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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2.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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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칭찬과 비난

장주식 작가

<음식남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중국 이안 감독이 연출한 영화인데요. 아빠 혼자서 16년 동안 키운 세 딸이 모두 성인이 된 때 내용이 뼈대를 이룹니다. 아빠 직업이 요리사여서 화려한 중국음식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영화제목처럼 ‘음식’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그럼 ‘남녀’는 무엇일까요? 세 딸과 아빠가 펼치는 연애이야기입니다.

화학교사인 첫째 딸 가진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어느 날 배구코치에게 반해 가슴이 분홍빛으로 물듭니다. 둘째 딸 가천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항공사에 근무하며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셋째 딸 가령은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동료이면서 친구 애인인 남자를 사귀는 중입니다.

그럼 아빠는? 예. 이웃에 사는 큰 딸 가진의 친구이자 이혼녀인 금영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아빠는 금영 딸 산산에게 날마다 도시락을 싸줍니다. 금영이 싼 맛없는 도시락과 바꿔치기를 하는 것이죠. 도시락을 통해 사랑을 조금씩 키워 가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인 딸들과 아빠는 세대갈등을 겪습니다. 딸은 경제적으로 독립만 할 수 있다면 미련 없이 아빠를 떠나려 합니다. 아빠도 물론 잘 알고 있고, 혼자 남을 그때를 위해 착착 독립을 준비합니다. 여러 가지 갈등을 겪으면서도 한 가족으로 끈끈하게 이어주는 건 음식입니다. 밥을 함께 먹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지요.

이 영화처럼 가족이 모여 밥 먹는 장면을 자주, 인상적으로 등장시키는 우리나라 영화가 있습니다. 2013년에 개봉한 <고령화 가족>인데요, 천명관 소설을 송해성감독이 연출했지요. 엄마 집에 빈대 붙어 사는 첫째 백수 한모, 흥행에 참패해 목매 자살하려다 ‘밥은 먹었니?’하고 묻는 엄마 전화에 집에 오는 둘째 인모,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셋째 미연, 미연의 딸이자 개념상실 중학생 민경이 가족입니다. 화장품영업사원인 늙은 엄마는 끊임없이 밥을 해서 먹입니다.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워 상추에 한 쌈 크게 싸서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주 맛깔스러워 보여 군침이 돕니다. 이 가족들 밥상에 같이 앉고 싶을 정도입니다. ‘밥은 혼자 먹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노스님이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음식을 먹는 일은 사랑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음식을 나누는 일은 사랑을 나누는 일과 같지요. 음식과 사랑은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욕망이라고 공자도 말했습니다. 가장 큰 욕망이란, 그 욕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벗어나기 어려운 욕망이라면 그 욕망을 긍정하고 잘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지나치면 큰 일이 납니다.

그런데 인간에겐 음식남녀에 견줄만한 욕망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정욕구’라는 것인데요. 노자가 말하는 ‘총욕(寵辱)’이 아닐까 싶습니다. 총은 사랑과 칭찬을 받는 일이고 욕은 비난과 수모를 당하는 일입니다. 사랑과 칭찬도 인정이고 비난과 수모도 인정입니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지요.

공자는 인정욕구에 대해 자주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내지 마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걸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고 있는지 근심해라!’

‘남들이 알아줄만한 지를 생각해라!’

이런 식으로 조금씩 변주를 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물론 이 말들은 공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할수록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으니까요. 내가 이룩한 성공은 감추면 감출수록 더 빛이 난다는 말과도 맥이 통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총욕을 내 몸에 생긴 큰 근심으로 여겨라.’

왜냐하면 총은 곧 욕이 되고 욕은 곧 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칭찬과 비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칭찬하지만 누군가는 똑 같은 일로 비난하기도 하거든요. 누군가 나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면 깜짝 놀라야 된다고도 노자는 말합니다. 내가 나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에게 매여서 하수인 노릇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칭찬이나 비난에 매이는 건 큰 걱정거리입니다. 그건 칭찬과 비난에 매이는 ‘내 몸’과 ‘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내 몸과 내 마음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칭찬과 비난에 매이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여기서 노자는 한 가지 해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귀(貴)’입니다. 칭찬과 비난에 깜짝 놀라고 내 몸에 생긴 큰 걱정거리라고 여기는 그 마음, 그것을 귀하게 여기라는 겁니다. 이 말은 칭찬과 비난을 듣는 내 몸을 긍정하고 귀하게 여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칭찬도 비난도 다 내 몸이 불러들인 것이니까요. 그런 내 몸을 선선히 인정하고 귀하게 여길 때 나는 바뀔 수도 있으며 세상을 살아갈 힘도 재충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내 몸이 아닌 ‘너의 몸’도 또 다른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길 수 있으니까요.

노자는 이렇게 칭찬이든 비난이든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있다고까지 얘기합니다. 칭찬한다고 희희낙락하고 비난한다고 발끈 성질을 낸다면 그 사람은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도덕경 13장 : 寵辱若驚(총욕약경)하고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하라. 何謂寵辱若驚(하위총욕약경)이오? 寵爲上辱爲下(총위상욕위하)하여 得之若驚(득지약경)하고 失之若驚(실지약경)하니 是謂寵辱若驚(시위총욕약경)이라. 何謂貴大患若身(하위귀대환약신)이오? 吾所以有大患者(오소이유대환자)는 爲吾有身(위오유신)이니 及吾無身(급오무신)이면 吾有何患(오유하환)이리오. 故貴以身爲天下(고귀이신위천하)는 若可寄天下(약가기천하)요 愛以身爲天下(애이신위천하)는 若可託天下(약가탁천하)라.>

문득 누군가 총애하거나 갑자기 수모를 주거든 깜짝 놀라 내 몸에 큰 걱정거리가 생긴 듯 귀하게 여겨라. 왜 총애와 수모를 받으면 깜짝 놀라라는 것인가? 총애란 떠받드는 것이고 수모는 깔보는 것이라 얻어도 놀랍고 잃어도 놀라우니 총애와 수모는 놀랄만하다는 것이라. 왜 큰 걱정거리를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것인가? 내게 큰 걱정거리가 생기는 까닭은 총애와 수모에 매달리는 몸이 있기 때문이니, 그 몸이 없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리.

그리하여 내 몸을 세상처럼 여겨 귀하게 보는 이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으며 내 몸을 세상처럼 여겨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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