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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큰 길을 잃으면 작은 지혜들이 판을 친다

18. 큰 길을 잃으면 작은 지혜들이 판을 친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4.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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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2019년 1월, 한국은행은 일인당국민소득(GNI)이 3만 1000달러를 상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한화로 약 3400만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일인당소득이니까 자녀가 한 명 있는 3명 가족이라면 가구소득이 1억200만원이 되어야 평균소득이 되는 것이죠. 4인가구라면 1억 3600만원 소득이 있어야 겨우 평균에 도달합니다. 이 평균에 도달하는 우리나라 가구는 약 35%정도라는 통계도 있고 20%가 안 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 방송국에서 취재를 했습니다. 과연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거든요. 대표적인 반응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거 우리나라 얘기에요? 3만 달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나는 힘들어 죽겠어요.”

“그 많은 돈이 다 어디 갔어요? 누구한테 있나요? 나는 왜 이렇게 돈이 없지?”

아주 드물게 이런 반응도 있습니다.

“일인당소득이 3만 달러 넘는 나라는 28개국이에요. 그 중에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나라는 7개국뿐입니다.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국민들은 별로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라가 부유해도 개인은 부유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아니 사실, 나라가 부유한 것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자가 부유한’ 것이죠. 수백억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은 대기업이나 부동산, 동산 할 것 없이 엄청난 부를 쌓아놓은 부자들 말입니다. 개인 거부들과 대기업 소유주들이 국민당일인소득 평균을 끌어올렸으니 개개인이 체감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일인당소득 3만 달러 중에 실질적인 가계소득은 2만 달러에 해당한다는 것이죠. 1만 달러는 기업 몫이니까요. 따라서 3인 가족이라면 6만 달러, 그러니까 약 6천만원정도 수입이라면 평균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약간 위안은 되지만 여전히 불만은 남습니다. 나보다 턱없이 소득이 높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소득불균형은 심리적으로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줍니다. 불평이 생기면 불안해지고 불안하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50위권 밖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노자에 따르면 우리가 ‘큰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큰 길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인의(仁義)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인’은 사랑입니다. 남을 나처럼 생각하는 마음이죠. 공감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배려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의’는 정의로움 또는 공정함 또는 올바름 등으로 해석합니다. 사랑과 정의! 참으로 가슴 뿌듯해지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과 정의를 부르짖는 까닭은 오히려 ‘큰 길’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거죠.

평생 인을 주장한 인물은 공자입니다. 여기에 ‘의’를 덧붙여 주장한 인물은 맹자입니다. 아마도 공자가 살았던 시대엔 ‘인’이 너무나 필요했고 맹자가 살았던 시대엔 ‘인’뿐 아니라 ‘의’도 몹시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서로 미워하는데다 탐욕이 넘치는 시대.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사라져 버린 시대. 불공정이 판을 치고 불평등이 일상이어서 정의가 사라져 버린 시대. 아마 공자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그러했나 봅니다. 그들이 평생 인의를 부르짖고 다녔으니까요.

예수 또한 그랬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했으니까요. 아마도 사랑이 너무나 부족한 시대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떻습니까? 공자나 맹자나 예수가 살았던 시대보나 나을까요? 더 서로를 사랑하고 더 정의로워졌을까요?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다시 앞에서 한 말을 되새겨 볼까요? 노자는 사랑과 정의를 부르짖는 까닭은 ‘큰 길을 잃어버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노자가 말하는 ‘큰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사람을 보면 같이 아파하는 마음.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 맛있는 것이 있으면 같이 먹고 싶은 마음. 즐거운 음악이 있으면 같이 듣고 싶은 마음. 재미있는 놀이거리가 있으면 같이 놀고 싶은 마음. 좋은 옷이 있으면 같이 나눠 입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인간이 타고난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운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죠.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싶은 마음. 남보다 더 높고 싶은 마음. 남보다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은 마음. 남보다 더 비싼 옷을 입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을 부채질하는 무언가에 현혹되어 세상을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잃어버린 큰 길을 되찾을 때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 모두가 함께 절망에 빠지고 말테니까요. 잃어버린 큰 길을 되찾는 방법은 우선 ‘나눔’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편중된 부가 골고루 나눠지면 많은 행복이 되살아 날 수 있으니까요.

<도덕경 18장 : 大道廢(대도폐)면 有仁義(유인의)하고 慧智出(혜지출)이면 有大僞(유대위) 하니라. 六親不和(육친불화)하면 有孝慈(유효자)하고 國家昏亂(국가혼란)이면 有忠臣(유충신)하니라.>

큰 길이 없어지면 인과 의가 있게 되고, 지혜를 쓰게 되면 큰 거짓이 생겨난다. 부모형제부부 등 가족이 화목하지 않을 때 효도니 자애니 하는 것들이 절실하고, 국가가 혼란스러우면 충신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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