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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100주년 특집 독립투사 곽영준 후손 김용수 점동면장

3.1혁명 100주년 특집 독립투사 곽영준 후손 김용수 점동면장

  • 기자명 박관우 기자
  • 입력 2019.02.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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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거리행진 자발적으로 모두 나와서 같이 만세 부르자.

[편집자 주]

여주신문에서는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독립투사 곽영준 선생의 후손인 김용수 점동면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3.1운동과 독립군자금을 모집하며 일본 군경에 잡혀 옥고를 치룬 선생의 삶과 가족의 힘든 고통을 들을 수 있었다. 김용수 면장 인터뷰는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이장호: 오늘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수: 저는 곽영준 지사의 외손자인 김용수입니다.

이장호: 지금 여주시에서 일하고 계시지요?

김용수: 점동면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장호: 오늘은 김용수 점동면장의 외조부이신 곽영준 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초청했습니다. 외가댁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김용수: 저희 외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 한 분만 낳으신 거죠.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 하시다가 어머니 세 살 때 돌아가시고 무남독녀 어머니만 남기신거죠.

이장호: 곽영준 선생은 3.1운동과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김용수: 곽영준 외조부께서는 양평에서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4월 3일 양평읍 그 당시 양근면에서 이신규 씨와 주동했습니다.

이장호: 3.1 만세운동이 서울에서는 3.1일 시작됐지만 지방에서는 그 이후에 4월 달에 많은 만세운동이 일어났거든요. 구체적으로 양평 만세운동 때 검거 되셨겠네요?

김용수: 기록에 의하면 재판 판결문이 남아 있습니다. 이신규 씨가 연희전문학교 직원이었는데 내려와서 할아버지 와 일곱 분을 만났습니다. 외조부와 이신규 씨께서 주동이 된 거죠. 양평 3.1운동을 펼치게 된 겁니다. 지역은 약간 늦었죠. 여주도 그럴 겁니다. 4월 3일 날 하게 된 겁니다.

이장호: 예. 이포 만세운동도 4월 3일입니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다보니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이 와서 하고 서울에서 했던 선언서와 태극기를 가져와서 한 것이니까요.

김용수: 재판 판결문을 보면 폭도라고 해서 헌병 분견소를 파괴하고 굉장히 심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장호: 당시 양평은 만세운동 참여 인원은 어느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나요?

김용수: 2000여명이 양근읍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신규가 격문을 뿌리고 곽영준은 선두에서서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장호: 그 이후에도 항일 애국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용수: 3.1운동 하시다가 체포되서 판결 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8개월 형을 만기출소하게 됩니다. 내가 왜 너희나라 법으로 처벌을 받느냐고 상고를 하게 됩니다. 출소 하시고 곧바로 상해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셨죠. 그것도 강도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일본 쪽에서 보면 강도죠. 활동하시다 체포되셔서 함흥감옥에서 7년을 살았는데요. 얼마나 추웠는지 고통이 심하셨다고 지금도 어머니가 예기하십니다.

이장호: 독립운동을 하면 가족들도 많은 고통을 받았을 텐데 어떻게 전해 들으셨는지요.

김용수: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 소식 아는 사람들도 쉬쉬 할 정도로 그만큼 엄하게 다스려 졌는데요. 외조부님과 친분 있는 사람들은 끌려가서 고문도 받았고 지금도 외당숙께서 “너희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아부지가 여주경찰서에서 15일 동안 고문도 당하고 맞기도 하고 그랬다. 엄마도 끌려가고 외할머니도 끌려가서 갖은 고문당하고 여러 가지로 가족사가 망가졌다”고 얘기합니다. 당사자인 외조부도 혹독한 고문으로 몸이 다 망가져서 돌아 왔답니다. 감옥에서 나오셔서 저희 어머니를 낳고 삼년 만에 돌아 가셨습니다. 고문 후유증인지 그 사이 과정은 알 수가 없죠.

이장호: 일제강점기 시기 항일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운데요.

어머니의 생활도 상당히 어려우셨겠네요.

김용수: 그렇죠. 아버지가 없는 경우니까 어머니의 가족사인데요. 할머니께서 재가를 하셨어요. 어머니는 그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하세요. 엄마를 재가해서 형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형제가 있다고 하세요. 어머니는 시집을 일찍 가셨어요. 16살에 시집을 가십니다. 소학교도 못나오고 글도 못 배우고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가족들은 더 했던 가족들도 많고요. 어머니께서는 생존해 계시고 91세 이십니다.

이장호: 곽영준 지사의 군자금 모집활동 지역은 어디 인가요?

김용수: 양평지역이죠. 국외활동도 위험한데 국내에서 활동을 하셨더라고요.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가 이거저거 씌워서 체포 되셨습니다.

이장호: 대략 모은 군자금은 어느 정도인지 기록에 없나요?

김용수: 금액은 안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엄청 부자셨는데 재산이 없습니다. 천명기 국회의원 그분이 저희 할아버지 제자였고, 천명기 국회의원 할아버님이 천학자라는 분인데 순조임금의 왕사. 저희 할아버지는 거기서 공부를 배웠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장호: 면장님도 한학공부를 하셨다고 하시던데?

김용수: 저는 취미 상 한자가 재밌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시도 배우고 강의도 좀했습니다.

이장호: 김용수 면장님께서는 여주시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 부회장으로 계신데요. 처음엔 공무원이 외부단체 임원을 잘 안 맞는데 왜 그럴까. 알고 보니 독립운동 후손이라고 알게 됐습니다. 여주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김용수: 자료가 개인정보차원에서 공유가 안 되는데 여주에 유족은 아홉 분이 계세요. 처음엔 독립운동 기념사업회에 가입 안하려고 했는데 유족보상금이나 활동하는 것을 협조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가입했습니다. 유족들은 통화 해보면 굉장히 힘들게 살았다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깊은 얘기는 안 해봤지만 청송이나 다른 지역에서 하신 분들도 있거든요. 힘이 모아지지 않아요. 다른 단체는 사람이 많은데 9명이 소리도 낼 수 없고 독립운동 잊히는 것 아닌가 했어요.

이장호: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걸로 아는데요.

김용수: 아주 고무적인 일이죠. 올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100주년 기념행사를 해서 작년에 독립운동 기념사업회가 대변혁이 이뤘습니다. 청년회원 60명 증가했고 고문을 비롯한 이사들이 재구성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 행사 기대됩니다.

이장호: 3.1 운동 기념행사에 대해 당부의 말씀 부탁드릴까요?

김용수: 지금 각 지자체에서 거국적인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것은 국력을 하나로 모으자는 뜻 같아요. 독립하기 전에는 좌우간에 이념논쟁이 치열하지 않았고 독립을 위해 했는데 지금은 좌우갈등이 있는 거 같아요. 이런 갈등을 극복하는 창구가 필요하지 않은가. 3.1운동 같은 거국적인 행사를 통해서 국민이 결속되는 새로운 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차원이 아닌 가 기대해보구요. 많은 주민들, 많은 단체에서 자발적인 참여 3.1운동 거리행진도 한다고 하는데요. 모두 나와서 같이 만세도 부르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장호: 오늘은 독립운동가 곽영준 외손인 김용수 점동면장을 만나서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 나눠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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