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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과속방지턱’에 내미는 청구서

여강여담- ‘과속방지턱’에 내미는 청구서

  • 기자명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 입력 2019.08.2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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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벗어난 돌출 과속방지턱은 ‘사고유발턱’ 일수도

 좀 낡긴 했지만 내 차를 손보던 정비사가 막대처럼 생긴 물건을 들고 와서 말한다.

“등속 조인트가 많이 휘었어요. 과속턱 넘을 때 소리가 많이 났을 텐데요. 오일도 밖으로 새고요.”, “그래?” ‘과속방지턱’이라, 그래서 그랬나?

여주 시내에서 비내섬으로 가는 퇴근길, 운전석에 앉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강가에 한 번 살아보는 것도 나의 버킷리스트(일생에 하고 싶은 일 목록) 중 하나여서 남한강변에 잠시 기거하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 점동면에서 국지도(국가지원지방도로) 84번으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과속증후군’ 환자 취급을 받는다. 32개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과속방지턱’ 고개다.

속도를 내는 차량들의 위협을 방어하면서 살아야 하는 주민들의 입장과 교통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를 3.8명에서 OECD 평균 1.1명으로 줄이겠다는 경찰의 야심찬 구상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과속방지턱’을 검색하는 순간 “턱이 너무 많다. 오히려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호소가 곳곳에 넘쳐난다. ‘사고유발턱’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오죽했으면 국내 자동차 회사로 이직한 독일 출신 연구원이 “독일의 한 달 과속방지턱 운행횟수보다 서울의 1일 운행횟수가 더 많다.”고 했을까.

하루는 날 잡아서 일일이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내 실험의 기준은 시속 40km이다. 동네 조폭처럼 털거덕거리며 잡아끄는 턱이 11개, ‘가상과속방지턱’이라는 가짜 방지턱 10개를 빼면 그런대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턱은 11개뿐이다. ‘짬짜미’라도 한 듯 1/3씩이다. 과속방지턱은 전방 20m에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고, 도로의 양측 배구 측구까지 길이를 제한하며, 노폭 6m 이상 도로는 폭3.6m, 높이 10cm, 노란색을 번갈아 45도 각도로 도색해야 하는 ‘원호형’ 방지턱이 일반적이다.

외딴집 한두 채를 두고도 방지턱이 있지만 소위 외지인들이 들어와 몰려 사는 데도 설치 안 된 곳도 있다. 해묵은 동네 앞 과속방지턱은 그 옛날 장터로 가던 윗동네 아이들을 불러 세워 얼차려 시키던 심술을 닮은 곳도 있다. 아마도 동네 민원이라고 터덜거릴 때마다 덧발라서 그런지 넘어가기가 꽤나 고약하다. 흡사 “너 한번 맛 좀 봐라.”하는 느낌이다.

특히 깜깜한 밤중에 지나가던 육중한 오토바이는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불평이다.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에서도 내몰린 오토바이가 지방도에서 마저도 찬밥이다.

지난해 금방 될 것처럼 요란하던 헌법 개정에 ‘국민안전권’이란 말이 들어간다고 하더니만 보행자만 국민인가. 운전자도 국민이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면 곧 보행자다. 여주와 충주 모두 ‘고을 주(州)’자 들어간 유서 깊은 양반 동네지만 이 점 그다지 젊잖지 못해 보인다.

매일 같이 출·퇴근을 하면서 받는 이 스트레스를 어디다 청구서를 넣어야 하나?

첫째, 내장까지 흔들리는 유쾌하지 못한 인내에 대한 보상

둘째, 때로 목까지 젖혀지는 경추가 받는 진단도 안 나오는 고통

셋째, 가짜 턱을 식별해 내는 데 드는 에너지 소모와 ‘속았다’는 속상한 값

넷째, 속도를 줄였다 재가속을 반복해야 하는 연료비와 ‘덜커덕’이 누적되는 자동차 감가상각비까지. 

가장 이상적인 과속방지턱은 중년에 슬슬 불러오는 아랫배처럼 둥두렷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사곡1리 마을 회관과 ‘점동테마공원’ 언저리는 최근에 재포장을 하면서 정해진 규격을 제대로 지켰음이 틀림없다. 설치 근거가 국토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으로 되어 있어 ‘의무사항’도 아니고 ‘권장사항’이라지만 이만하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통과주민만족도’ 100%다. 답답하지만 내가 문제의 과속방지턱에 배상하라는 청구액을 산정할 능력은 도저히 없다. 

그 정도도 못 참아서야 ‘민주시민’이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하나. “아니 아예 시속 40km로 벌벌 기면 될 일이지”라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뭔가 좀 배려를 받고 싶다.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술도 목 넘김이 좋은 술이 있잖는가. 20년, 30년 해묵으면 훨씬 향내가 부드러운 술이 되는 것처럼 지방자치도 해묵어 갈수록 ‘과속방지턱’ 고개 하나라도 더 둥글둥글하게 다듬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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