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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기자는‘정의’가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다

기자의 눈-기자는‘정의’가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다

  • 기자명 이장호 기자
  • 입력 2018.09.2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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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 편집국장

기자라는 직업은 참으로도 위험한 직업이다.

육체적 고통을 떠나 때로는 극한의 정신노동에 시달릴 뿐 아니라, 간혹은 아주 위험한 말이나 행동에 그대로 노출되기 십상이다.

대부분 기자가 ‘정의’를 말하려고 한다고들 하지만, 기자에게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할 권한이 없다. 기사가 기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결정은 독자의 판단에 맡겨지기 때문이다.

기자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그 질문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기자에게 맡겨진 일이기에 상대가 불편해 할 것을 알면서도 기자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어떤 기자가 좋은 기자고 어떤 기자가 속칭 사이비 기자냐는 구분도 그렇다.

그것은 온전히 기자의 주장이나 판단이 아니라 상대가 판단하거나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선의를 칭송하는 기사를 쓸 때 그 기자는 좋은 기자가 되지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쓸 때 그 기자는 사이비 기자가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좋은 기자와 사이비 기자의 기준은 전적으로 기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 기사를 접하는 제3자 즉 독자가 판단하는 것이 그나마 공정하다 할 것이다.

오늘도 많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원과 만나면서 수 없이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귀에 감기는 질문뿐이 아니라 거슬리는 질문도 있다. 기자들이 그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은 정의 수호나 구현이 아니라, 궁금한 것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는 때때로 같은 사람에게서‘기자님’과‘기자 새끼’로 불린다.‘기자님’은 서로 마주 볼 때 하는 말이고,‘기자 새끼’는‘기자님’이 뒤돌아 나갈 때 뒤통수에 뱉는 말이다.

나는 요즘 그나마 뒤통수에‘기자 새끼’라는 말을 던지는 사람이 참 고맙다.

대놓고 앞에서 상스런 소리를 안 듣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차라리 앞으로 마주 볼 땐‘기자 새끼’뒤통수엔‘기자님’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오늘도 많은 기자님과 기자 새끼들이 당신에게 질문을 할 것이다. 때로는 귀에 착착 감기는 질문도 있고 어떤 때는 귀에 매우 거슬리는 질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가 기자님이거나 기자 새끼이거나 당신이 명심할 것은 기자의 질문들이 결코 정의 수호나 구현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일에 대해 묻기 위한 것이다.

요즘은 ‘정의’라는 말에 대해 영화 내부자에서 배우 이병헌이 던진 ”대한민국에 아직도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는가”라는 대사가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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