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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민주주의, 정당 민주주의

누워 있는 민주주의, 정당 민주주의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12.17 09:35
  • 수정 2018.12.1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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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봉 (전)내일신문 사회문화팀 기자

누워 있는 부처를 와불(臥佛)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누워 있는 부처에게도 절하고 기도한다. 그 부처가 언젠가는 일어나 중생을 구제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부처를 미륵불(彌勒佛) 또는 미륵보살이라 하는데 사전에는 “내세에 성불한 뒤 사바세계로 돌아와 중생을 구제할 보살”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누워 있다는 것은 현재에는 효험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미래의 약속, 즉 한 장의 종잇장에 쓰여 있는 약속어음일 뿐이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법조항 속의 민주주의, 교과서 속의 민주주의, 상상 속의 민주주의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서 있는 것이다. 서 있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고 움직일 때 비로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누워서는 결코 세상을 구제할 수 없는 법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의 민주주의는 누워 있다. 당대표나 최고위원 등은 당원투표로 선출하지만 당의 기초 조직이자 바탕인 당원협의회나 지역위원회(예전 지구당의 후신) 위원장은 중앙당에서 임명한다. 기초 조직의 민주적 운영보다 중앙권력 앞에 줄세우기가 우선인 까닭이다.

당헌에는 분명히 당원이 선출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늘 조직 강화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임명한다는 단서조항을 따른다. 당내 민주주의는 오직 서랍 속에서만, 법조항 속에서만 존중되기 때문이다. 이는 분권정치를 추구하는 지방자치시대에 어긋나는 일이다. 가장 큰 폐단은 당원협의회 혹은 지역위원회가 공조직이 아닌 위원장 개인의 사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이 때문에 진보정당들은 당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한다).

그런데 이건 약과다. 대통령후보나 당대표, 도지사 후보 선출과정을 들여다보자. 파벌이 아닌 다양한 정파는 오히려 당내 민주주의 발전에 바람직한 기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파보다 파벌에 가까운 당내 조직들은 선거 때만 되면 정책 대결보다는 편가르기와 비난, 흑색선전에 몰두한다. 그 결과 경선이 끝나도 후유증이 크다(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관련된 최근 민주당 내의 상황은 경선후유증의 장기화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일부 당원들에 국한된 것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SNS상에서는 편가르기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일상화되어 있다. 특정한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이유로 규칙(rule)을 따르는 정당한 대결(fair play)을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이래서야 누가 경선에 나서려고 하겠는가. 당내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고….

시야를 좀 더 확대해 보면 선거법 문제도 눈에 들어온다.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는 의석배분은 선거법을 어떻게 고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 집권당인 민주당은 총선 이후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현행 선거법을 고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옹색한 변명처럼 보이지만 다수당이 되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소수 야3당이 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여당은 정치력으로 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누워 있는 부처는 힘이 없다. 누워 있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당 민주주의는 서랍에서 꺼내야 하고 종잇장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 세워야 한다. 그렇게 얻은 민주주의라야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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