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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7.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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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말 타니 견마 잡히고 싶다

장주식 작가

견마(牽馬)는 말을 끌어당긴다는 뜻입니다. 말을 끌어당기려면 말고삐를 쥐어야겠지요. 그래서 ‘견마잡이’라는 말이 생깁니다. 견마를 잡는다는 말은 말 탄 사람을 위해 말고삐를 잡아 준다는 뜻이지요. 조선시대엔 주로 양반이 말을 타고 하인이 견마잡이였죠. 견마는 순우리말로는 ‘경마’라고 합니다.

신분 높고 돈 많은 양반은 스스로 말고삐도 잡지 않고 거드름을 피웠다는 겁니다. 신분이 낮고 가난한 사람들은 견마를 잡혀 말을 타고 가는 양반이 얼마나 부러웠을까요. 그러니 어찌어찌해서 말을 타게 되면 당연히 견마도 잡히고 싶겠습니다.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고난 성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노자는 이를 경계합니다. 그렇게 하다간 ‘일찍 죽어버린다’고 무섭게 말합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부도(不道)라는 겁니다. 부도는 노자에 따르면 ‘아주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말합니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은 것을 저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으로 봤는데 노자는 아니라고 하는 군요. 왜 그럴까요?

아마도 노자는 인간들이 만들어 온 문명을 그렇게 보는 듯 합니다. 문명이 신분을 나누고 빈부를 나누고 사회계층을 고착화시키는 등 아주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이죠.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겨나고 생물이 생겨나고 차차 인간이 생겨났을 때 과연 누구는 말을 타고 누구는 견마를 잡고 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모든 제도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문화라고 봐야 맞을 겁니다.

‘득롱망촉(得隴望蜀)’이란 말이 있습니다. ‘농을 얻으니 촉도 바란다’는 뜻입니다. 중국 후한의 광무제가 농서(隴西)를 점령한 뒤 곧바로 서촉(西蜀)도 허물라는 명령을 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명령서에 광무제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 걸 미워한다지만, 이제 농을 얻게 되니 촉을 바라게 되는구나.(人苦不知足, 旣平隴復望蜀)’

 

농땅은 서쪽에 있고 촉땅은 더 서쪽에 있지요. 그러니 서쪽으로 자꾸만 영토를 넓히려는 욕망을 잘 보여주는 명령서입니다. 광무제 자신도 끝없는 탐욕을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어찌 멈출 수 있겠습니까. 눈앞에 드넓은 영토와 백성과 물산이 보이는데요. 더구나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결국 광무제는 서촉까지 다 점령하게 됩니다.

그런데 후한은 오래갑니다. 광무제가 서촉까지 점령하게 된 것은 ‘부득이’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당시 농땅의 외효와 서촉의 공손술은 광무제와 천하를 다투는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빨리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하게 밀어붙일 필요도 있으니까요. 전쟁이 길어지면 죽어나는 건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빠른 전쟁종식은 필요악이기도 합니다. 광무제는 필요악인 부분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좀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천하를 통일하긴 했지만 곧 진나라는 무너지고 또다시 천하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니까요. 이 부분은 노자에 따르면 성과를 내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더! 더! 하면서 강제로 취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득이해서 취하는 게 아니라 강제로 취하게 되면 수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현대 상업자본이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본을 무한증식하기 위해 강제로 밀어붙이고 있으니까요. 온갖 부자연스러운 방식을 동원해 자본을 증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증식된 자본이 오래갈 리가 없습니다. 진나라가 5년 만에 무너지듯 짧은 기간에 붕괴하고 말텐데요, 심각한 건 자본증식 주체만 망하는 게 아니라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망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나라니 경제니 큰일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성과물에 있어서도 우리는 ‘부득이’해서라는 말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못해서 어떤 결과물을 받아들일 때, 멈출 수 있는 힘도 당연히 같이 마련 될 수 있으니까요.

 

 

<노자도덕경 30장 : 以道佐人主者(이도좌인주자)는 不以兵强天下(불이병강천하)하니 其事好還(기사호환)이라. 師之所處(사지소처)는 荊棘生焉(형극생언)하고 大軍之後(대군지후)는 必有凶年(필유흉년)이라. 善有果而已(선유과이이)요 不敢以取强(불감이취강)이니 果而勿矜(과이물긍)하며 果而勿伐(과이물벌)하며 果而勿驕(과이물교)하며 果而不得已(과이불득이)이므로 果而勿强(과이물강)이라. 物壯則老(물장즉로)는 是謂不道(시위불도)이기에 不道早已(불도조이)하니라. >

자연을 본받은 도를 가지고 임금을 돕는 사람은 세상을 무기로 억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되갚음 당하기 좋기 때문이다. 군사가 머문 곳은 가시덤불이 자라고 대군이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온다. 군사를 잘 부리는 사람은 목적한 결과가 있으면 그뿐, 점점 더 얻어서 강해지려 하지 않는다. 성과 있어도 우쭐대지 않고 성과 있다고 자랑하지 않고 성과 있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그 결과는 어쩔 수 없이 가져 온 것이므로 성과를 억지로 내려함이 아니다. 만물은 지나치게 성하면 곧 노쇠해지니 이를 일러 ‘부도(不道)’ 곧 자연스러운 도가 아니라 한다. 부도면 일찍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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