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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12.3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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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깥자리에 앉다

장주식 작가

우리는 식당에서 자주 밥을 먹습니다. 혼자 일 때는 상관없으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일 때는 앉는 자리가 신경 쓰이기 마련입니다. 보통 중요한 사람이거나 높은 사람이 가운데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모임에서 식당에 자주 가는데요. 같이 가는 사람들 중에 늘 맨 바깥에 자리를 잡는 분이 있습니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좌중에서 가운데 앉아도 손색이 전혀 없는 분인데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운데 자리를 당연히 권합니다. 그럼 그 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이 자리가 편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혹시 겸손을 가장하는 건 아닐까? 처음엔 의심스러워하기도 했는데요. 자주 합석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말이죠. 사람들이 망설이는 가장 바깥자리, 뭔가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자리를 그 분이 차지함으로 해서 좌중이 다 편안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분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를 좋아합니다. 이런 일도 있습니다. 열 명이 제주도로 같이 여행을 갔습니다. 총무, 항공예약, 일정 등 각각 일을 분담했는데 K는 사흘간 일정을 맡았습니다. K는 열심히 일정을 짰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제주도 지도를 펴놓고 세심하게 계획했어요. 들러야 할 곳과 아침, 점심, 저녁 먹을 식당 등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죠.

드디어 제주도로 갔습니다. 첫날은 대성공이었죠. 일정이 물 흐르듯 잘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 저녁식사를 한 식당 음식까지 일행들 입맛에 아주 잘 맞았습니다. 둘째 날도 좋았어요. 문제는 셋째 날이었습니다. 슬슬 몸이 피곤해 지기도 하는 날이죠. 아침부터 일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아유, 또 걸어?”

첫 일정은 제주올레길 걷기입니다. 코발트빛 바다가 아름다운 함덕과 월정리 구간 19코스입니다. 또 걷느냐고 묻는 사람은 첫날 선흘곶자왈 걷기 코스를 아주 아주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냥 차로 이동해서 바다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지?”

일정 수정을 요구하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자, 일정을 짠 K가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K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말이죠. 최대 장점이자 최대 단점이 ‘팔랑귀’라는 겁니다. 바다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에 동의하는 분 계신가요?”

무려 일곱 명이 손을 듭니다. K가 껄껄 웃으며 말합니다. “좋아요. 코발트빛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로 이동하겠습니다.”

일행은 해안도로를 달려 멋진 카페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일행들이 K를 칭찬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팔랑귀란 말은 어감이 안 좋아요. K씨는 팔랑귀가 아니라 융통성이 있네요. 유연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좋아요.”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웃는 K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정을 고생해서 짰을 텐데 미안해요. 오전엔 이렇게 쉬었으니 오후 일정은 K가 계획한 대로 갑시다. 어때요들?” “당연하죠!”

일행은 한 목소리로 찬성합니다. 결국 오후 일정은 K가 가자는 대로 갔습니다. 그것도 일행이 다 아주 기뻐하며 능동적인 태도로 말입니다. K는 한 번 양보하여 큰 신뢰를 얻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마치 노자가 말하는 ‘작은 나’를 버림으로써 ‘큰 나’를 얻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사사로운 자기 욕심을 버리면 훨씬 큰 공공의 이익이 완성된다는 말이죠. 내가 물러나는 열 걸음이 모두가 나아가는 한 걸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도덕경 7장 : 天長地久(천장지구)로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천지소이능장차구자)는 以其不自生(이기불자생)으로 故能長生(고능장생)이라.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하고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이라. 非以其無私邪(비이기무사야)아? 故能成其私(고능성기사)라. >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하늘과 땅은 어찌하여 영원한가.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으니 영원히 산다. 그리하여 성인도 이러하다. 제 몸을 앞세우지 않아 결국 앞서게 되고 제 몸을 밖에 두니 안으로 보존된다. ‘작은 나’를 없애니 ‘큰 나’를 이루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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