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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25. 적요, 도법자연이라.
장주식 작가

적요(寂寥)는 ‘고요하고 쓸쓸하다’고 뜻을 새길 수 있습니다. 소리 하나 없는 묵묵함이 적(寂)이고 요(寥)는 형체가 없이 텅 빈 상태입니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절대고요, 절대공허! 바로 이 적요가 ‘도’의 모습이라고 노자는 말합니다. 물론 ‘도’라는 이름도 진짜 이름은 아니라고 덧붙이지요.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시인들도 사랑해 마지않는 시인들의 시인, 백석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애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라는 말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노자는 세상에 ‘큰’ 것이 네 개 있다고 하는데, 도와 하늘과 땅과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은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연결하지요.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자연 속에 도가 있고 도 속에 하늘이 있고 하늘 속에 땅이 있고 땅 속에 사람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쓸쓸하면서 높고 사랑하면서 슬프다’는 백석의 말도 노자가 한 말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도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다 큰데, 크면 나아가고 나아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돌아온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떠나고, 멀어지고, 되돌아오는’ 이 ‘서원반(逝遠反)’은 쓸쓸함 속에 높고 위대함이 있으며 사랑 속에 슬픔이 있다는 모순성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네 삶 역시 그렇지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얘기를 잠깐 해 보겠습니다.

<1907년 7월 6일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 발이 휘어 다리를 절었다. 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은 ‘목발의 프리다’라 불렀고 오른발을 감추기 위해 프리다는 늘 긴 치마를 입고 다녔다. 18세에 프리다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했다. 금속 막대가 프리다의 몸을 관통했고 폭발한 버스 파편이 온몸에 박혔다. 프리다가 치료를 받고 목숨을 구하는데 2년이 걸렸다.>

프리다 칼로는 고통스런 병원생활을 견디기 위해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47세로 죽을 때까지 프리다는 화가의 삶을 살아갑니다. 지독한 슬픔과 고통 속에 그림을 사랑하게 되는 삶이 들어 있었던 것이죠. 버스사고 이후 끊임없는 수술과 재수술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았지만, 관능적이고 개성 있는 자화상을 창조한 프리다 칼로는 ‘쓸쓸하지만 높은’ 세계를 보여줍니다.

또 한 사람을 봅시다.

<1972년 6월 8일 베트남전쟁 중. 9살인 킴푹은 공습을 피해 숨어 있던 사원에서 네이팜탄 공격을 받았다. 불길은 킴푹의 옷에 옮겨 붙었고 킴푹은 재빨리 옷을 벗어던졌지만 온몸이 화상을 입고 말았다. 온몸 30%에 3도 화상을 입은 킴푹은 여러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으며 일 년 넘게 병원 생활을 했다. 현재 킴푹은 유네스코 평화문화친선대사로 활동한다.>

AP통신의 사진기자 후잉 콩 우트가 찍은 벌거벗고 울부짖는 소녀 사진으로 유명한 주인공이 바로 킴푹입니다. 킴푹은 지옥 같은 수술을 견뎌내며 살아났지만,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킴푹이 보여준 낙천성은 네이팜탄을 쏜 헬기조종사가 눈물로 용서를 비는 기회를 갖게 했습니다.

‘하늘이 사람을 세상에 낼 때엔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는 백석 시인 말이 킴푹의 삶을 통해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적요, 도법자연’의 세계가 아닐까요.

<노자 도덕경 25장 : 有物混成(유물혼성)은 先天地生(선천지생)이라. 寂兮寥兮(적혜요혜)여!

獨立不改(독립불개)하며 周行而不殆(주행이불태)하니 可以爲天下母(가이위천하모)라. 吾不知其名(오불지기명)하여 字之曰道(자지왈도)한데 强爲之名曰大(강위지명왈대)라. 大曰逝(대왈서)요 逝曰遠(서왈원)이요 遠曰反(원왈반)반이라. 故道大(고도대)하고 天大(천대)하고 地大(지대)하고 王亦大(왕역대)하니 域中有四大(역중유사대)한데 而王居其一焉(이왕거기일언)이라. 人法地(인법지)하고 地法天(지법천)하고 天法道(천법도)하고 道法自然(도법자연)하니라.>

마구 뒤섞여 이루어진 어떤 물건이 있으니, 하늘과 땅보다도 먼저 생겨났다. 소리도 없이 고요하고 모습도 없이 쓸쓸하니 텅 비었구나! 홀로 서서 변하지 않으며 두루 돌아다녀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어머니라 할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몰라 이름 비슷하게 ‘도’라 부르는데 억지로 이름 뜻을 새겨보자면 ‘크다’고 하겠다. 크면 나아가고 나아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도는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인간의 왕 역시 크다. 세상에 네 가지 큰 것이 있으니 인간의 왕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은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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