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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33. 지혜와 밝음
장주식 작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399년)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전해진 격언이라고도 하고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진 글귀라고도 합니다. 델포이는 그리스에서 세계의 중심, 우주의 배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즐긴 철학자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무지(無知)를 깨닫는 쾌감을 얻는 것이죠. 이를 산파술이라고도 하는데요. 산파는 아기 낳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마치 산파처럼 한 사람이 자신의 무지한 영혼을 깨닫게 도와주는 철학자라는 뜻으로 ‘산파술’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기’를 ‘영혼’으로 대체한 셈이죠.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를 풀이하면 ‘네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라.’ ‘너의 무지를 자각하라’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공자(기원전 551년-479년)도 제자 자로에게 ‘네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그러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과 같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밀이 있죠. 개구리는 우물 속에서 바라보는 동그란 하늘만이 하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물 밖에 수많은 하늘 모양이 존재하는 것을 모릅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 수많은 하늘 모양을 모르지만 그것이 자신의 무지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물 안 개구리는 자신만만하게 우물 속에서 바라본 하늘만 하늘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나는 최소한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고 말이죠. 자신의 무지를 자각할 때 새로운 앎이 시작 될 수 있다는 뜻이겠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려면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앞서야 합니다. 노자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남을 아는 건 ‘지혜롭다’ 하지만 나를 아는 건 ‘밝다’고 한다.”

지혜롭다는 건 지식이 많을 뿐 아니라 그 지식들을 연결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밝다는 건 아마도 지혜를 넘어선 경지를 말하는 듯합니다. 노자의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지혜보다 밝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거든요. 우리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아주 좋지만 ‘밝은 사람’이라고 하면 더 높은 경지이니까요.

이처럼 노자도 자신을 아는 것을 매우 어렵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욕망, 희망, 소질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 이것이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상 대화에서도 그렇고 가정 문제도 그렇고 사회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무지를 모르고 내가 아는 것만을 전부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신념화 했을 때 대화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을 놓고 말이 많습니다. 연동형비례제로 바꾸자는 것인데요, 격렬한 대치가 벌어집니다. 그런 국회상황을 바라보면서 ‘비례제’는 나라를 망치는 길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에게 비례제의 장점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그냥 나쁜 제도라는 것이죠. 그런데 ‘현재 지구상 여러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비례제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건 알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시더군요.

나의 무지를 자각하는 길은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일까?’하고 회의해 보는 생각을 할 때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자 도덕경 33장 : 知人者智(지인자지)라면 自知者明(자지자명)이라.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하고 自勝者强(자승자강)이라. 知足者富(지족자부)라면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라. 不失其所者久(불실기소자구)하고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이니라.>

남을 아는 사람이 지혜롭다면 자기를 아는 사람은 밝다고 한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다 하고 자기를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고 한다. 만족을 아는 사람이 여유롭다면 충분한데도 더욱 강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뜻있는 이라 한다. 어떤 마땅함을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고 죽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수를 누린다’고 한다.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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