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39. ‘하나’를 얻는 다는 것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39. ‘하나’를 얻는 다는 것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19.09.24 08:01
  • 수정 2019.09.25 17:17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레를 셈하되 수레가 없는 경지에 도달하고, 
영롱한 옥이 되려말고 둥글둥글한 돌이 되어야

 

장주식 작가

2019년 7월 22일 오전 7시 33분.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석개재에서 승합차가 전복되었습니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비탈길로 굴러 떨어진 것인데요, 4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에는 몹시 안타깝고 놀라운 일이 숨어 있었습니다. 우선 이 차량이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홍성에서 삼척까지 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탑승자가 내국인 9명, 외국인 7명이며 내국인은 다 노인이고 외국인은 이주노동자라는 것입니다. 사고가 나자 외국인 3명은 도망쳤다고 합니다. 아마도 ‘불법체류자’ 겠지요. 이 3명 중에 많이 다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탑승자들은 쪽파 파종 작업을 위해 가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농촌에 얼마나 일손이 모자라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충남 홍성에서 강원 삼척까지 쪽파 작업을 위해 이른 새벽에 이동해야할 만큼, 뭔가 우리 농촌은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이건 아주 특별한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일은 언제든 일반화될 수 있습니다. 일을 하는 시간만큼 도로에서 이동을 해야 한다면, 이건 참 비효율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긴 이동시간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이번 사고가 보여주듯이 말이죠.

여기서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농촌에 사는 노인과 외국에서 이주해 온 젊은 사람이 이 승합차를 왜 타야만 했는지 말입니다. 이들이 해야 하는 ‘쪽파작업’을 우리는 혹시 ‘천한 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천한 일로 자리매기면 하기가 싫어지죠. 그렇다면 이 일을 우리는 천한 일이 아니라고 인식할 필요가 생깁니다. 천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귀한 일의 바탕’이 된다는 인식 말입니다. 그러나 인식은 인식하라고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죠. 자연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하늘이 세상을 경영하듯 ‘촘촘한 그물’이 필요합니다.

쪽파작업은 귀한 일이 되고, 쪽파작업을 하기 위해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게 하는 것. 홍성에 사는 노인은 홍성에서 쪽파작업을 하고, 삼척에 사는 노인은 삼척에서 쪽파작업을 하는 것. 차가 굴러 몸을 다쳤는데도 달아나야만 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는 것. 이런 세상 말입니다.

분명이 가능합니다. 권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사고가 난 승합차는 ‘처음부터 차가 이상했다’고 탑승자들이 말했다고 하죠. 그런데도 그냥 타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차를 새 차로 바꿔오라든가 정비를 하고 가자는 등을 요구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요구를 할 권리가 있었다면 탑승자들은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 이런 권리는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탑승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차량을 타고 멀리 이동해야 했죠. 그렇다면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면 됩니다. 그들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 환경’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아마 한 달에 오십만 원 정도를 이 탑승자들에게 꼬박꼬박 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달 오십만 원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위험한 이동을 하지 않을 거니까요. 굳이 이동해야한다면 위에서 얘기했듯이 ‘요구’를 할 겁니다. 탑승자들을 꼭 데리고 가야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현재 우리가 가진 경제총량으로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며 제도화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배분’에 동의하느냐가 문제인 것이죠.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내놓아야 배분이 가능하니까요.

노자는 말합니다.

“수레를 셈하되 수레가 없는 경지에 도달하라!”

수레는 내가 가진 보물입니다. 재산, 재물, 소득. 뭐라고 불러도 됩니다. 내 수레가 몇 대나 되는지 셈하라는 건, 내가 가진 능력을 살펴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 수레를 나 혼자만 가지지 말고 함께 타라고 말합니다. 함께 타는 일, 그것이 수레가 없는 경지입니다. 그 경지를 노자는 득일(得一), 곧 ‘하나를 얻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 신과 골짜기, 만물과 임금(사람) 등이 하나를 얻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를 얻으면 맑고, 평안하고, 영험하며, 가득 차고, 생명이 태어나고, 온 세상이 바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그 ‘하나’는 무엇일까요? 노자는 ‘도’라고 말하고 많은 성인들은 ‘사랑’이니 ‘자비’니 ‘인’ 등으로 변주합니다. 현대에는 다중지성으로 만들어낸 ‘법전’이 그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노자 도덕경 39장 : 昔之得一者(석지득일자)라. 天得一以淸(천득일이청)하고 地得一以寧(지득일이녕)하고 神得一以靈(신득일이령)하며 谷得一以盈(곡득일이영)하며 萬物得一以生(만물득일이생)하고 侯王得一以爲天下貞(후왕득일이위천하정)하니 其致之一也(기치지일야)라. 天無以淸(천무이청)이면 將恐裂(장공렬)하고 地無以寧(지무이녕)이면 將恐發(장공발)하고 神無以靈(신무이령)이면 將恐歇(장공헐)하며 谷無以盈(곡무이영)이면 將恐竭(장공갈)하고 萬物無以生(만물무이생)이면 將恐滅(장공멸)하며 侯王無以貴高(후왕무이귀고)이면 將恐蹶(장공궐)이라. 故貴以賤爲本(고귀이천위본)하며 高以下爲基(고이하위기)하니 是以後王自謂孤寡不穀(시이후왕자위고과불곡)이라. 此非以賤爲本邪(차비이천이위본야)이니 非乎(비호)아? 故致數輿無輿(고치수여무여)하며 不欲琭琭如玉(불욕록록여옥)하고 珞珞如石(락락여석)하라.>  

 

옛날에 ‘하나’를 얻은 것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 평안하고, 신은 하나를 얻어 영험하며,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가득 차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 태어나고, 임금은 하나를 얻어 세상을 바르게 하니, 이 모두는 ‘하나’가 이루어내는 경지다. 하늘이 맑지 않으면 장차 찢어질까 두렵고, 땅이 평안하지 않으면 흩어질까 두렵고, 신이 영험하지 않으면 텅 빌까 두렵고, 골짜기가 가득 차지 않으면 비쩍 마를까 두렵고, 만물이 태어나지 않으면 모든 게 사라질까 두렵고, 임금이 고귀하지 않으면 넘어질까 두렵다. 그러므로 귀함은 천함을 뿌리로 삼고 높음은 낮음을 바탕으로 삼으니, 임금이 스스로 부르기를 ‘외롭고, 적고, 착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천함으로 근본을 삼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수레를 셈하되 수레가 없는 경지에 도달하고, 영롱한 옥이 되려말고 둥글둥글한 돌이 되어야 하느니.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