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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사람들이 만든 미래 유산‘여강길’14년 전 두 사람이 삽과 낫을 들고 찾은 길 이제 매년 수만 명이 오는 생명과 평화의 길

“여주에 이렇게 걷기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우리 이천시도 이런 길을 찾아내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10월 20일 ‘여강길 걷기 여행 축제’에 참가한 이천시에서 왔다는 한 참가자의 말에 다른 일행이 말을 섞었다. “여기 장터길은 4코스라고 하는데 1코스의 아홉사리 길은 더 기가 막혀요. 강을 따라 걷는 옛날 길이라 풍경도 정말 좋다니까”

특별히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SNS로 홍보한 여강길 걷기 여행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1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여강(驪江)’은 여주(驪州)를 지나는 남한강을 여주 사람들이 이름이다. 여주에서는 단체이름과 상호에도 많이 쓰일 정도로 여주 사람들은 여강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는 여강 주변 곳곳에 전설이 서린 곳을 걷는 여러 길의 이름을 ‘여강길’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여강길은 여러 갈래의 길을 모두 이르는 말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부라우나루터에서 시작해 도리까지 가는 아홉사리길이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도리마을에서 중군이봉과 소너미고개를 지나 개치나루터, 자산, 해돋이산길로 이어지는 길과 바위늪구비에서 목아박물관, 신륵사 등 지역의 문화유적을 잇는 길, 그리고 신륵사에서 강을 건너 여주5일장을 지나 대로사와 효종대왕릉, 세종대왕릉, 세종대왕릉역을 잇는 길을 차례대로 찾아내고 만들어 이제는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걷는 길의 하나가 됐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은 9세기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지면서 유럽 전역의 순례객들이 오가기 시작했던 길이다. 산티아고 길이 종교적 순례에서 시작된 길이라고 하면, 여강길은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여주 사람들의 여강(驪江)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 길이다.

지난 2000년 초반 여주 사람들이 사랑하는 여강은 ‘남한강정비사업’이라거나 ‘남한강하도준설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질 위기에 처했다. 강을 지키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시민단체들은 당시 여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이었던 신륵사 주지 세영 스님과 지역 종교지도자들의 무조건 반대를 외치기 전에 강을 가까이서 보고 더 알자는 제안에 기꺼이 동의했고, 2004년 여강을 따라 걷는 ‘생명 평화 남한강 도보 순례’가 시작됐다. 종교와 나이, 남녀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생명 평화 남한강 도보 순례에서, 강을 따라 걸은 참가자들은 여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생명과 평화의 길을 알아야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큰 물줄기로만 보였던 강이 사람과 뭇 생명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다가왔고, 이런 만남은 다시 여강을 따라 사람과 사람이 만났던 옛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당시 여주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던 김태호 씨는 “어느 날 이항진 집행위원장(현 여주시장)이 어딜 가자는 말에 따라 나섰는데 지도 한 장과 각자 낫을 들고 찾은 곳이 지금 여강길 1코스인 아홉사리과거길이었다”며 “당시 여름이었는데 앞서 가던 이항진 집행위원장이 벌들에게 잔뜩 쏘여 무척 고생한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이항진 시장은 “처음엔 범솥(점동면 흔암리)마을에서 도리로 가는 길을 여러 차례 찾았는데 번번이 실패했다”며 “당시 점동면 도리 노인회장인 어르신이 도리에서 범솥마을로 가는 옛길 입구까지 직접 안내해 주셔서 길을 찾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지금은 여강길 1코스(옛나루터길)로 불리는 이 길을 직접 가보니 흐릿하게 길의 흔적이 보였다며, 처음에는 그냥 ‘아홉사리길’로 불렀다고 한다.

부라우나루터를 출발해 우만리나루터, 흔암리나루터를 지나 아홉사리과거길을 넘어 도리마을회관에 이르던 이 길은 그후 여주종합터미널에서 영월루와 황포돛배선착장, 강변유원지, 금은모래강변공원을 지나 강천보에서 부라우나루터와 연결하는 코스로 만들어지면서 15.3Km의 여강길 1코스 옛나루터길이 됐다.

그리고 점점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입소문이 나고 여주 사람들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무기가 사는 물속이 얼마나 깊은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모자랐다는‘바위늪구비’와 같은 전설이 있는 길들도 점차로 찾아지면서 지금은 모두 4개 코스의 여강길이 완성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걷는 길을 만든 ‘여강길’은 2009년 문화관광체육부의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로 선정되었고, 지금은 우리나라 걷는 길들의 모임인 (사)한국걷는길연합에서도 지역 주민들의 자생적 단체로 꾸준히 지역과 함께 운영되는 걷는 길 모임으로 위상도 높아졌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여강길 걷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본래 길이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이 다니며 생겨난 것을 이르는 말이다. 길은 생명과 생명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동시에 문명과 문명이 만나 역사를 만들어 온 곳이기에 길에는 소통과 생명의 평화가 넘쳐야 한다.

여강을 사랑하는 여주 사람들이 만들어 온 여강길은 이제 단순한 길이 아니라, 지금의 여주 사람들이 미래의 여주 사람들에게 남길 가치가 유적인 동시에 정신적 전통인 여주의 미래 유산(heritage)이 될 것이다.

이장호 기자  yeojup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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