 하고 영어로 입력해서 치환해서 쓰기도 하는데 우리는 바로 그냥 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럼 요즘 이러한 그 세종이 저희에게 주려고 했던 정보 불균형 해소라든지 어떤 민주적인 사회를 했다라고 하면 이러한 세종의 뜻을 우리가 잘 만드신 것을 잘 써야 하는데 이러한 세종의 뜻을 살리는 것 우리가 오늘날에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최새힘 네. 조선시대, 아니 삼국시대부터 한자가 전래되면서부터 한자만을 사용하고 그것이 약간 불편하니까 뭐 이두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사용하기는 했었는데요. 그래도 그런 것도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한자를 중심으로 해서 삶을 영위를 해 왔고 세상을 조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중국말을 적기위한 한자와 우리말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생겨나는 오해와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함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굉장히 큰 것은요. 중국 사람이 세상을 보던 시각과 한국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완전히 판이하게 다르거든요. 그래서 한국 사람이 보는 다른 세상을 한자를 가지고 적으려고 하다 보니 조선시대 성리학을 공부하셨던 분들은 중국 사람의 세계관도 아니고 조선 사람의 세계관도 아닌 어정쩡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요.

오늘날도 논어 맹자 이런 것을 가지고 그 뜻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해서 분란이 좀 생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한자를 사용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요. 순수한 우리말을 가지고 세상은 더듬어서 살아왔다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한국적인 세계관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심으로 인해서 글자에 비로소 고스란히 담길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날 훈민정음을 보면 글자가 사용하기 편리하고 과학적이다. 배우기가 쉽다. 이런 것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 글자를 통해서 담겨있는 한국 사람의 세계관을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될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그 한국 사람이 갖은 세계관이 담겨있는 한글을 통해서 오늘날 그 한국 사람만의 세계관을 우리의 생각을 또렷하게 하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세종의 뜻을 제대로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선생님들도 계시고 부모가 되면 자녀분들을 가르치기도 하시겠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 볼 때 겨우 자신의 발끝을 따라오는 그런 제자는 별로 기특하지가 않거든요. 자신이 가르쳐준 것을 밟고 넘어서서 자신을 뛰어 넘을 때, 선생님으로서, 스승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종께서 살아계신다고 한다면 세종대왕님의 발끝을 쫓아다니면서 칭송하는 것만 할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님을 발판으로 해서 밟고 넘어서는 그런 후세가 되어야 세종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을 한 번 해봅니다. 

이장호 한글날 맞으실 때마다 뭐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아요? 이때만 또 한글에 대해서 관심들이 많으니까. 

최새힘 맞습니다. 이런 관심을 그냥 혼자서만 가지고 있었었는데요. 우리 여주에는 세종대왕께서 잠들어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번 영릉에서 하는 한글날 기념축제를 가 본적이 있습니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한글이나 훈민정음과 관련된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절미를 나눠 준다든가, 그 다음에 초콜릿으로 가나다를 적는다거나 아니면 나무를 깎아서 활이나 칼을 만들어서 판다거나 이런 것들을 봤거든요. 그래서 한글과 관련된 알찬 축제로, 그 다음에 우리말에 담겨있는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런 축제로 해야   될 텐데 이름만 다른 것으로 바꿔 끼우면 뭐 오곡나루 축제라고도 부를 수 있겠고, 뭐 다른 축제로도… 요즘에 가까운 장호원에서 축제를 하는데요. 거기 갖다 놔도 복숭아 축제라고 해도 될 만하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세종대왕의 뜻을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으로서 재해석하고 그것을 바람직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방향의 축제로써 다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정리=이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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