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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양평 정의당의 출범을 앞두고

여주 양평 정의당의 출범을 앞두고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6.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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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필 여주양평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6월 22일 여주시와 양평군의 정의당 통합출범식이 진행된다. 이미 정의당 창당을 통해 3년여의 지역 활동을 해 왔던 양평과 다르게 여주는 당 활동을 하기에 힘이 부쳐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회에 여주와 양평이 힘을 모아 진보의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활동과 진보적 지방권력 획득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가려고 한다.

돌이켜보니, 여주의 진보정당운동의 역사도 그리 짧지만은 않다. 경기도의 끝자락인 여주였지만, 1992년 민중후보 백기완 선거운동본부가 꾸려져 활동했고, 1995년 초대 기초의원선거에 지금은 고인이 된 김남준 선배가 민중정치연합의 대표로 출마 했었다. 어렴풋이 여주초등학교 운동장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선거운동방식이지만 당시엔 모든 후보가 모인 공동연설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기존 토호세력의 권력독점을 비판하고, 환경과 문화와 복지, 노동의 존중을 통해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그의 주장은 신선하고 또 힘이 넘쳤다. 비록 낙선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실패의 좌절 보다는 그 에너지를 통해 여주 변화중심에 진보적 의제가 자리 잡는 시작점이 되었다. 노동상담소 활동을 통한 노동 존중, 여주민예총과 환경운동연합 창립을 통해 시민사회의 성장을 이끌었고 그 시기 여주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김남준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과 맞서 두려움 없던 그도 결국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진보정치의 염원만을 남긴 채 마석 민주화 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이후 맥이 끊길 것 같던 진보정치활동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복지확대를 통한 평등을 꿈꾸는 민주노동과 함께 등장 하였다. 그리고 여주민주노동당의 창당은 한미FTA 반대와, 카드수수료 인하운동 그리고 여주의 노동운동 세력과 연대하며 진보정치 진출을 위해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성정치의 벽은 높았고 진보정치의 실력은 충분치 않았다. 결국 또 다시 낙선의 결과를 받아야만 했다. 설상가상 진보정당의 기반이 되었던 여주의 노동운동마저 쇠퇴하는 상황 속에서, 패배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민주노동당은 해산했다.

그리고 진보신당과 노동당, 정의당으로 근근한 호흡만을 유지하던 여주 진보정치가 ‘더불어 사는 평등세상’을 꿈꾸며 다시금 새 출발을 한다. 여주 양평정의당은 극단적 빈부의 격차와, 남한강의 환경보존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보 해체 반대’ 논란을 통해 세력화하려는 기득권 세력과 대범한 맞섬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성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지급 조례안 통과와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등과 같은 보편적 복지의 실현에는 힘을 실어 주는 동반의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진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정의당원의 자질을 갖춰야 하고, 여주의 크고 작은 현안에 진보적 입장을 신속하게 제시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실력도 키워야 한다. 여주시 예산을 시의회의 몫으로만 맡기지 말고, 시민과 함께 예산을 감사하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우선해서 아픔이 있고 소외가 있는 곳에서 위로가 되고 연대하는 진보정치의 풍토를 다시 세워야 한다.

여러 부침 속에서도 정의당을 통한 진보정치의 막이 올랐다. 여주시민의 지지와 인정 속에서 차근하게 지역정치의 지평을 넓히고, 끝내는 진보적 의제로 지역정치를 실현 하는 그날까지 긴 호흡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성으로 비관할지라도 의지로 낙관하고 그리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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