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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36. 물고기가 연못에서 탈출하기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36. 물고기가 연못에서 탈출하기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19.08.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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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건 부드럽다 그러나 죽은 것은 딱딱하다

장주식 작가

일본정부는 2019년 7월 4일부터 한국을 수출 우대대상국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합니다. 우대대상국이란 수출절차를 간소화하는 국가를 말합니다. 제외되면 수출 개별 품목마다 허가절차를 거쳐야 하며 보통 90일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허가가 안날 수도 있는 거죠.

 일본은 우선 3가지 품목을 우대대상에서 제외했는데요, 리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입니다. 다 반도체산업에 필수품인데다 리지스트는 91.9%, 플루오린폴리이미드는 93.7%를 일본에서 수입합니다. 불화수소는 43.9%로 좀 낮은 편이고요. 한국 주력산업인 반도체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는 1,2,3위에 해당하는 품목들입니다.

 일본정부가 발표하자 일본 내에서도 약간 걱정스러워하는 반응도 있지만 ‘잘했다’는 일본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정부는 국제무역기구에 제소는 물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히고 한국국민 중 일부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리스트를 작성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런 조치를 한 것일까요? 이유는 한국 대법원판결입니다.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는 손해배상요구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합니다. 물론 배상을 해야 하는 기업은 한국인을 강제로 끌고 간 당시 일본기업들입니다.

얼마 전 <군함도>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강제동원 되어 간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는 잘 알겁니다. 상습적인 폭행, 임금체불, 심지어는 힘든 일을 견디다 못해 죽는 사람도 생겨났지요. 상황이 이렇다면 당시 일본기업은 피해자들에게 당연히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금전보상뿐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보상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일본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근거는 1965년에 한국과 일본이 맺은 ‘청구권협정’이 있다는 겁니다. 이때 일본은 3억 달러를 한국에 무상으로 주고 2억 달러를 유상차관으로 주는 대신 일제시대 피해에 대한 모든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에 대한민국 대법원은 손해배상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판결을 한 겁니다. 까닭은 1965년 당시 일본정부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재산관계에 따른 채권채무관계만 정리한 협정이며, 강제동원 피해자(강제징용, 위안부 등)들의 위자료 청구권까치 포함하는 협정이 아니’ 라는 것이죠.

 

그래서 대한민국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유효하다는 대법관 전원합의체 판결을 한 겁니다. 따라서 당시 일본기업인 신일철주금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한 것은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일본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을 제시하며 ‘국가 간 약속 위반’이라며 강하게 유감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2019년 7월 4일, 경제보복을 시작한 것이죠.

이런 사태를 노자가 지켜본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국가가 가진 무기를 사람들에게 과시하지 마라. 물고기가 연못에서 벗어나려는 것과 같으니.”

물고기가 연못에서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헐떡헐떡 거리다가 죽어가겠지요. 연못을 구성하고 있는 물은 부드럽고 약해보입니다. 물보다 딱딱한 물고기가 헤엄치면 물은 갈라지며 자리를 내줍니다. 물고기는 그런 부드럽고 연한 물속에서 호흡하며 먹이도 먹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 밖으로 나오면 물고기는 아주 딱딱하게 굳어져 죽어버리고 말죠.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있는 건 부드럽다. 그러나 죽은 것은 딱딱하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한다고 꺼내 든 것은 매우 강하고 딱딱한 것입니다. 일본이 가진 자랑스러운 무기를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노자에 따르면 딱딱한 건 부드러운 것에 집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도 딱딱한 무기만 꺼내 들면 안 된다고요. 딱딱한 무기끼리 부딪치는 건 죽은 자들 끼리 싸우는 것이니 공멸이 예정되어 있는 길이니까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같은 딱딱한 무기도 당연히 사용해야 하지만 부드러움도 함께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대법원이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했으므로 당시 피해자들은 한국정부에도 배상을 요구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빌미로 삼는 1965년 한일협정도 당시 한국정부가 한 일이니까, 한국정부도 일말의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고 한국정부는 일본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당연히 일본기업은 거부하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미 위자료를 지급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일본에겐 압박이 될 테니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든 구상권을 천천히 행사하면 됩니다. 언제까지나 일본도 거부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일본 내에서도 징용피해자들 개인청구권은 살아 있으며 배상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물고기를 감싸고 살리는 연못의 부드러움 입니다.

<노자 도덕경 36장 : 將欲歙之(장욕흡지)하려면 必固張之(필고장지)하고 將欲弱之(장욕약지)하려면 必固强之(필고강지)하고 將欲廢之(장욕폐지)하려면 必固興之(필고흥지)하고 將欲奪之(장욕탈지)하려면 必固與之(필고여지)하니 是謂微明(시위미명)이라. 柔弱勝剛强(유약승강강)하니 魚不可脫於淵(어불가탈어연)하고 國之利器(국지리기)를 不可以示人(불가이시인)하라.>

거둬들이려면 반드시 먼저 베풀어야 하고,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해야 하며, 넘어뜨리려면 먼저 일으켜 세워야 하며, 빼앗으려면 먼저 줘야한다. 이를 ‘미명-보이지 않는 밝음’이라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니 물고기는 연못에서 나오면 안 되고 나라의 이로운 그릇을 사람들에게 자랑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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