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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유인촌, 해마다 ‘국토 종주’에 나서는 이유고봉중·고에서 인연 맺은 청소년들과 폭염 속 인내를 나누다
  •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 승인 2019.08.1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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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배우 유인촌 씨와 후원자들이 해마다 청소년들과 함께 부산부터 서울까지 ‘국토 종주 자전거 대행진’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본지 조용연 주필은 서울 도착 하루 전인 지난 14일 한강문화원 강천보에서 여주 구간을 지나던 유인촌 전 장관과 청소년, 후원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조용연 반갑습니다. 장관님, 무더위가 절정인데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시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상당히 여러분인데 이 행사의 목적과 규모는 어떻습니까.

유인촌 한때 잘못을 저질렀던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 자전거 국토 대장정>이라고 이름 붙여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560km를 6박 7일간에 걸쳐 종주하는 행사입니다. ‘재단법인 한국소년 보호협회’가 주관하고, 올해는 스물다섯 분이 참가했지요.

조용연 몇 년째 계속하는 행사인가요?  취지는?

유인촌 올해로 3년째입니다. 사실 7일간 만만찮은 거리거든요. 그래서 한때 비행에 물들었던 청소년들에게, 특히 한여름 악조건 아래 완주라는 성취감을 불어 넣어준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도 들어주고, 칠순 나이에 완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겠지요.

조용연 실제 한여름 가장 더울 때 진행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으실텐데

유인촌 학생들의 방학 기간을 이용해야 하니까 여름철이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성격이 울통불퉁한 친구들도 있구요. 아마 지도교사님들이 아니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늘만 해도 오다가 넘어지는 사고가 나서 1명은 늦게 왔어요. 저희는 해 떨어지는 곳에서 형편껏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합니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서 공동수도에서 몸을 씻는 그런 것마저도 극기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조용연 어떻게 청소년들과 인연이 되셨는지요?

유인촌 사실 장관 퇴임 후에 뭔가 보람 있는 걸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의왕시에 있는 고봉중·고교가 교정시설이라 학생들 연극지도를 하다가 정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어요. 방과 후 저녁 9시까지 연습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나서야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친근감을 나타내더군요. 얘들이 그런 교정시설을 방문하는 어른들이 사진들이나 찍고 가는 걸 엄청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진심이 통한 것이라고나 할까...

조용연 연극지도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듯한데요. 어떻게 자전거를 생각하시게 되었는지?

유인촌 연극이란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나는 머리가 나빠 외우지 못해요”하고 그냥 주저앉는 거예요. 그래서‘아, 이거보다 자전거를 같이 타는 게 더 효과적이 아닐까’ 싶어서 몇몇 지인들과 함께 시작하게 된 거지요.

조용연 3년째라면 쉽지 않았을 텐데, 무엇이 계속하게 만든 힘인가요? 앞으로 계속 하실 건가요?

유인촌 사실 첫해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희도 경험이 없었고, 사실 좀 고집이 유별난 친구들도 있어서 중간에 주저앉아 못가겠다는 걸 달래가면서 진행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완주하고 나니 전부 뿌듯해 했어요. 서울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면 일부러 한명 한명 호명하면서 완주증을 주지요. 특히, 우리 이원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 도움도 컸죠.

몸으로 이뤄낸 것이니 성취감을 느낀 거죠. 이 행사에 완주하고 난 애들은 재범율이 아주 낮다고 들었어요. 첫해에 가장 속을 썩였던 녀석이 그때 열여섯 살이었는데 올해 열여덟이겠지요. 또 종주에 도전하겠다고 스스로 온 것을 보면 대견하지요. 그만큼 인내심이 생긴 거죠. 아마 체력이 닿는 대로 또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용연 이렇게 여러 명이 움직이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유인촌 첫해 900여만원은 제가 다 댔고, 지금은 제가 한 반쯤 대지요. 제 아는 분들의 후원을 받기도 합니다. 1km당 100원씩, 그러니까 제가 완주하면 5만6000원의 후원금이 걷히는 셈입니다. 취지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크지요. (티셔츠를 보여주며) 보세요. 이렇게 티셔츠에 후원해 주신분들 이름을 써넣고 달리는 겁니다. (웃음)

조용연 교정활동을 하신 셈인데 비행청소년의 정책과 관련해서 아쉽다고 느끼는 점은 없는지?

유인촌 많은 분들이 소년원에 후원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교정시설은 국가 예산이 제대로 세워져 있어요. 그런 데 보다는 출소 후에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머무는 이런 ‘청소년센터’가 오히려 민간의 후원이 더 절실하거든요. 어찌 보면 생색이 덜 나는 일일 수도 있긴 하지만...

 

무더위 속에 여러 날 라이딩에 지친 상태라 아래 질문은 며칠 뒤 개인 스튜디오로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이다.

조용연 4대강 사업이 시행되었던 당시의 각료로서 국토 종주를 통해 한강, 낙동강을 보신 소감은?

유인촌 뭐 이러니 저러니 말들이 많지만 4대강 사업은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수도권의 한강은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니까 덜한데 지차체로 이관된 이후에 제대로 관리가 안 된 부분들이 눈에 들어 오지요. 제대로 된 캠핑장 하나 안 보입니다. 야영하며 땀 씻을 곳조차 제대로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여주-양평간 자전거길 관리는 환상적 입니다. 정말 감탄했어요.

조용연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내셨으니 그런 관점에서 4대강의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은?

