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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뜻깊은 생활실천, 한살림 이병시 이사장

지구를 살리는 뜻깊은 생활실천, 한살림 이병시 이사장

  • 기자명 박관우 기자
  • 입력 2018.10.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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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에서 13,000명으로 조합원 늘어나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고 세계화라는 이름의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원산지를 알 수 없는 농산물이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농사짓는 생산자와 이들의 마음이 담긴 물품을 이해한 소비자들이 결성한 생활협동조합이다. 이번 호에서는 한살림 경기동부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병시 이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병시 이사장과의 육성대담은 팟캐스트<여주라디오>와 유튜브<여주신문TV>를 통해 생생하게 듣고 볼 수 있다.[편집자 주]

 

박관우 한살림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병시 1985년 정도에 농약 사고가 나서 농부들이 농약을 치다가 한 100명~150명 가까이 죽음에 이르는 일이 생기게 돼요. 그래서 1986년에 저희가 처음으로 한살림을 만들면서 유정란하고 쌀로 한살림을 시작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지속 가능하게 삶을 살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런 것들을 하나의 물음으로 가지고 지금까지 30년이 넘었죠. 이렇게 달려오고 있어서 저희 한살림은 운동적으로 활동을 하면서도 매장이라는 사업체를 갖고 있기도 해요. 저희는 협동조합으로 구성된 곳이긴 하지만 결사체이면서 사업체를 갖고 있는 그런 협동조합입니다. 전국에 23개의 지역 한살림이 있고요, 65만 명 정도의 조합원을 갖고 있습니다.

 

박관우 한살림 경기동부 조합원은 몇 분 정도인가요?

 

이병시 2002년에 여주 이천으로 시작했던 게 광주 양평까지 가게 돼요. 더 지나서 지평, 퇴촌까지 매장을 두게 되는데, 그러면서 여주 이천 광주라고 이야기하니 양평이 엄청 서운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경기동부’라고 2015년에 통칭을 바꿨습니다. 여주, 이천, 광주, 양평, 지평, 퇴촌까지 우리 조합원들이 있게 되고요. 전체는 한 13,000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고, 여주는 1400명 정도의 조합원을 갖고 있습니다.

 

박관우 처음에 몇 명이 시작했나요?

이병시 처음에는 몇 분 안 되셨죠. 한 10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시작해서. 실제로는 한살림이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기 보다는, 사회가 굉장히 오염되고 아이들이 아토피라든가 여러 가지 건강의 이상을 느끼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첨가물 같은 것들로 인해 건강이 공격을 받아서 건강을 지킨다는 구호를 외치는 우리 한살림이 더 많이 인기가 생기고. 어떤 특별한 노력이라기 보단 사회적인 반응, 사회적인 결과로써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박관우 한살림이 좋기는 한데 가격이 비싸지 않나요?

 

이병시 그런 경우도 있고요. 1차 농산물이라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바깥이 많이 비싸면 저희가 싼 경우가 있고요. 저희는 물건 값을 결정할 때 농부의 땀, 들어가는 재료. 그것들을 봐서 결정을 해요. 자본주의에서는 공급과 수요라는 규칙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반면, 저희는 한번 가격이 결정되면 특별한 이유 없이는 가격 변동이 없습니다. 공급의 과잉으로 인해서 물건 값이 폭락을 한다든가, 공급이 너무 줄어들어서 물건 값이 오른다든가. 이런 경우가 없이 늘 농부의 땀과 재료값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가격의 변동이 없고요. 가끔 그래서 시중보다 싼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소출, 수율이라고 말할 수 있죠. 수율이 보통 관행으로 짓는 것보다는 많은 부분의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소출도 좀 적고요. 그래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좀 비싼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양적으로 많이 먹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질적으로 좋은 것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가격이 그렇게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관우 올 여름이 굉장히 더웠습니다. 배추가 지난달인가부터 굉장히 비쌌고, 식당에서 배추를 안 내놓고 다른 야채를 내놓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 때는 한살림이 좀 쌌었나요?

 

이병시 그렇죠. 한살림이 싸다기보다는 늘 같은 가격이니까요. 바깥쪽 가격이 비싸다면 상대적으로 저희가 싸게 느껴지겠죠.

