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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6.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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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착하지 않음은 착함의 바탕이 된다

장주식 작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이토는 일본에서는 근대화 영웅으로 추앙을 받습니다. 일본 메이지 헌법 초안을 마련했고 상하원 양원제 의회를 확립한 인물이죠. 조슈번 하기라는 아주 작은 고을에서 자란 이토는 22살에 영국유학을 하고 미국, 유럽 사찰단에서도 활약합니다.

사무라이계급이 아니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는 막부시대에 이토는 농민인 하야시 주조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본명은 하야시 도시스케입니다. 아버지가 하기의 하급무사인 이토 집안 양자가 되면서 하야시 도시스케도 드디어 사무라이가 됩니다. 비록 하급 무사이지만 이토라는 사무라이계급 성을 얻게 된 것이죠.

상급무사가 아니면 요직을 차지할 수 없는 당시 일본에서 이토는 여러 가지 행운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신분을 뛰어넘어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이죠. 천황제 국가 헌법을 제정하고 내각책임제를 만들어 초대내각총리대신에 오릅니다. 이후 이토는 네 번이나 총리대신을 맡아서 정국을 주도합니다.

이토는 외교에서 더욱 큰 재능을 발휘하죠.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영국인의 치외법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을 성공합니다. 이후 일본은 다른 서구열강들과도 그런 조약을 체결하는 발판이 되죠. 외국인들도 모두 일본법에 지배를 받게 만든 것입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뛰어난 외교가로 칭송 받을 만합니다.

또한 이토는 청나라와 러시아를 몰아내고 조선을 병탄하는 길도 마련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조선 초대 통감으로 옵니다. 고문을 인정하는 경찰제도 신설, 친일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학교제도 설치, 조선 지하자원 수탈을 위한 도로망 확충 등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합니다. 법령제정권, 고등관리 임명권을 통감부가 가져가고, 신문법, 보안법을 제정해 언론, 결사의 자유를 빼앗습니다. 마침내 군대해산령까지 내려서 조선 정부가 가진 내정권, 외교권, 군권을 모두 가져갑니다. 이때부터 조선은 항일의병운동이 격화되지만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참담하게 패배합니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는 만주 사찰을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합니다. 기차에서 내리던 이토는 조선 청년 안중근이 쏜 총을 맞고 죽습니다. 당시 이토는 69세였습니다. 안중근은 히로부미가 ‘동양평화를 해치는 자’라며 15가지 죄를 얘기합니다. 그 중에 고종황제 강제 퇴위, 명성황후 시해, 대한제국 정권 찬탈 등도 들어 있지요.

일본에서는 동상을 세워 영웅으로 기리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조선식민지를 주도한 원수로 미워합니다. 자, 이토 히로부미는 불선인(不善人)일까요? 선인(善人)일까요? 판단이 쉽지 않죠? 입지전적인 모델로 한 세대를 풍미한 인물. 그러나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 기틀을 닦았고 제국주의적인 침탈로 주변국가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노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선인은 불선인의 스승이지만 불선인은 선인의 바탕이다.”

불선인 곧 ‘착하지 않은 사람’은 선인 곧 ‘착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는 거죠. 스승 삼는다는 건 배우고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역으로 불선인은 자신이 스승으로 삼는 선인의 바탕이 된다고 합니다. 아리송한데요, 여기에 바로 오묘한 진리가 들어있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바탕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혜롭다 하더라도 크게 혼란스러워 지리라.”

불선인이 선인을 귀하게 여기고 선인 또한 불선인을 사랑하고 아껴야 된다는 겁니다. 선인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불선인이 지닌 요소를 품고 있다는 거죠. 불선인은 물론 선인을 본받으면 불선인에서 벗어날 수 있고요. 결국 불선인과 선인은 한 몸인데 밖으로 표상되는 모습에서 달라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남을 아는 건 ‘지혜’이지만 나를 아는 건 ‘밝음’이라 했습니다. 나를 아는 것이 더욱 어렵습니다. 내 안에 꿈틀대는 ‘불선인’으로서 다양한 욕구들을 내가 밝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밝게 파악하고 불선인으로서 표상될 것들을 절제하고 다스릴 수 있을 까요? 절제도 쉽지 않지만 우선 내 욕구와 욕망을 먼저 밝게 파악하는 것이 먼저일 듯 합니다. 이를 노자는 ‘습명(襲明)’이라고 합니다. 습명이 된 뒤에야 자연의 도가 지닌 오묘함을 어렴풋이 아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노자 도덕경 27장 : 善行無轍迹(선행무철적)하며 善言無瑕謫(선언무하적)하며 善數不用籌策(선수불용주책)하며 善閉無關楗而不可開(선폐무관건이불가개)하며 善結無繩約而不可解(선결무승약이불가해)하니라. 是以(시이)로 聖人(성인)은 常善求人(상선구인)하여 故無棄人(고무기인)하며 常善救物(상선구물)하여 故無棄物(고무기물)하니 是謂襲明(시위습명)이라. 故善人者(고선인자)는 不善人之師(불선인지사)요 不善人者(불선인자)는 善人之資(선인지자)하니 不貴其師(불귀기사)하고 不愛其資(불애기자)하면 雖智(수지)라도 大迷(대미)하니 是謂(시위)를 要妙(요묘)라 하니라.>

잘 걷는 길은 흔적(뒤탈)이 남지 않고 잘하는 말은 흠 잡히는 꾸지람이 없고 잘하는 셈은 계산기가 필요 없으며 잘 닫은 문은 자물쇠나 빗장 없어도 열리지 않으며 잘 지은 매듭은 줄로 묶지 않아도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늘 사람을 잘 구하여 버리는 사람이 없고 늘 사물을 잘 구제하여 버려지는 물건이 없으니 이를 ‘밝음을 이음’이라 한다. 그리하여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 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바탕이 된다.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바탕을 사랑하지 않으면 비록 지혜롭다하더라도 크게 헤매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도리(자연의 도)가 가진 오묘함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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