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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3.1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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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 일상을 아는 힘

장주식 작가

노자는 일상에 주목합니다. 일상(日常)이란, 한자 뜻풀이를 해보면 ‘날마다 그러함’이 됩니다. 밤이면 잠들고 아침이면 일어나고 밥 먹고 용변보고 맡은 일을 하고 날마다 그렇게 할 일이 있지요.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일상을 잊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은 뭔가 하찮은 것 같고 이 일상보다 더 나은 뭔가가 꼭 있는 것만 같습니다. 내 일상은 따분하기 그지없는데 누군가 일상은 화려하고 빛나는 것만 같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을 부정하거나 모르면 위태롭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어그러지고 흉한 일을 자꾸 만들어 낸다는 것이죠.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A씨는 몸이 아픈데다 가난하기 까지 했습니다. 콩팥이 좋지 않아 투석까지 받아야 합니다. 가족도 떠나고 지하셋방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가끔 찾아오는 사람은 동사무소에서 오는 사회복지사일 뿐입니다. A씨는 하루하루 사는 일상이 너무나 버겁습니다. 하루는 사회복지사가 찾아왔는데 A씨는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안타까워 말했습니다.

“힘을 좀 내세요. 신장이식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요.”

“이렇게 살아 뭐하나요. 그냥 절 버려두세요.”

A씨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흐느낍니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하늘도 땅도 사람도 다 원망스럽기만 한 것이죠. A씨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노자는 ‘일상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어떡하겠어요. 가난하고 투석을 해야 하는 것이 내 일상인 것을요. 그런 내 일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점점 더 흉하고 어그러진 일들만 생겨날 뿐이란 것이죠.

내 일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눈앞이 환하게 밝아진다고 말합니다. 눈이 뜨여야 내 일상이 보이고 그래야만 세상을, 삶을,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공자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가난하게 되었다고 해도 벗어나려 애쓰지 마라.”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란 부당함과 같은 말이죠. 가난뱅이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거나 죽도록 열심히 일했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이건 정말 부당하죠. 누군가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누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니까요. 그런데 공자는 왜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일까요? ‘못하는 짓이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당한 내 일상을 부정하고 벗어나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온갖 흉한 일이 생겨난다는 것이죠.

못하는 짓이 없게 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내 일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일상 중에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이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하다보면 작게나마 기쁨이 생겨납니다. 작은 기쁨은 삶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한 줄기 희미한 빛이 되는 것이죠.

아, 내 일상은 이것이로구나. 내가 지금 이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회복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운명을 회복한다는 건 뿌리로 돌아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땅 밖으로 나온 가지의 무성함과 꽃의 화려함에 눈이 빼앗겨 뿌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지의 무성함과 꽃의 화려함이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겉으로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있을 수 있고 겉은 수수하지만 속은 단단할 수 있습니다.

내 일상의 모습과 그런 일상을 만든 뿌리를 알게 되면 삶은 편안합니다. 내 일상이 아닌 남의 일상에 휘둘리면 늘 불안하고 위태롭게 됩니다. 과연 나는 어떤 뿌리로 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을까요?

 

<노자 도덕경 16장 : 致虛極(치허극)하여 守靜篤(수정독)이면 萬物竝作(만물병작)을 吾以觀其復(오이관기복)이라. 夫物芸芸(부물운운)이나 各復歸其根(각복귀기근)이니 歸根曰靜(귀근왈정)이며 是謂復命(시위복명)이라. 復命曰常(복명왈상)이요 知常曰明(지상왈명)이니 不知常(불지상)이면 妄作凶(망작흉)이라. 知常容(지상용)하고 容乃公(용내공)이요 公乃王(공내왕)이요 王乃天(왕내천)이요 天乃道(천내도)요 道乃久(도내구)하니 沒身不殆(몰신불태)라.

텅 빔의 끝까지 이르러 고요함을 돈독하게 지키면 만물이 어울려 생겨나고, 나는 그들이 되돌아감을 본다. 모든 생물이 무성하고 또 무성하나 제각각 그 뿌리로 돌아가니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함’이라 하며 이를 ‘운명을 되찾음(복명)’이라 한다. 복명을 ‘늘 그러함(일상)’이라 하며 일상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 일상을 알지 못하면 어긋나고 흉한 일을 만들게 된다. 일상을 알면 잘 받아들이게 되고 잘 받아들이면 공평해지고 공평하면 왕 노릇할 수 있고 왕 노릇은 곧 하늘이며 하늘은 도이고 도는 영원하니 몸이 죽는 날까지 위태로움이 없다.(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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