 

박관우 일부이긴 한데 몇몇 생협에서 물품에 대한 불만이나 관리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오기도 해요. 한살림에서도 예전에 보면 한두 번 그런 것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이병시 네. 저희가 농약 검사라던가 방사능, 그 다음에 바다에서 오는 후쿠시마……. 그게 지금 7주기 그렇게 지나서 우리가 5년이 지나면 다시 들여온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많이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어요. 한살림은. 그런 부분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서 애호박에서 엔터설펀이라는 농약이 검출된 적이 있습니다. 그건 벌써 판매금지가 10년이 넘긴 했는데, 토양에 그것이 들어가면 반감기가 20년이나 되고 지용성이기 때문에 실제로 토양의 시료를 뜨면 발견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건강하고, 땅도 살아있고, 자연도 살아있는 것을 추구하지만, 현재 한국의 토양이 너무 오염이 되어있기 때문에 중간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사고가 있고요. 하지만 과정을 본다면 어느 과정에서도 농산물이라던가 기타 위험한 부분들을 제거하거나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자연이 너무 상했기 때문에 노력만으로 나는 좋은 것을 먹겠다는 개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박관우 농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농약을 뿌리다보면 잡초도 죽고 일하기가 편한데, 친환경 농업을 하다 보니까 굉장히 품이 많이 드는 일이잖아요. 또 어떤 면에선 농산물의 표면이 이상하다거나, 우리가 흔히 보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이 아닌 ‘이런 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끔 그런 게 있어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병시 한살림같은 경우엔 생산과 소비가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저희 같은 경우엔 농산물을 약정으로 재배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임소비라는 말을 쓰는데, 그것이 조금 못나고 제품이 안 돼도 소비자들이 책임적으로 생산자 분들에게 요구를 했기 때문에 책임 소비를 하는 관계로 유통 같은 것들을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자랐나 하는 과정도 있고, 농약을 피하기 위해서 제품이 못나거나 그런 부분들은 소비자들이 알아서 소비를 하고 있어요. 그런 걸 일종의 책임 소비라고 하는데, 우리가 산업이 발달하면서 농산물까지도 스마트팜 같은걸 통해서 대량화하고 효율적인 것들을 기대하지만 실제로 농산물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우리의 생산물이거든요. 생명이 있는. 그렇기 때문에 농산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야 되고, 그런 부분을 서로 책임지지 않으면. 농업을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으로 생각한다면 농산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연과 지속가능한 삶을 가져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저희는 한살림을 통해서 자연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농산물. 이런 부분들을 좀 공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고 함께 가져가고 함께 책임을 나눠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관우 한살림의 좋은 뜻에 동의하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이병시 우선 입회비라고 해서 3000원을 내고요. 그 3000원은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30,000원의 출자금을 내시면 그건 회원을 탈퇴하시면 언제든지 돌려드려요. 다른 데 같으면 많은 곳들이 1년에 한번 받는 곳도 있고요, 여러 가지 회비를 간헐적으로 받는데. 저희는 한번 30,000원을 내면 어느 지역에서든지 똑같이 조합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박관우 화제를 돌려서 가까운 분이 여주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이시더군요. 누구시죠?

 

이병시 여주시장 이항진이고, 저의 낭군님 되십니다.

 

박관우 시장님과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이병시 제가 2학년 때 면목동 성당에서 야학을 했었는데, 그 야학을 같이 하면서 만나게 됐습니다.

 

박관우 시장님보다 연상이시죠?

 

이병시 예. 한살 연상입니다. 시장님은 84학번이고 저는 83학번.

 

박관우 연애는 몰래몰래 했나요?

 

이병시 하하하. 네. 몰래몰래 했고, 연애를 6년쯤 하고 결혼했고요. 그 당시에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저희는 사실 공부를 하기보다는 저항하면서 밖으로 나가던 시기에요. 그래서 서로 동료애로도 바라보고, 동지적으로도 바라보고. 남녀의 관계라는 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맨스라는 관계보다는 동반자적인, 동지적인 애정과 관심이 있었던 시대라고 생각하시면 지금과는 다른 색다른 맛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관우 슬하에 자녀가 없으세요. 외롭지 않으신가요?

 

이병시 그렇지는 않고요. 제가 사실은 임신이 안됐던 건 아니에요. 여러 번 해서 잘못되긴 했는데, 어쨌든 주변에 조카도 있고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다 보니까 늘 아이들하고 같이 생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둘이 있는데 아직도 아이를 안 낳아서 그런지 아직은 장난 좀 치면서 정겹게 살고 있습니다.

 

박관우 정치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많고요. 힘든 일은 없으신가요?

 

이병시 네. 힘든 일은 없었고요. 저희가 학교 때 야학도 하고, 학생운동도 하고, 공장에 가서 일도 하고, 이런 삶들의 연속이었는데. 사실 어떤 진리라든가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것을 바꿔서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간다든가. 이런 것들을 꿈꾸고 살았기 때문에 사실은 자기가 그때그때 맡은 역할과 모양은 달랐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라든가 새 세상에 대한 열망. 이런 것들이 늘 있었기 때문에 사실 소소하게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 듣고 싶지 않은 것을. 이런 것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당연히 그런 것들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아직 맷집이 있습니다.

