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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사회적 사명
이동순 목사(천송교회) 여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인간은 각기 떨어진 외로운 섬이 아니다.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더불어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이다. 인간의 사회성은 인간을 사회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회성의 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속에서 존재 의의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의에 넘치고 윤리성이 숨 쉬는 사회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께서도 그의 제자들이 이 사회 속에 살아갈 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을 기대하셨다. 속세(俗世)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 죄로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 사명(使命)을 다하라고 하셨다. 이것을 가리켜서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사명(social mission)” 이라고 한다.

구약성경 창세기 18장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 사회적 사명의 기대에 응답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패하여 하나님의 심판 의도를 알고 즉시 아브라함은 기도(祈禱)에 들어간다. 그는 지역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먼저 기도함으로 그 사회적 사명을 감당했다.

사도(師徒)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牧會)할 때 교회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을 권면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디모데전서 2장 1절~2절)

여기서 첫째로 권한다는 말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말한다. 왜 임금들과 높은 사람을 위해 먼저 기도하라는 것일까? 하나님도 높은 사람을 선호하시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법을 제정하고 법을 집행할 때 그들의 정책 결정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든 경건(敬虔)과 단정(端正)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목사가 예배 중 “여러분, 밤낮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이 시간은 지역사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은 여러분 절대로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하고 각 교인들에게 돌아가면서 릴레이 기도를 시켰다. 어떤 자매의 차례가 오자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은 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그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걱정 없이 살기를 원합니다. 부모님에게 사위가 필요하오니 좋은 사윗감을 주옵소서. 이 지역사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요즈음 출산율이 점점 줄어 미래가 불안합니다. 외지에서 인구가 유입되어 시민의 수도 증가되고 경제도 활성화되는 역동성 있는 도시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오니 저도 좋은 배우자 만나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내 중심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아브라함은 먼저 지역사회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심판행위의 근거는 의인(義人)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의인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모두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장 10절).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을까? 의(義)라는 개념이 아브라함을 통해 처음 나타난다. 그가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했을 때 의인이라고 인정했다. “하나님이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다(창세기 15장 6절). 그 시대의 의인들을 통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 진다.

정의로운 사회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다 피를 흘리며 사라졌다. 늦봄 고(故) 문익환 목사는 그들의 이름을 자주 외쳤다. 전태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아직도 정의롭고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래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면 기독교인들의 고귀한 피, 즉 희생이 필요하다. 나는 얼마나 정의에 목말라 하는 사람인가?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척도이다. 각 소속된 교회에서 행하는 봉사, 헌신, 헌금, 기도, 예배의 참여도가 아니다.

행복한 여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주는 아브라함과 같은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그 사회적 사명을 다하느냐에 달려있다.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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