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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시민위원회가 태어나길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시민위원회가 태어나길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1.3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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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연 이포초 하호분교 교사

 

요즘 학교에서 “애들아!”하고 부르면 아무도 부르는 사람을 안 쳐다본다. “여러분!” 해도 마찬가지다. “홍길동?” 하고 이름을 불러야 홍길동이 쳐다본다, 대답은 안했지만, 그 눈빛은 “아, 왜요?”이다. 자기를 부른 이유까지 다 알고 반응하겠다는 표정이다. 대부분 선생님들이 요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몽룡, 성춘향, 자기 자리에 앉아요. 공부 시작할거예요.”라고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학생들은 자기가 하려고 한 일을 다 해야 자리에 앉는다, 그래도 자리에 앉지 않고 있는 아이가 있다. “넌 왜 안 앉니?”, “제 이름은 안 불렀는데요.” 요즘 학생들은 교실에서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꽃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다.

“애들아, 교실이 이게 뭐니. 휴지 좀 줍자.”라고 하면 휴지나 쓰레기를 집어 휴지통에 넣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비를 갖고 와 쓸지 않아도 될 만큼 큼직한 휴지나 쓰레기인데도 줍지 않는다. “홍길동, 거 발밑에 종이 휴지 좀 줍지, 그래!” 라고 하면 바로 “제가 버린 것 아닌데요.”라고 한다. “누가 버렸든 네 발밑에 있는 거니까 좀 줍자.”라고하면 “내가 왜요?”라고 한다, 선생님이 휴지를 주워 “이 휴지 주인?”하고 물으면 아무도 대답을 안 한다. 이미 버린 휴지에 주인이 있겠는가! 자기 인근에 있는 휴지는 자기가 줍기라는 약속을 정해도 휴지 줍기는 잘 안 된다. 자기 근처 있는 휴지를 발로 밀어서 옆 사람에게 보낸다. 옆 사람도 그냥 있지 않으니 늘 경계에 휴지가 쌓인다. 그리고 싸운다. “네꺼잖아.”, “네가 발로 휴지를 밀었잖아.”, “내가 언제?”

요즘 간단한 휴지 줍기도 잘 안 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청소는 대부분 선생님들이 하신다.

뉴스를 보다보면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국민의 냉혹한 심판을 받을 ~.”, “국민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등 정치인들이 하는 ‘국민’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그가 말하는 국민인 것 같지 않음을 느낄 때가 많다, 마치 교실에서 구체적으로 이름을 지칭하지 않는 학생이 된 느낌이다. 흔히 많이 쓰기는 하지만 ‘국민’은 아직 우리에게 자유롭지 않다. ‘국민교육헌장’의 국가 중흥의 의무를 띠고 태어난 국민, 충성을 강요당한 국민으로서 우리는 개인의 소중한 인권마저 유보하고, 어느 한 시기에는 살아도 죽어도 국가를 위한 국민이 되어야 했다.

군에 살면 군민이고, 시에 살면 시민이겠지만, 우리가 흔히 시민, 시민 하는 것은 사는 곳이 시라서 시민이 아니고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가 흔히 말한 시민의식도 조금은 그 뜻에서 벗어나 친절하고, 질서를 잘 지키고, 거리를 더럽히지 않는 청결 등을 강조하여 소위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시민을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고전적으로 귀족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 자유인을 지칭한다. 유럽에서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 시민계급과 시민의식은 봉건시대를 허물고 새롭게 근대시민사회를 만드는 주체세력의 시민과 그들이 지닌 시민의식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86, 87 년 민주화 운동에 거리로 나선 시민들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민이 가져야 할 시민의식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다른 사람 자유를 침해 하지 않는 생활태도와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 있게 발언하고, 다른 사람 의견을 존중하며,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을 지지 하는 의식이다. 시민의식 속에는 시민불복종의 개념도 있다. 스스로 양심에 비추어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 국가나 정부의 행위에 법률을 어겨서라도 저항한다는 생각과 행동을 말한다, 여주시민이라고 해서 여주라는 특정지역의 주민의식뿐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시민성을 갖고 시민이 지닌 특정적인 의식이나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권리와 의무를 자각하고 자치와 연대를 지향하며, 그 생활을 위협하는 것에 대하여 저항하며 싸우는 자세가 시민의식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촛불혁명이후 우리가 계속해서 시민정신을 잃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길이 바로 시민의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주시에서 설치하려고 하는 ‘시민위원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타 지역에서 시민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여주시에서 설치하려고 준비하는 시민위원회는 자방자치로 가는 새로운 모색이다. 시민위원회가 옥상옥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흔히 빠지기쉬운 ‘능력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능력 있는 자가 우리를 대변해줄 것이란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또한 나이 많고 경험이 많은 자가 우리를 대변할 것이라는 나이주의도 버려야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남을 인정하고, 함께 행복해지길 원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나대신 나를 잘 대변해줄 것이라 여기기는 것에 나아가 나도 우리 사회일원으로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갈등이 있는 일은 빨리 결론 내려하지 말고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시간이 좀 필요하더라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시민위원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시민의식을 갖고 발언해도 좋을 것이다. 내 생각은 미상원의원회처럼 6년으로 임기하면서 2년마다 1/3씩 교체하는 것이다. 물론 6년 동안 임기를 갖는 위원도 있겠지만, 2년 만에 바뀔 수도 있다, 또한 시민위원회 위원은 능력 있고, 말께나 하는 시민뿐 아니라, 정말 평범한 시민도 참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여주시만한 지방정부에서 지방자치의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우리가 몸에 배여 그 방법밖에 없지 않나 여기는 간접민주의의와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도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닐까싶다. 지난해 6월 스위스는 기본소득 300만원지급 논의를 직접 참여하고 모여서 논의하는 직접민주주의 하는 것을 참으로 멋지게 보았다. 우리도 여주에 관한 의제를 놓고 직접 참여하고 논의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시도하면 좋겠다. 시민위원회가 직접민주주의로 가는 첫 발자국이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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