 

박관우 최근에 관사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어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이병시 관사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사실은 집안에서 뜻하지 않게 집안의 중심이 되는 역할에 있기 때문에. 저희 집에 살림이 많아요. 딸만 넷이 되는 집에 어머니 아버지 제사도 집에서 지내기 때문에 살림이 많고 해서 사실 제가 관사로 간다고 했을 때 저는 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관사라는 의미를 보니까 그건 좀 공적인 의미고요. 시장님이 관사에서 산다는 것은 공무의 연장선이지 개인이 살림살이나 형편이 피는 그런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관사는 좀 안정적이고, 지금까지의 시장님들 내지는 군수님들이 원 시장만 아니고는 다 관사에서 생활하셨습니다. 생활하신다는 것은 거기에 대한 보안성도 있고, 안전성도 있고, 일을 해나가는데 효율성도 있기 때문에 관사에 있는 것이지, 그리고 관사가 시장이라는 최고의 자리에서 시민들과 제대로 된 정치를 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용도가 있다고 보고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싫고 말고의 선택의 여지없이 관사에 가야 된다는 걸로 저는 관사에 갔고요. 지금 어쨌든 간에 공무를 보는 입장에서는 저는 관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관사에 대한 여러 의견도 있지만, 특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시장이 갑질을 하는 게 아니냐. 이런 의견도 있는데 그것은 조금 관사에 대한 이해에 대해 오해가 있으신 것 같고요. 관사를 사실 비워두는 게 맞는다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사용한 것 같아요. 그 사용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불우한 이웃인데 그 분들을 내쫓았다. 그런 개념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민들이 알아가는데 오해가 있으신 것 같고, 관사에는 관사의 용도가 있기 때문에. 그 용도대로 공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견은 있지만 관사를 쓰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박관우 자매분이 많으시잖아요.

 

이병시 네. 딸만 넷입니다.

 

박관우 이번 선거기간에 참 인상적이었기도 해서,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고 얘기해주세요.

 

이병시 피붙이니까 당연히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열과 성의를 다해서……. 정말 언니가 항상 하는 얘기가 이항진이 나의 동생하고 같이 사는 남편이 아니라 정말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정치하는 여주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돕는 거고 열심히 하는 거다. 이런 얘기를 언니가 가끔 했어요. 그런 걸 생각해서 언니한테 정말 고맙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이해해주고 인정해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 이 자리에서 하고 싶습니다.

 

박관우 보통 정치인이 당선되면 ‘사람이 달라졌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 계세요. 이제 100일이 지났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 갖고 계신 거죠?

 

이병시 네. 갖고 있고요, 제가 예를 들자면 그 사람이 시의원 때 국정화를 반대하느라고 1인 시위를 시청 앞에서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왜 시의원이 됐는데 시청 앞에서 그걸 하냐고 아니 그 때 시의원으로서 이항진님이 하신 말씀은 이런 것도 잘하고 정말 제대로 되는 정치 해보려고 시의원도 되고 시장도 되는 건데. 내가 자리에 앉으려고 이런 거에 오르는 게 아니다. 더 일 열심히 하겠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소신대로 그것이 정말 여주를 위하고 사람 중심이 돼서 행복한 여주를 만드는 그런 소신 있는 시장이 되길 바라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같이 옆에서 동반자가 돼 주기도 하고, 또는 옆에서 관리자가 돼 주기도 하고, 힘이 돼 주기도 하면서 옆에서 든든하게 함께하겠습니다.

 

박관우 마지막은 한살림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한살림 경기 동부 이사장님 이시니까요. 더 포부가 있거나 향후에 한살림을 어떻게 이끌어야겠다. 어떤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무리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이병시 요즘 여주 내에서도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협의체를 구성하는데 많은 분들이 모이고 있어요. 저희가 사회적 경제, 사회적 공동체. 이런 말들이 사실은 낯 설었던 시대가 있지만, 앞으로 우리의 삶이 좀 더 함께 나누고, 함께 협의하고 협력하는 그런 사이가 되도록 한살림이 좀 더 앞서 나갔다면 우리 삶에 대해서 순환하고, 지속 가능하고, 생명을 지키고, 자연을 지키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그런 일을 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그런 한살림이 되도록 노력할거고요. 그리고 우리 한살림은 한 84억 정도 하는 조직이에요. 경기 동부가. 그래서 100억을 목표로 사업체가 크는 것도 바라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말 진정으로 좋은 제품과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서 우리 생명을 지키고 모두를 지킬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조그마하게 포부를 얘기한다면, 정말 여주지역에서 생명을 지키는 데 조그만 힘이라도 되고 싶다면 같이 함께하고 싶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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