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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 자전거로 걷다-한강2 (강원-동강 ③)

한국의 강, 자전거로 걷다-한강2 (강원-동강 ③)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19.09.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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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강을 잃어버릴 뻔하다니. 동강③

지붕 없는 박물관 창조도시, 영월

영월읍에 들어서면 시간을 좀 내서 머물렀다 가는 것이 순리다. 치악산 성안이강에서 시작하여 주천강이 되었다가 평창강과 만나 서강으로 이름 바꾼 물길이 영월을 서쪽에서 감싼다. 그냥 내쳐 물길을 따라 단양으로 내려갈 일이 아니다. 제천에서 영월읍으로 오는 들머리, 천년의 솔숲으로 둘러싸인 청령포는 가족끼리 가보는 명승으로 남겨두어도 좋다. 애써 줄을 서서 배를 타고 강 건너 숲으로 가느니 차라리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총대를 멘 금부도사 왕방연 시조비 앞에 선다. 비탄의 마음이 절절한, 그 익숙한 시조를 지그시 눈을 감고 읊조려 보는 게 오히려 낫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놓다>

첩첩산골이라 ‘산다(山多) 삼읍(三邑) 영평정(寧平旌)’(지천에 산인 세 고을 영월·평창·정선 )으로 불리던 영월은 탄광의 쇠락으로 이렇다 할 먹고 살 거리가 부족했다. 사람을 모을 방안을 자연풍광과 박물관 클러스터에서 구했다. 사진, 화석, 종교, 민화, 다구, 교육 등 22개의 박물관이 점점이 박혀있다. 그중에서도 7개의 상설전시실을 가진 동강사진박물관은 인상적이다. 군청 정문 앞에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예술, 사진, 그 문화적 자존이 자랑스럽다. 2005년 뜻있는 사진가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동강사진박물관’, 그 가운데도 문화공보부장관까지 지내고도 사진으로 인간을 말해주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는 윤주영 선생은 돋보인다. 탄가루에 절은 수건으로 동여맨 광부의 목덜미와 생존을 향한 강렬한 눈빛의 잔영이 그의 검붉은 얼굴에 오버랩 된다. 6·25 전후의 궁핍과 지겹게도 못살았던 날의 우리들 자화상을 흑백으로 남긴 최민식 선생의 다큐 사진들, 13회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된 구본창의 작품들이 지금 이 산골 소읍 영월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2006년 만들어진 영화 ‘라디오 스타’의 성공, 그 흔적은 아직도 영월읍 군데군데 남아 있다. 이준익은 퇴락해가는 시골 소읍의 풍경들 속에도 삶의 페이소스가 살아 있는 코미디풍의 터치로 웃음과 눈물을 감동으로 버무렸다. 한물간 록가수 최곤이 툴툴거리며 알게 된 사람 사는 동네의 소소한 일상, 영화 속 ‘영월방송지국’이나, ‘동강 순대국집’의 흔적은 궁금하다. 생방송에서 외상 찻값을 갚아 달라고 능청스럽게 철물점 사장님을 불러대던 ‘청록다방’미스 김은 영화 ‘티켓’에서 쌍화차 쟁반을 보자기로 싸고 출장을 나가던 속초 ‘조양다방’ 미스 양과는 전혀 다른 웃음을 준다.

 조용한 소읍, 영월에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축제 분위기다. ‘송해 선생님의 영월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전국노래자랑 영월 편의 녹화가 있는 날이다. 군민체육관은 악단의 반주와 사람들의 환호로 떠나갈 듯하다. 몇 해를 건너야 볼까 말까 한 군민잔치를 그냥 지나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올해 92세인 송해 오빠야말로 100세 시대의 등불 같은 현역 그 자체다. 그의 익살과 불룩한 배를 먼발치에서 흐뭇하게 보는 일이야말로 여행의 또 다른 재미고 위안이다. 이제 동강은 이름이 사라진다. 고씨동굴 못미처 있는 영월화력발전소(정양발전소)가 큰 이정표다. 1943년에 만들어졌으나 여전히 현역이다. 남한강 뗏목길에 발전소 수문은 위험천만한 포인트였고, 끈 풀린 뗏목은 덕포나루나 대야리 맛밭나루에서 다시 엮고 한양으로 떠났다. 충북과 강원의 접경지역이어서 장(場)이 서고, 1930년대까지는 황포돛배가 마포 소금을 싣고 왔었다. 

태백으로 가는 지방도는 이제는 김삿갓면으로 이름을 바꾼 하동면, 중동, 상동으로 이어져 봉화 서벽, 춘양으로 넘어가는 조입에서 옥동천과 동행한다. 남한강으로 이름 붙이고 처음 만나는 활고개 아래 영춘은 천태종의 본산 구인사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내겐 1972년 대홍수, 물난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시 영춘면 소재지는 집 몇 채만 간신히 남았으니 면소재지가 죄다 물에 잠겼다는 얘기다. 물에 데어버린 면사무소는 아예 언덕에 멀찌감치 새로 자리 잡았다.

낚시꾼이 유일하게 대접받는 땅, 단양

군간교와 가대교를 지나면 단양의 초입 가곡면 소재지다. 여기에서 견지낚시에 일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 조성욱씨(한국전통견지협회장)를 만나고 가야 한다. 서울 사람인 그가 사업을 접고 이 아름다운 골짜기(가곡면)에 정착한 것은 순전히 견지낚시의 주인공인 누치(눈치라고도 부른다)가 눈치도 없이 잘 물어주는 소위 ‘물 좋은 곳’이어서다.

낚시를 이해하는 군수양반(전 김동성 군수)을 만난 덕분에 가곡은 누치 동상까지 떡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 견지낚시 특구가 되었다.

로컬방송은 물론이요, 예능프로그램까지 돈도 안 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훈수 두느라 바쁘다. 강둑길 자전거여행에서 지치거든 들러 인사하시라. 흔쾌히 재워주는 넉넉한 인심을 만날 수 있을 게다. 연대가 맞으면 강물에 들어가 누치나, 강준치, 갈겨니의 손맛을 보는 호사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곡을 지나 가곡교차로에서 새로 난 다리를 건너가면 편하기는 하나, 고수재를 올라서야 단양읍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수동굴의 고수다. 고수교를 건너 단양버스종합터미널이 있는 큰 건물이 ’다누리센터‘다. 그 안에서도 낚시박물관이 포인트다. 루어, 플라이 등등 민물낚시의 모든 것이 있다 해도 퇴역한 견지낚시의 거룻배가 주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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