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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겉으로 남고 속으로 밑지면

[여강여담] 겉으로 남고 속으로 밑지면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19.08.19 11:35
  • 수정 2019.08.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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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안 가리는 노(NO) 재팬은 곤란해

대한민국은 미래를 보고 가는 큰 그릇이어야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외교·국방을 논하는 강의실, 4강 수뇌의 사진이 화면을 지나간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얼굴들이다. 유독 아베의 얼굴이 화면에 떠오르자 교육생들이 ‘우~우’ 야유를 한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높은 경쟁을 뚫고 공직에 입문하게 된 초년생들이다.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이 무더위에 아베의 얼굴에다 오종종한 목소리까지 떠올리자 나도 열이 받는다.

“이 지구상에서 국토에 관하여 가장 억울한 나라는 어딜까?” 대한민국, 팔레스타인... 몇 나라가 등장한 끝에 이런 답이 나온다.

“일본입니다.” “왜요?”

“일본열도가 가라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소하다는 표정이다. 막연한 분노가 담겨있다.

“일본이 침몰하면 안되지.” “왜 그렇습니까?”

“일본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 태평양의 쓰나미가 바로 한반도로 밀려들지 않겠어. 순망치한(脣亡齒寒)도 몰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걸.....”

우화 같은 이 이야기 속에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일본에 대한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가를 재어볼 수 있다.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일본은 냉철한 역사 분석 위에서라기보다 그저 불타는 혐일(嫌日)이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1년에 800만 명에 육박하는 한국인이 일본 땅을 찾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베는 ‘화이트 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제외라는 카드로 교묘한 대한민국 목조르기를 걸어왔다. 통점이 눌린 대한민국은 비명을 지르며 반일의 전투를 시작했다. ‘노 재팬(NO JAPAN)’이란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타오르고, 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카드까지 외교 테이블에 꺼내놓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대한민국 제1의 유서 깊은 청춘의 국제거리 명동에 내건 지차체의 ‘노 재팬’ 플래카드는 상인들의 반발과 “이건 아니다”는 여론에 밀려 며칠 만에 끌어내려 졌다. 언론의 기조도 불타던 반일에서 냉정한 극일로 가자고 보폭을 줄이는 추세다.

여주에도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규탄의 프랑카드가 사거리에 나 붙어 있다. 솔직히 국제질서란 이념이고, 민족이고를 떠나 끝내는 장사의 논리, 경제의 논리로 귀결된다.

한방 확 지르고 나면 ‘속은 시원하다’ 그러면 그 다음 카드는 무엇인가.

쓰시마로 가는 연락선 객실이 텅텅 비고, 동경·오사카에 한국 관광객이 줄었다고 멍 자국을 아파할지는 몰라도 항복 선언을 할 일본이 아니다. 이런 벼랑에서도 BTS(방탄소년단)는 일본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싱글 음반 100만 장의 신기록을 세우며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이때 BTS의 열혈 ‘일본 아미’들이 한국행 티켓을 끊고 날아와 환호의 형광봉을 흔들게 되면 반일의 피켓을 높이 드는 우리 젊은이는 일본에 지는 것이다.

더 냉철하게 사태를 직시하고 어느 환부를, 고통을 줄이며 도려낼 것인지 칼을 갈고 있어야 한다. 일본이 왜 자위 이상의 자위대로 군비증강을 하는지, NHK 일본판 ‘전국노래자랑’에서 왜 출연자들이 무대 뒤에 앉아서 같은 방향으로 율동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일본이 보인다. 최고의 이과 두뇌들이 의대, 약대로 줄을 서는 우리 현실에서 노벨, 물리·화학상을 휩쓰는 일본의 ‘기초정신’을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그러지 마라.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가장 겁나는 것은 마구 짖는 개가 아니라, 소리 없이 다가와 잇몸을 드러내는 맹견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한·일관계는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한 판 붙어보는 축구 한·일전이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 유달리 생각나는 오늘이다.

 “‘겉으로 남고 속으로 밑지는 장사’를 하면 그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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