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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6.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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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식량을 싣고 다니는 무거운 짐수레를 떠나지 않으리

장주식 작

어느 중년 부부가 몹시 다투고 있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만원이면 될 걸, 십만 원 백만 원 들게 할 거야?”

“괜찮다니까 그래.”

남편 대답이 아내 속에 더 불을 지릅니다.

“냄새가 나는데 뭐가 괜찮아. 벌써 다 썩은 거 아냐?”

치아 얘기입니다. 이가 상해서 구취가 나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 견디기 힘든 건 사실입니다. 아내가 빨리 치과에 가서 치료하라고 다그치지만 남편은 차일피일 미뤄온 것이죠. 남편은 치과에 가는 일이 정말 싫습니다. 찌이잉! 기계로 이를 가는 소리는 몸에 전율이 올 정도이니까요.

“양치 잘 하고 불소 가글 하니까 아프지도 않아.”

남편이 자꾸 버티니까 마침내 아내가 소리 지릅니다.

“날 위해서 병원 가라고! 당신 자꾸 그러면 날 사랑하지 않는 걸로 알겠어.”

남편이 흠칫, 대답을 못합니다. 아내가 보낸 경고는 꽤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편이 자기 몸을 스스로 잘 돌보지 않는 건, 결국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 논리.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노자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몸을 천하보다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내 한 몸이 천하보다 무겁다는 뜻이 됩니다. 무겁다는 말은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죠. 내가 나를 무겁고 귀하게 여길 때 자연스럽게 남도 무겁고 귀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예화에 등장한 아내가 한 말이 정확하게 그 부분을 짚고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 치아를 돌보는 일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야!’

남편이 자기 몸을 귀하게 여겨 잘 돌보는 일이 곧 아내를 사랑하는 일이며 나아가 가족을 무겁게 여기는 일이며 더 나아가 이웃을, 세상을 귀하게 여기는 일과 연결됩니다. 그러니 노자가 내 몸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긴다고 한 말은 ‘반어적 강조’에 해당하겠군요.

도에 통달한 사람을 노자는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성인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식량 실은 무거운 짐수레를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식량 실은 무거운 수레를 치중(輜重)이라고 합니다. 성인은 늘 치중과 함께 다닌다는 것이죠. 밥은 인간의 몸이 생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치중과 함께 한다는 건 바로 내 몸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죠.

화려한 경관에 눈이 팔려 치중을 버리는 일은, 뿌리를 잃고 가지나 잎이나 꽃을 쫓아다니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뿌리가 마르면 잎이 어찌 녹색을 머금을 것이며 꽃이 어찌 화려한 빛깔을 낼 수 있을 까요.

뿌리를 지키는 일은 또한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초연하고 의연한 태도로 느긋해야 합니다. 그래야 뿌리는 무겁게 자리를 잡아 튼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도 조급하면 결국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다 말 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내 말을 천천히 하면 됩니다. 그래야 대화가 성립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 잘 전달됩니다. 바로 내 말을 무겁고 귀하게 여기는 일이 되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상대방 말도 귀하고 무거운 대접을 받게 됩니다.

<노자도덕경 26장 : 重爲輕根(중위경근)이요 靜爲躁君(정위조군)이라. 是以聖人終日行(시이성인종일행)에 不離輜重(불리치중)하여 雖有榮觀(수유영관)이라도 燕處超然(연처초연)하니라. 柰何萬乘之主(내하만승지주)가 而以身輕天下(이이신경천하)이리오. 輕則失本(경즉실본)이요躁則失君(조즉실군)이라.>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며 고요함은 조급함의 주인이 된다. 그리하여 성인은 온 종일 길을 가도 무거운 짐수레를 떠나지 않아서 비록 화려한 볼 것이 있어도 한가롭고 초연하다. 어찌 일만 수레의 주인(만승 : 천자)이 자기 몸을 천하보다 가볍게 여기리오. 가벼우면 뿌리를 잃고 조급하면 중심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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