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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을 위한 자본의 이동이 당연하다면, 생존을 위한 이주노동도 당연한 것이다.

이윤을 위한 자본의 이동이 당연하다면, 생존을 위한 이주노동도 당연한 것이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5.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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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필 여주이주민지원센터

오랜만에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티무르에게서 전화가 왔다.

19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법조인을 꿈꾸던 법학도는 소년가장이 되어 낯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10여년을 보냈다. 유달리 명석했던 친구라서 누구보다 빠르게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사회의 정치와 경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과정에 부러움을 갖기도 했고, 이주민지원센터의 우즈베키스탄 다문화강사가 되어 자국 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본국으로 귀환하고, 결혼한 뒤에도 시시콜콜한 소식들을 전해오던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들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 시 한국어 통역사로 선정되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외교부장관회의에 통역을 담당했다고 한다. 강경화 장관에게 ‘어쩌면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느냐’는 칭찬도 들었다고 했다.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강경화장관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했던 사진들도 보내왔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면서 가족을 책임졌고, 이주노동과정에서 익힌 한국어 실력으로 본국에서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며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이제 본인의 꿈을 찾고 싶다고 했다. 이주 노동자로 일했던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정치 외교학을 배우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멋진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의 멋진 꿈에 덩달아 흥분하며, 각 대학과 관련한 유학정보를 찾아 보내줬다. 들여다보면 그가 꾸는 바른 정치에는 한국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국민의 힘이 사회변화를 이끄는 역동성, 한국의 현대사에서 시민의 힘이 주체가 되는 것을 직접 목도하며 부러움을 갖게 되었고 이는 배움의 욕구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다. 세계화라는 정의가 거창한 국가적 관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개개인의 삶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사상이 교차되고 이를 통해 긍정적 변화가 시작된다면 이 또한 작은 세계화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티무르의 예처럼 타국에서의 경험이 개인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결국은 그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세계화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은 주로 부정적 이슈로 등장한다. 최근 이주노동자로 인한 국부유출논란도 마찬가지다. 내용을 살펴보면 최저임금의 상승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 증가했고 이 때문에 국부가 유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이주노동의 댓가는 수출지향의 나라에서 수출상품을 만드는 동력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 산업현장의 현실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이미 일국의 경제는 세계경제의 영향을 받고 밀접한 관계로 움직인 지 오래다. 다국적기업의 자본이동에 국경은 없고, 삼성이나 현대 같은 우리 기업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있지만 이를 탓하는 여론은 매우 드물다. 기업은 자본의 이동과 값싼 노동력을 통해 이윤을 얻고 그 이윤을 통해 국가경제가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을 짓자면, 자본의 이동을 통한 이윤추구에는 환호하면서 이주노동은 마치 우리경제에 기생하는 존재로 규정해서는 우리 산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발전방안을 구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임금은 수출로 지탱하는 우리사회에서 수출상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이윤을 공유하는 동반자적 관계에 대한 증표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윤추구를 위한 자본의 이동이 당연하다면 생존을 위한 노동의 이동 역시 당연한 것이다. 이주노동의 긍정적 결과는 외면한 채 부정적 이유만 부각하고, 동반자적 관계를 부정한 채 국부유출로 매도하는 것은 제노포비아(이주민혐오)의 다른 이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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