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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32. 고르게 행복
장주식 작가

균(均)이란 글자는 참 오묘합니다. ‘고르다’는 뜻이 대표인데요, 원래 울퉁불퉁한 땅을 다듬어 평평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평평하게 다듬은 뒤 씨앗을 뿌리면 열매를 얻을 수 있지요. 얻은 열매를 고르게 나눠 가지면 그게 ‘균등’이 됩니다.

공자는 ‘고르게 나눠 가지면 가난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고르게 나눠 가지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강력한 법을 만들어 강제로 나누게 하면 될까요? 그런데 노자는 강력한 법을 만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고르게 나누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하늘이 감로수를 내려주고 땅이 받아서 식물을 성장시키듯, 골짜기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듯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노자는 통나무처럼 소박하다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통나무처럼 소박한 도를 사람들이 지닐 수만 있다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 조건이 있었군요. 통나무처럼 소박함을 지닌다는 것이 말이야 쉽지 어디 태도나 실천으로 나오기도 쉽습니까?

기본소득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주장해 왔지만 과연 언제 실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제도입니다. 세상에 주어진 자연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재산이므로 자연 속에서 생산된 것도 골고루 나눠가져야 한다는 생각 바탕에서 기본소득제는 탄생합니다.

아무런 요구조건 없이 모든 개인에게 현금으로 일정 금액을 매달 지급하는 것이 기본소득입니다. 보통 일인당 국민소득의 25%선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은 일인당 소득이 3만 달러이니 그 25%면 7500달러입니다. 7500달러를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625달러고요, 한화로 환산하면 625,000원이 됩니다. 4인 가족이라면 한달에 250만원을 현금으로 받게 됩니다. 아무 조건도 없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으로 말이죠.

꿈같은 얘기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건 이미 현실입니다. 보편적인 아동수당, 기초연금 같은 것들은 기본소득 중 한 부분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경제총량으로 따지면 이 정도 기본소득제는 충분히 운용하고도 남습니다. 문제는 찬성보다 반대가 훨씬 많다는 것이죠.

우선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은 사용자일겁니다. 무노동에 무임금이지, 어떻게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돈을 주느냐 하는 거죠. 다른 사람 노동에 의존해 살아가는 불공정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주장에 항변할 논리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노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하루 종일 놀기만 해도 그것을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무노동이라도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아주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바로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재산을 조사해서 조건부로 지급하는 최저생계비는 수급자를 무노동으로 내모는 단점이 있습니다. 노동을 해서 수입이 생기면 정부로부터 받는 생계비가 끊어지기 때문이죠. 이것을 ‘노동함정’이라고 하는데요. 계속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일부러 노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물론 노동할 의사가 있어도 말입니다.

기본소득은 노동자가 새로운 수입이 있어도 그 위에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돈이기 때문에 훨씬 노동자를 자유롭게 합니다. 적은 임금을 받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물론 기본소득은 세세하고 친절한 법 조항들을 만들어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 의식입니다. 세상만물은 다 공동체의 공유재산이라는 의식 말입니다. 세상이 처음 생겨났을 때 어디 경계가 지어지고 이건 내 거, 저건 네 거라는 소유의식이 있었겠습니까. 경계 짓고 이름 지어 구별하고 소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기본소득 같은 것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지금처럼 세상 불평등이 심화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알고도 멈추지 않는다면 노자 말대로 ‘위태로울’ 뿐입니다.

<노자 도덕경 32장 : 道常無名(도상무명)하니 樸雖小(박수소)이나 天下莫能臣也(천하막능신야)라. 侯王若能守之(후왕약능수지)면 萬物將自賓(만물장자빈)하리니 天地相合(천지상합)하여以降甘露(이강감로)하며 民莫之令而自均(민막지령이자균)하리라. 始制有名(시제유명)하며 名亦旣有(명역기유)하리니 夫亦將知止(부역장지지)하라. 知止可以不殆(지지가이불태)는 譬道之在天下(비도지재천하)에 猶川谷之於江海(유천곡지어강해)로다.>

도는 늘 이름이 없어 통나무처럼 소박하지만 세상 누구도 도를 거느릴 수 없다. 임금 된 자가 만약 통나무 같은 도를 지킬 수 있다면 세상만물이 다 손님처럼 찾아들 것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합하여 단 이슬을 내리며 사람들은 강제로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고르게 평화로울 것이다.

통제하기 시작하면 이름이 생기고 이름이 있으면 규정이 있게 되어 혼란 또한 생겨난다. 규정이 달라 다툼이 일어나면 이름 짓기를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멈출 줄을 알아야 위태롭지 않으리라. 비유하자면 도가 세상에 나타날 때 골짜기 물이 강과 바다로 흐르는 것처럼 해야 한다. (자연스럽지 않은 규정 곧 이름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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