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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1.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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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갓난아이처럼

장주식 작가

갓난아이들은 복식호흡을 합니다. 아주 자연스럽죠. 배가 볼록볼록. 숨을 들이쉴 때 배가 불록 나오고 숨을 내쉴 때 배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슬슬 폐호흡으로 이동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복식호흡을 하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 몸은 복식호흡을 할 때 기운을 부드럽게 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 부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갓난아이처럼 복식호흡이 자연스럽습니다.
러시아 동화작가인 코르네이 추콥스키는 ‘유아들은 오로지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이는 다섯 살쯤이면 생명이 있는 존재는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하지만 그 순간, 자신만은 죽지 않을 거라고 타이르려 한다. 낙천주의는 어린이에게 공기와 같은 것이다. 흔히들 죽음의 관념은 낙천주의에 큰 타격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이러한 비탄으로부터 자신을 꿋꿋이 지킨다. 어린이 영혼의 무기고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낙천주의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 낙천성은 어린이가 가진 무기라는 거죠. 아니 사람이 타고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데요, 이게 어른이 되면서 점점 사라집니다. 낙천성을 해치는 삶의 애환이 곳곳에서 덮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라 고승 원효는 이런 말까지 합니다.
“태어나지 마라. 사는 것이 괴롭구나. 죽지마라. 태어나는 것이 괴롭구나.”

사람 삶이 고통으로 가득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과 같다는 진단입니다. 이 진단에 따르면 신이 필요합니다. 허우적대는 삶에서 구원해 줄 사랑과 자비로 껴안아주는 신 말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곳에 기도처가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해 봅니다. 어린아이 때 마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굳이 신을 부르며 울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요. 어린아이가 지닌 낙천성 말입니다. 낙천성은 밖으로 드러날 때 깔깔거리는 ‘웃음’과 포근히 감싸는 ‘상냥함’으로 나타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웃음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많이 생겨나니까요. 학교 다닐 땐 하기 싫은 공부도 억지로 해야 하고, 친구들과 제대로 사귀지 못해 울기도 해야지요. 직장에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꼴 보기 싫은 사람한테 굴욕을 겪기도 해야지요. 사는 게 괴롭다는 원효 말이 딱 맞아요. 그러니 어디 웃을 새가 있습니까. 울거나 짜증내기도 모자라는데요. 하지만 그럴수록 유머가 필요합니다. 유머를 잃는다는 건 우리들 무기고에서 낙천성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통째로 잃어버리는 것과 같으니까요. 우리 주변에 유머러스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무슨 말만하면 빵빵 터지게 하는 그런 사람. 저는 그런 분은 어린이의 낙천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웃기는 유머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면 노력을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머도 쓰면 쓸수록 느니까요. 웃음은 뜻밖의 말 또는 반전이 있을 때 터집니다. 어?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뒤집기가 있을 때 우리는 웃음이 터지게 됩니다. 유머러스한 사람은 그런 재치가 있답니다.
낙천성을 몸 안에 잘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상냥하게 대합니다. 마치 ‘내 몸 안에 혼백을 잘 실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사람’ 이라는 노자 말처럼 말입니다. 혼(魂)은 정신에 깃들어 있고, 백(魄)은 뼈와 살에 깃들어 있습니다. 내 몸과 맘이 다 편안하니 다른 이에게 상냥할 수도 있지요. 갓난아이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몸 그리고 해맑은 웃음이 있습니다.
웃음과 상냥함을 만들어 주는 낙천성은 ‘낳고도 내 거라 하지 않고, 완성시키고도 지배하지 않는’ 그런 마음상태에서 유지된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낙천성은 ‘내 마음 평화’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도덕경 10 장 : 載營魄抱一(재영백포일)하여 能無離乎(능무리호)아. 專氣致柔(전기치유)하여 能�兒乎(능영아호)아. 滌除玄覽(척제현람) 하여 能無疵乎(능무자호)아. 愛民治國(애민치국)에 能無知乎(능무지호)아. 天門開闔(천문개합)에 能爲雌乎(능무자호)아. 明白四達(명백사달) 에 能無爲乎(능무위호)아. 生之畜之(생지축지)하라. 生而不有(생이불유)하며 爲而不恃(위이불시)하며 長而不宰(장이불재)하니 是謂玄德(시위현덕)이라.> 혼백을 몸에 실어 하나로 껴안아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기운을 잘 모아 부드럽게 하여 갓난아이처럼 할 수 있을까. 오묘한 마음 거울을 잘 씻어 티끌 없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을 사랑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되 모르게 할 수 있을까. 하늘 문을 열고 닫음에 암컷 같을 수 있을까. 세상일을 환하게 깨닫고도 아무것도 하는 일 없듯이 할 수 있을까.
잘 낳고 잘 기르라. 낳았으되 갖지 않고 이루고도 으스대지 않으며 기르고도 지배하지 않으니 이를 ‘현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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