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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8. 그저 물처럼,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8. 그저 물처럼,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1.0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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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탈레스는 물은 만물을 살게 하는 뿌리라고 했고 노자는 물이야말로 가장 좋은 덕을 가졌다고 합니다. 노자는 자연스러움을 ‘도’라고 하는데 물은 도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물이 가진 덕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극찬을 하는 걸까요? 그것을 노자는 ‘다투지 않음’이라고 풉니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태도를 가지기에 다투지 않는 걸까요. 한 가지 일화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P씨 가족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산골로 이사했습니다. 자동차 소음도 없고 공기도 맑았습니다. 시골생활의 두려움은 눈 녹듯 스러지고 날마다 행복하여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늘 나쁜 일이 끼어들기 마련일까요. 몇 해가 지난 뒤 마을 들머리에 발전소가 들어섰습니다. 폐기물을 태운 열에너지로 기계를 돌리는 열병합발전입니다. 슬슬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가슴이 콱콱 막힐 정도로 냄새가 바닥으로 깔립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제 P씨 가족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전 같으면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사소한 일도 서로 참지 못합니다. 말다툼을 하다가 P씨가 처음으로 아내를 때렸습니다.

“당신 미쳤어! 이러고는 못 살아.”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아빠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아들과 딸은 학교에서 툭하면 아이들과 싸웁니다. 집에서는 아빠에게 대들다가 맞기도 합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점점 많아진 아빠는 마침내 이웃과도 싸웁니다. 이웃도 결코 참지 않습니다. 서로 주먹다짐을 합니다.

“이게 다 저 놈의 발전소 때문이야.”
P씨는 발전소를 찾아갑니다. 발전소 관리인이 말합니다.

“떳떳이 허가를 받아서 하는 일에 당신이 웬 참견이야!”
울화통이 치민 P씨가 관리인을 때립니다. 관리인도 같이 주먹을 휘두릅니다. 두 사람은 입술이 터지고 코뼈가 부러집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말릴 때까지 두 사람 싸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P씨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노자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노자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으니 음성은 들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하지만 남긴 글이 있으니 그것으로 대답을 찾아볼 수 있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군요.
“하루라도 빨리 떠나라!”
노자는 ‘좋은 땅’에 살면 마음이 ‘깊은 연못처럼 평온’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깊은 연못처럼 평온하면 말도 믿음이 있고 일마다 정성스럽고 공정하게 다스리며 움직임도 때에 딱딱 맞는다고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이렇다면 결코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말과 행동이 거칠어져 사사건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마음이 평온하거나 거칠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노자는 ‘사는 곳’이 어떠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P씨를 보면 노자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전소가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는 P씨가 사는 곳은 좋은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발전소가 들어선 뒤에는 ‘싸우는 땅’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노자는 빨리 사는 곳을 바꾸라고 충고를 하는 거지요. 하지만 문제는 남아요. 바꿀만한 좋은 땅이 없다면 어쩌지요? 어디를 가든 다 좋지 않은 땅 뿐일 수도 있잖아요. 또 말처럼 사는 곳을 옮기기가 쉽지도 않으니까요. 이렇게 항변을 하면 노자는 또 대답합니다.

“그저 물처럼 살아라.”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온갖 더러운 것을 끌어안고 간다는 거지요. 앞을 막으면 돌아서 가고 파인 구덩이가 있으면 채워주고 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P씨 일은 고민스럽네요. 그저 물처럼, 그렇게 살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삶이니까요. 물처럼, 내가 온갖 더러운 것을 끌어안고 흘러가면 상대방도 조금은 변화할까요?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발전소를 만든 사람이 ‘물의 덕’을 알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도덕경 8장 : 上善若水(상선약수)라.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불쟁)하며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악)하니 故幾於道(고기어도)하니라. 居善地(거선지)하여 心善淵(심선연)이라. 與善仁(여선인)하니 言善信(언선신)이라. 正善治(정선치)하고 事善能(사선능)하며 動善時(동선시)하니라. 夫唯不爭(부유불쟁)하니 故無尤(고무우)하노라.>
가장 좋은 건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모든 이가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니 도에 가장 가깝다. 사는 곳을 잘 다듬으니 마음은 깊은 연못처럼 평온하다. 사람들과 더불어 다정하게 사귀며 말마다 믿음이 있다. 공정하고 정의롭게 다스리고 일마다 정성을 다하며 때에 잘 맞춰 움직인다. 물러나고 물러날 뿐 다툼이 없으니 허물도 원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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