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각나눔터 칼럼
어찌하여 헛된 일을 꾸미는가?
이동순목사 천송교회 여주 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벌레의 시각’이 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는 현세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다음은 ‘말(馬)의 시각’이 있다. 말의 두 눈은 머리의 양옆에 달려있어서 앞쪽보다는 가장자리의 초점이 더욱 명확하다. 정작 자신의 앞은 제대로 못 본다고 한다. 비본질적인 것에만 밝지 본질적인 것에는 어두운 시각이다. 끝으로 ‘개구리의 시각’이 있다. 개구리는 모든 사물을 흑백으로만 본다. 다양하게, 깊게 보지 못하고 단지 흑(黑)과 백(白)으로만 보는 이분법적(二分法的)인 시각이다.

한 국가나 사회나 개인들은 이와 같은 근시안적(近視眼的)이고, 비본질적(非本質的)이고, 이분법적(二分法的)인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 이런 좋지 않은 시각 때문에 우리의 삶도, 관계도, 사회도 힘들어진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는 그의 책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하이 컨셉’(High Concept)이란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는 요즈음 많이 회자되는 ‘융합의 능력’, ‘전체를 조망하는 통찰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넓고 크게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을 뜻한다. 시각의 변화가 현재의 문제도, 미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성경 시편 2:1~4에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세상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 ‘누가 이 세상을 통치하느냐?’를 똑바로 보고 알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무조건 신봉하는 차원의 신(神)이 아니라 공의(公義)를 세상에 실현하는 존재이다. 불의한 사람이 교회에서 예배를 거룩하게 드린다고 그 예배를 열납하는 신(神)이 아니다. 여기서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란 그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주체를 의미한다. 세상의 권력을 잡은 자인 군왕(君王)들과 그 관원(官員)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헛된 일’을 꾸미게 된 것이다(1,2).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3) 세상의 군왕들과 그 관원들에게 하나님은 구속하는 쇠사슬이고, 얽어매는 오랏줄이었다. 자신들을 압제하는 폭군이고, 방해물이었다.

어쨌든 러시아의 문호 토스토옙스키는 이와 같은 인간의 어리석은 태도에 엄중한 경고(警告)를 했다. ‘인간은 하나님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 

독일, 이탈리아는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 권력을 잡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은 하나님이 부담스러워서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헛된 일을 꾸미는 시나리오를 썼다. 

내 위에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인간의 불의한 권력욕이다. 그것이 세계 1차, 2차 대전이었다.

지금 여주에서는 4대강 보에 대한 해체냐, 반대냐 하는 논란으로 매우 소란하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창조질서의 보존이란 측면에서 재자연화가 정답이다. 현실적으로 접근하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후손들이 살아갈 먼 미래를 바라보며 그 맑은 강가에서 물장구치고 물고기와 조개를 잡고 즐겁게 놀았던 그 아름다운 추억을 유산으로 물려줄 사명이 있다. 

자연은 스스로 정화하고 스스로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래서 자연(自然)이다. 강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다만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시간을 두고 합리적으로 수순을 밟아가야 할 것이다. 

단순한 흑백논리로 해체나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특히 정쟁(政爭)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더욱 안 된다. 우리는 다 여주시민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주시의회 행정감사를 보면서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한 시의원은 여주시장에게 장시간 보 해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다그쳤다. 여주에 있는 보가 시장 한 사람의 것인가? 현 시장이 4대강 사업을 생명을 걸고 반대한 환경운동가 출신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모습에서 아연실색했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보았다.  

아는 것의 80%가 보는 것에 달렸다고 한다. 

그러니 아는 것과 보는 것은 거의 같은 의미다. 

영어로 ‘알아요’를 ‘I see’라고 말한다. 보고 있으니까 잘 안다는 뜻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꿀 때 인간이 사는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진다. 

‘눈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는 현세적(現世的)이고 근시안적(近視眼的)인 눈을 더 멀리, 더 높이, 영원한 것까지 볼 수 있는 눈으로, 비본질적인 것만 보는 눈을 본질적인 것을 볼 수 있는 눈으로,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으로만 보는 편협한 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으로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대적(大敵)하는 헛된 일을 꾸미지 않게 된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4)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