유인촌 사실 현직으로 있을 때는 고수부지(둔치)의 활용, 휴식공간 확보, 캠핑장, 바이크텔 등을 계획했었는데 다음 정부로 이어지면서 제자리걸음인 듯 보여 아쉽지요. 뭐 그런 지속적인 관심과 발전이 꾸준히 이루어져야지요. 사실 600km정도의 자전거 길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거든요. 그리고 우리 산하가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아름답습니까.

조용연 자전거 마니아인 것은 알려진 사실인데 오토바이 마니아인 것은 뜻밖입니다. 어떤 계기로 타시게 되었는지, 어떤 매력이 있습니까.

유인촌 사실 저는 오토바이를 20대 때부터 탔어요.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배운거지만요. 오토바이의 해방감을 아는 거지요. 나중에는 빡빡한 스케줄 맞추려고 오토바이를 애용하기도 했어요.

조용연 기종은 어떤 것인가요?

유인촌 많은 분들이 네이키드라고 하는 할리의 중후한 엔진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는 레프리카인 BMW 기종을 좋아해요. 어쩌면 저는 운동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지요. 이게 엄청 운동이 됩니다. 강원도 구룡령같은 곳에서 코너링을 제대로 하고 나면 양쪽 허벅지가 아플 정도예요. 속도와의 비례감을 아주 부드럽게 느끼는 거죠.

조용연 장관 재직 시에도 오토바이를 타셨다고 하던데? 파격 아니었을까요.

유인촌 평일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주말이나 휴일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지자체를 돌아다녔지요.

자동차로라면 어려웠을 겁니다. 한번은 충북 단양을 지나가는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배 전국탁구대회가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거예요. 야, 그럼 저기 한 번 가보자”해서 경기장을 찾았지요. 마중한 군수님이 무대 위에 세워 소개를 하는 거예요. 오토바이 타는 복장으로 말이죠. 열렬한 박수와 환호가 진동했지요. 뭐, 하여간 현장확인 행정 때 많이 활용했어요. 지금도 가끔 타지요.

이진수(69) 전 국립암센터원장(사진 왼쪽의 두 번째)이 경기고 64회 동창인 이호형(70), 박병규(70), 백흠균(70) 씨 등 후원자를 소개하고, 유인촌 국립암센터소아암후원회장과 맺은 인연을 설명하다.

조용연 역시 온 국민들에게 배우 유인촌은 전원일기의 김회장 댁 둘째 아들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데요.

유인촌 전원일기는 22년간 했어요. 제가 서른 살에 시작해서 쉰둘에 끝났으니 말이지요. 52세에 청년회장을 했으니  (허 허) 지금의 농촌 상황과 유사하지요. 처음에는 드라마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생활이 되어버렸어요. 배우들도 모두 한 식구가 되고,

조용연 그렇게 롱런(장기 방영)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요?

유인촌 농촌 드라마로서 사명감이 컸어요. 영향력이 커서 격려도 많았지만 항의 또한 만만치 않았어요. 하여간 우리가 농촌 홍보나 뭐 그런 거로 갔으면 일찍 막을 내렸겠지만 휴먼 드라마로 간 것이 그 비결이지요. 촬영지만 해도 고양 일영, 장흥, 남양주, 양평, 충북 청원까지 간 적도 있어요.

조용연 전원일기가 종영될 때는 아쉬웠겠습니다.

유인촌 물론 아쉽기는 했지만 마지막에 는 소재가 말라서 작가들이 힘들어했어요. 전원일기는 그냥 자연사한 겁니다. 훌륭하게 소임을 다하고 사라진 거지요.

조용연 다른 민방에서 경기도 지역의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신 걸 본 적이 있는데 특히 여주 쪽에 어떤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

유인촌 아, OBS 경인방송의 ‘경기천년’이라는 프로그램을 3년간 특집으로 했어요. 경기도는 전역을 샅샅히 다 다녔지요. 여주는 원래 문화유적이 특히 많은 지역 아닌가요. 이포보 건너편 파사산성에도 올라가서 조망했고, 세종대왕릉, 신륵사, 고달사지 등 일일이 다니면서 현장 멘트를 하면서 새롭게 느꼈지요. 여주는 만년에 조용하게 살만한 곳이라는 느낌 이예요.

조용연 역시 OBS의 ‘명불허전’이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데는 명사회자로서 배우 유인촌이 있는데, 인터뷰어로서 비법이 있다면 한 수 좀 가르쳐 주시지요.

유인촌 처음에 주저하시던 분들도 일단 제가 말문을 열도록 이끌어 내고 나면 저는 별로 말을 많이 안 해요. 그저 그분의 이야기에 열중해서 듣다 보면 제 스스로 궁금한 것이 생겨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건 대본에도 없는 거지요.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의 눈을 정확하게 맞추면서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지요.

조용연 바쁜 시간에도 틈을 내 인터뷰에 응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파리에서의 활동도 기대하겠습니다.

유인촌  아닙니다. 여주신문이 지역신문으로서 지역의 등불 같은 존재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여주를 방문하고 싶습니다. 여주시민 여러분께도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립니다.

유 전 장관은 일주일간에 걸친 국토 자전거 종주에도 여전히 대화에는 힘이 넘쳤고, 건강미가 뿜어져 나왔다. 오는 10월부터 1년간 프랑스 파리시 정부 초청으로 떠난다. 주로 화가들이 대종을 이루었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공연예술 분야의 대가로는 첫 초대다.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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